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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4. 2017

소소했던 일상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는데,

어깨 위에서 곰 가족들이 강강 수월래를 하는 것 같았다.

취미는 잠자기, 특기는 엎드려서 자기인 나 이건만

아 지금도 졸립졸립졸립다.


주말 동안 어깨 위의 곰들을 하나하나

떼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곰인지 사람인지... 반인반곰의 상태로

식당에 먹이를 찾으러 갔다. 


하숙집에 온 지 한 달이 넘었건만

살면서 가장 당황스러울 때는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을 때도 아니고, 

옆 방의 남자가 하루 종일 버즈 노래를

메들리로 불러제낄 때도 아니다.

  

밥 먹을 때가 뭔가 가장 어색스리 한데

시작은 늘, 

"안녕하세요, 하숙집은 이번에 들어오신건가요"

뭐, 이런 식이다 

하숙집에서 밥을 거의 안 먹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늘 볼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어제 그제는,

화장실에서 늘 샤워하면서 버즈 노래를 메들리로 불러 제끼는

그 남자인간이 '나'인가에 대한 공판이 벌어졌었고, 

그 전에는 하숙집에 사는 또다른 'XXX'이라는 사내?에

대해서 하숙집 아주머니와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오늘은 수학 선생님(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과

아침밥을 먹었는데,

오자 마자, 반찬을 보더니 내 등뒤에서 한숨을 푹푹 쉬셨다 

왜냐면, 마지막 남은 조기 한 마리를 접시에 담아낸 건 나였고,

선생님께서는 접시 위에 이제는 흔적만 남은

비늘 몇 조각을 보며 아주 티나게 아쉬워하고 계시는 중이었다. 


9시 근무 때문에 10분 만에 밥을 먹어야 했던 나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반찬을 비워대고 있었지만,

선생님의 접시에 담긴 푸성퀴와 호박 샐러드 따위를 봤을 때

뭔가 뜻모를 죄책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조기의 살점을 일일이 발라 놓을 수도 없고

반토막으로 난도질해서 덜어가면

그건 조기에게 너무나 슬픈 일이잖아 라며

자기합리화를 충실히 해대고 있던 나였기에,

난 조기의 하얗고 단단한 살점을 조심스레 맛 보는 중이었다 


그러나 결국, 밥을 두 숟갈 쯤 떳을 타이밍이었을까

그 선생님께서는 결국 조기를 공유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수학 선생님이라던 그는

"우리 하숙집은 뷔페식이라 깔끔하긴 하지만,

큰 음식들이 나올 때는 덜어먹기가 불편하고, 못 먹을 때가 많다'

라며 수학 선생 특유의 치밀한 논리 전개를 선 보였다 


어제, 경제통계 시간에 적분은 어떻게 하는 거였지라며

당황하던 게 생각난 나는 수학 선생에게 반항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조용히 조기의 머리 방향을 그분 쪽으로 돌려드렸다. 


선생님께서도 조금은 무안해하셨던지,

나에 대해서 약간의 질문을 던지시더니, 

곧 생선 예찬론으로 들어갔으며,

나는 조기의 몸을 반대로 돌려서,

반대쪽 면의 깨끗한 살점을 맛 보게 해드리는 것 정도로

간신히 예의를 차렸다.

 

내 행동이 자못 흐뭇하셨던지,

선생님께서는 염화미소를 띄며,

이거 정말 내가 먹어도 되는 거냐며

인상이 정말 좋은 청년일세 라며 폭풍칭찬을 해주셨다.

 

난 그가 마지막 남은 살점하나까지 하나하나 다

발라먹는 그 장면을 보고싶었지만, 

결국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아, 정말 훈훈한 아침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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