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가는 미용실에서 선생님이 놀란 표정으로 물어보셨다. 그 동안 운동을 하지 못했으니 진짜 벌크업 일리는 없다. 갑자기 어떻게 이렇게 살이 쪘냐는 말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신박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사실, 제가 아파서 약을..."
"엇, 네...."
중증 근무력증에 걸리면 보통 처음 메스티논이라는 약을 먹고, 호전이 없으면 스테로이드를 처방 받는다. 약을 처방 받기 전까지스테로이드는 근육이나 운동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운동선수 금지약물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매일 스테로이드를 어쩌면 평생에 가깝게 한 알 이상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게 충격이었다.
스테로이드는 부신에서 분비되어 여러 중요한 작용을 하는 호르몬이다. 체내 면역 및 염증반응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쳐 숙주의 면역 반응을 억제한다고 한다. 근무력증은 신경과 근육의 접합부를 공격하는 항체가 과도하게 생기는 면역반응이 원인이므로, 스테로이드로 면역 반응을 억제시켜서 병을 호전시키는 원리인 것이다.
중증 근무력증이 과거에는 사망률이 높았지만, 현재는 줄어든 이유도 스테로이드 개발 등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스테로이드는 근무력증과 같은 자율신경계 질환부터 내분비 장애, 피부 질환, 알레르기성 질환 등 여러 질환에 효과가 있어 다양하게 사용된다. 왜, 현대 의학에서 신의 축복이라 불리는지 알 듯 하다.
그런데, 스테로이드가 가진 또 다른 별칭은 신의 저주이다. 주 기능이 면역반응의 억제 등인 만큼, 다양한 부작용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마치 이 병을 잡기 위해서, 다른 여러가지 병을 하나 더 만들거나 키우는 느낌이다.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체중증가, 문페이스(얼굴이 달덩이처럼 붓는 증상), 중심성 비만(복부 등에만 살이 찌고 팔다리는 가늘어지는 등의 비만)이 있다. 가끔 연예인들이 치료를 목적으로 스테로이드 치료 등을 받고 왜 갑자기 이렇게 얼굴이 변했는지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진짜 속상하겠다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외에도 정신장애, 우울증, 불면, 두통, 골다공증, 척추압박골절, 근육통, 관절통, 부종, 소화성 궤양, 발열, 피로감 등 여러가지 등 셀수 없는 부작용들이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외적으로 보이고 슬픈 건 체중증가와 문페이스이다. 약을 처음 탔을 때 약사 선생님께서 본인도 스테로이드 치료를 할 때, 식욕을 참을 수 없고 계속 부어서 고생했다면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그때는 의지를 가지고 관리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의지 저편에 있는 일인 듯 하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부은 얼굴과 점점 더 망가져 가는 몸을 보는 게 속상하다. 외적으로 보이는 변화이다보니, 사람들도 살이 쪘는지를 묻는다거나, 갑자기 나이가 든 것 같다거나 운동을 해야겠다는 등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경우들이 더 생긴다.
사람들의 관심의 표현이겠지만, 병에 걸리고 나서 더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지금의 외형을 가지고 나를 평가할 것이라는 생각에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있는 것 같다.
예전에도 체중은 급격하게 늘거나 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쨌든 언제든지 나의 노력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먹고 나서는 식단이든, 운동이든 철저하게 지키면서 성공한 경험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한 동안은 정말 무력감의 상태였다. 마음을 먹어도 금방 무너지고, 운동을 하고 싶어도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부어서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라 제대로 시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거나, 의지로는 못할 일이 없지라고 생각 회로를 돌리는 것은 또다시 무력감을 강화시킬 뿐이었다.
외적인 변화도 서러운데, 내적으로도 무력한 상태. 특히, 운동을 하면 어때라고 하는 말에는 반사적으로 날카로워지기도 했다. '지금 이렇게 보여서 그렇지, 나도 운동 좋아하고 열심히 했었어. 자기 관리 계속 안해서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오죽하면 지금 이 상태로 있는 건데, 알지도 못하면서...' 같은 생각들이었던 것 같다.
다른 환우 분들도 병도 병이지만, 이런 외적인 변화를 주는 부작용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다. 이제 40대를 향해 나가는 나도 이 정도인데, 한참 외모에도 민감하고 꾸미는 나이 대에는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다. 또, 근무력증의 주요 증상 중의 하나는 안검하수처럼 눈이 처지고 내려오는 것인데, 여러모로 불편한 점들이 있는 병이다.
병이 생기고 나서 그래도 나아진 것이 있다면, 예전보다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을 너무 외적으로, 단편적으로 쉽게 생각하고 판단한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지금 나와 비슷한 상태의 사람을 보고 '안 먹으면 되지, 운동하면 되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판단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관점이 여러모로 사람에 대한 이해나 공감의 폭을 넓혀주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한 가지 더 다행스러운 점은 스테로이드는 계속해서 고용량을 투입할 수는 없어서 단기적으로 늘렸다가 점점 줄이는 방향으로 치료가 들어가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10알부터 시작해서, 매 달 한 알씩 줄여가고 있다. 물론, 반대로 다른 면역억제제를 추가로 먹고 있기는 하지만, 처음보다는 적응되었기 때문인지 줄여가고 있기 때문인지 조금 더 잘 억제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은 든다.
또, 당장 예전처럼 운동량을 늘릴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려고 한다. 당분간은 다리도 더 붓고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다시 조금 더 걷고, 운동하고 관리하다 보면 천천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예전에는 혼자서만 다짐해도 어느정도 잘 지킬 수 있었다.
이제는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서 이렇게 글로도 쓰면서 다시 한 번 약속하고 다짐을 해 본다. 체력도 다리도 조금 무력해지고 당장 더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겠지만, 마음이라도 더 굳게 먹어보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꼭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