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옆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만 날
토요일 내내 거의 집에서만 쉬었다. 다시 일을 시작해서인지 요즘은 토요일이 가장 힘든 데, 뼛 속까지 피곤한 느낌이라 웬만큼 자지 않으면 잘 나아지지 않는다.
일요일인 오늘도 너무 피곤했는데 확실히 방전된 배터리 같은 몸상태라 그런지, 자주자주 충전해주지 않으면 금방 피곤하고 충전된 체력이 오래가지는 않는 느낌이다. 다행히, 1시부터 4시까지 아이와 똑같이 낮잠을 잤더니 컨디션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쉬느라 아이와 충분히 못 놀아준 거 같아서, 저녁에 집 앞에 있는 지하철이라도 보고 짧게 산책을 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집을 나서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오른쪽 무릎이 절뚝거렸다. 다리에 힘이 빠지니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내조차 따라 잡기가 어려웠고, 그런 내가 무력하게 느껴졌다.
상태가 좋지 않으니 그저 아파트 주변을 빙 돌아서 가기로 했는데, 10분 거리마저도 그 날은 쉽지가 않았다. 뒤에서 절뚝거리며 따라가는 데, 갈수록 절뚝거리는 정도가 심해졌다.
고작 아파트를 반 바퀴 돌았을 뿐인데, 오른쪽 다리를 시작으로 왼쪽 다리도 계속 절뚝였다. 이렇게 일주일 내내 안 좋았던 적은 없었는데... 주말 내내 쉬었는데도 다시 증상이 생겨서 더 무력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산책은 하지 못하고 집에 다와가는 길, 초등학교 옆을 지나는데 4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와 아빠가 축구공을 가지고 운동장으로 가고 있었다. 순간, 우리 아이와 축구공을 가지고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가 되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어서 슬펐다.
공을 굴리며 신나게 뛰어다니는 부자의 뒤에 절뚝거리며 유모차 뒤를 겨우 따라붙는 나의 모습이 너무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그 주 신경과를 갔을 때 휠체어에 앉은 아빠를 보면서, 다소 짜증 섞이게 옆에서 아빠를 바라보는 어떤 아들을 우연히 봤기 때문이었을까.
아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인데, 점점 더 세상을 알게되고 만약 내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어쩌면 아빠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무서웠다.
대학 때도 직장에서도 농구부였던 나는 아이가 생기면, 꼭 함께 농구를 하거나 보러가는 것이 꿈이었다. 작년부터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아기와 함께 농구장을 갔던 게 가장 행복했던 추억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함께 공놀이는 커녕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가 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아프거나 불편한 건 사실 넘겨버리면 그만이다. 그런 건 별 거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긍정적으로 어떻게든 생각하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혹여나 그 때문에 상처받거나 불편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져 내려버리는 것 같다.
대부분의 불안한 생각은 일어날 확률히 극히 드물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병에 걸리고 나서는 희귀병에도 걸렸는데 아무리 작든 말든 확률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만에 하나인데, 그 만에 하나가 지금의 내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불안이 상상이 아니라 현실을 무겁게 조여오는 족쇄처럼 느껴져서 힘들었다.
겨우 집으로 도착해 어두운 방에 들어가 아이를 재웠다. 아이가 바로 잠들지 않아서, 아이의 배를 토닥거려주며 재우려고 했다. '고마워.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해.'를 되뇌이며 아이를 토닥거렸다. 더 이상 아이의 얼굴도, 나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찾아왔기 때문일까. 참았던 두려움과 슬픔이 터져서 눈물이 줄줄 나왔다.
그렇게 울어보기는 병 초반 말고는 오랜만이었다. 아이에게 혹여라도 부끄러운 아빠가 될까봐, 겁이 나서 눈물이 계속 났다. 내가 이만할 때 쯤, 두려운 생각을 가졌을 우리 아빠도 생각나서 펑펑 눈물이 났다.
입을 틀어막고 숨죽여 울고 있는데, 아이가 까꿍을 하다니 내 배로 올라 탔다. 그리고 내 입술과 눈을 조그마한 손으로 두드렸다. 혹시, 내가 우는 것을 눈치 챈 것일까. 그래서 위로해 주려고 올라타서 눈물을 훔쳐주는 것이었을까.
아이를 안고, 또 안았다. 아이가 있어서 마음이 더 무너질 때도 있지만, 아이가 있어서 끝내 마음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다.
훗날 아이가 내 나이 정도가 되었을 때, 아빠를 돌아보며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잘 해야 한다고 다시 마음먹었다.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아빠가 잘할게.'
대부분의 불안한 생각은 일어날 확률히 극히 드물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만에 하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에 우리는 오늘을 더 조심하고, 조이고 다듬으며 살아간다. 아이와 공놀이 할 사소하지만 당연하지 않을 행복을 생각하며, 오늘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아이의 아빠로서의 나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조심하며 살아가야지 다시 마음을 먹었다.
- 글을 써둔 시점과 현재 시점에 차이가 있어, 현재 증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절뚝 거리는 증상은 현재 시점에서는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빈도는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 다리를 절뚝 거리는 증상은 근무력증의 영향이지 않을까 의심할 뿐, 정확히 병원에서 진단받은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환우 분들이라면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