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하고 사사로운 Oct 20. 2024

희귀병이 아니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

열일곱 살때의 꿈을 이제서야

어렸을 적부터 내 책을 한 번쯤 꼭 갖고 싶었다. 지금도 아주 좋은 집이나 좋은 차를 갖고 싶다는 욕망 같은 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적은 편인데 나만의 책을 책장에 한 번 꽂아 보고 싶다는 욕망은 강하게 있었다.


열일곱살 때부터 막연하게 마흔쯤 되면 나도 내 이야기를 써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너무 먼 미래의 일이었다. 그래서 2년 전쯤부터 서른이 되기 전에 써 봐야지 했던 게 벌써 서른이 넘어 버렸다.


처음에는 나의 20대를 소설 같은 형태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소설은 커녕 새로운 이야기를 시간 내서 쓰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일기장이나 블로그에 싸질러 쓴 토막글들이 1,000개도 넘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차피 나의 생각과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은 것이 목적이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팔려고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활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갖고 싶은 것이니 나에게 주는 선물로 자가 출판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창의적 돈지랄이 따로 없다.




고등학교 때 나의 별명은 문학 소년이었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문학 소년, 소녀들이 오늘도 교실에 앉아 있을까. 나도 그 수천 명 중의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글로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딛고 자기 만족으로 작게 일을 벌이고 싶은 것은 여전히 그 때의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삼선 슬리퍼를 신고 먼지 풀풀 나는 흙바닥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다가 교무실에서 호출하는 것을 듣고 달려갔다. 나에게 편지가 하나 와 있었는데 발신지는 대전이고 발신인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궁서체에 만년필로 쓴 듯한 한 장의 편지에는 ‘너의 글을 잘 읽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주기를 바란다, 나에게도 글을 쓰는 너 같은 손녀가 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상품권을 탈 목적으로 교내 글짓기 대회에 제출했던 글이 당시 한겨레 신문과 연관이 있던 고등학교 선생님을 통해 신문에 기고된 적이 있었다. 아주 작은 한 켠에 있었던 글이었는데 대전에 사시는 칠순이 넘으신 할머니가 손수 편지를 보내주셨던 것이다.


당시 그게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도 모르고 편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어느 날 비에 맞는 바람에 편지를 잃어버리고 답장도 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억, 기쁨, 고마움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 살면서 여자에게 처음 받아 본 팬레터이기도 했다. 그 글은 나중에 한겨레 신문의 글쓰기 강좌의 자료로도 쓰였다고 한다.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글이다.


모의고사 치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글 잘 읽었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보면 좋겠어.’라고 얘기해 주고 가셨던 국어 선생님. 1년 내내 국어시간마다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셨던 선생님. 어쩌면 매 해 모든 반에 들어가서 그렇게 말씀하셨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말들이 바람이 되고 희망이 되고 꿈 같은 것으로 내게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가끔 달리는 네이버 블로그의 댓글들이 꿈을 지탱해주는 이유였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아서, 그렇지만 혼자만 쓰기는 또 싫어서 몰래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여름에 덥다고 에어컨을 틀어 놨으면서 이불은 꼭 덮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심리 같은 거랄까.


어디서 오셨는지 내 글에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고 댓글을 남겨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어떤 분들은 직접 만나기도 했다. 한 분은 나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주시고, 꾸준히 응원해주시고 매번 안부를 전해주시기도 했다. 나의 글이 정말 좋다는 그 한 마디가 어떤 선물보다 좋았다.


나는 나의 가장 취약하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와 생각들이었는데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불안이나 우울 같은 불완전해 보이는 감정 조차도 내가 겪어내고 기록해 두면 어떤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꿈을 불어 넣어 줬던 두 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진심인지 농담인지 나중에 글들을 책으로 엮어봐도 좋을 거 같다고 이야기해 준 몇 분들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6년 전에 "훔쳐보는 일기장"이라는 이름으로 책 이름을 짓고 글을 엮었다. 마침, 출판 디자인을 하던 스터디 동생이 도와줘서 전체 책 디자인까지 끝냈다.




그런데, 결국 책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막상, 엮고 보니 나만 볼 책이라고 하더라도 글들이 너무 부끄럽기도 했고, 이후부터 갑자기 독립출판 붐이 일었는데 막상 붐이 일어나니까 홍대병에 걸렸는지 그만 둬버렸다.





그리고 6년 뒤, 중증근무력증이 찾아 왔다. 그날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 곳에나 뭐라도 끄적이지 않는다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병에 걸리고 나서 그 전에 했던 걸 하나 씩 못하게 되거나, 더 잘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잃은 것만 있었던 한 해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프지 않았다면 절대 단 한 가지의 일이 있었는데 글쓰기였다. 이대로 잃은 것만 있으면 억울할 거 같아서, 이렇게 시작한 글이나마 계속 써보자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만 하다가 생각에만 그칠 거 같아서, 브런치 북이라도 만들자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프지 않았다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일을 하고 있거나, 공부를 하느라 새벽까지 매달리고 있었겠지. 글을 쓸 여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마흔쯤 되면 나도 내 이야기를 써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병에 걸릴 것이고, 그 병 이야기를 쓰게 될 미래였나라고 생각하면 약간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아주 큰 우여곡절은 없이 순탄하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에 희귀병이라니.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재미없어 보이는 내 인생에서 오히려 좋은 소재려나. 별의 별 생각을 하다 이런 생각도 들엇다.


어쨌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병을 알지 못했다면 바쁘다는 이유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다보니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병원이나 건강관리보험 공단에서 질환을 소개하는 것들 외에는 정보 찾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마다 질환이 다르다고 해서, 환우들이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병을 진단 받기도 시간이 걸리고 나처럼 다른 사람들도 정보를 찾기 어려운 답답함 때문인지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몇 분 계셨다.


병을 처음 진단 받은 시점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투병기나 생각을 써놓으신 분들이었는데, 몇 년 전의 글들부터 최근 글까지 모두 단숨에 읽게 되었다. 좋은 정보들도 많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더라. 


또, 40명 남짓 들어가 있는 오픈채팅방에서 질문했을 때 늦은 시간에도 답변을 주는 사람들이나, 구독자가 거의 없는 유튜브 채널 등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흔 무렵의 에세이가 병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생각도 못했지만, 어차피 내가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브런치 북에 매주 글을 한 편 씩 내는 게 생각보다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나의 상태 정도로 글을 써도 되는가, 이 정도의 소재로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리고 브런치에는 출간한 작가 분들도 너무 많고, 정말 흥미로운 소재들로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다른 분들의 글을 볼 때마다 기가 죽었다. 생각보다 글을 쓰고 수정할 시간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아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몇 번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무슨 대작가도 아닌데 그런 말도 안되는 고민을 하나 싶어서 고민을 거두었다. 대단한 이야기를 쓰는 게 목표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남기고 마무리하는 게 목표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 한 분이라도 병을 알고 답답해하거나 외로워하는 분들께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고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누구와 대화를 한다면 이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일지 등을 고민하다가 꺼내지 않을 이야기도 글로는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글로서 서로 공유하고 대화하고 만나는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병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올해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병이 생기고 잃은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얻은 것들도 있다. 그 부분에 오히려 감사하면서 뭐라도 써보자. 근무력증에 걸려있더라도 글무력증에는 걸리지 말자, 오늘도 다짐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