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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5. 2017

세살 배기

토요일 오전에 부랴부랴 용달차에 짐을 싣고 분당으로 이사를 했다.

저녁에 엠티가 있는 바람에,

짐을 집에 넣어 놓기만 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아빠, 엄마는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사는 지 보셔야 한다며,

토요일 저녁에 일이 끝나자마자 올라 오셨다. 


열시 반쯤 서울역에 마중 나가서,

빨간 광역 버스를 타고 4~50분쯤 달려 분당에 왔다. 


눈은 펑펑 오는데, 오는 택시마다 잡히지를 않아서

30분 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겨우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짐을 하나도 풀지 못하고, 바로 서울에 올라갔다 와서

집은 뒤죽박죽인 상태였다. 


주말에 피곤한데 아빠와 엄마를 서울까지 올라오시게 하고,

오시자마자 짐정리를 하게 하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아빠와 엄마는 새벽 세시까지 짐을 함께 풀고

내가 보지 못하는 창틀 구석, 보일러실 까지 구석구석 청소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아들이 필요한 식기부터 가구들까지 필요한 것들을

사야 한다며 하루종일 돌아다니셨다. 


미처 사지 못한 것들은 꼭 사고 밥 잘 챙겨먹으라며 당부하시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으셨다.  


아빠와 엄마는

대학교 때문에 나를 서울에 혼자 보내놓고,

집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그렇게 펑펑 울었다고 하셨다. 


아빠와 엄마는

군대 때문에 나를 논산에 혼자 보내놓고,

집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그렇게 펑펑 울었다고 하셨다. 


아빠와 엄마는

이제 직장도 다니고 좋은 일이니,

이제는 울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려가는 차안에서,

마음 약한 아빠와 엄마는 또 우셨을까. 


나는

대학교 때문에 서울에 혼자 와서, 이제 새로운 자유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며 울지 않았다. 


나는

군대에 갔다오면 진짜 남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 날 울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운다. 


아빠, 엄마가 간다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한 일인지 미처 몰랐다. 


어느덧, 내 나이는 아빠가 결혼하고 내가 태어났던 나이가 되었다. 


요 며칠 짐짓 어른인 척 하고 애써 밝은 척 했지만,

낯선 곳에서는 늘 무섭고 외로워하고,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해 죽을 것 같다. 


아빠는 니가 대학교를 가고, 군대를 가고, 또 직장에 가도

부모 눈에는 늘 니가 세살 배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깨끗해진 창틀을 보니 어쩐지 쓸쓸하고,

아빠,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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