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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Feb 11. 2018

퇴사고민 1주차_포르투갈로 떠나기 3시간 전

  포르투갈로 떠나기 3시간 전. 스타트업 대표 J선배에게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 거냐”라는 카톡을 받았다. 그 날은 팀워크숍 날이었는데 특별히 하루 동안 각자 자유시간을 갖고 저녁에만 잠깐 만나서 맛있는 걸 먹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여행 준비를 하고 회식 시간까지 아직 1시간이 남아 판교역 근처 스타벅스에서 잠깐 앉아서 쉬던 중이었다.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네” 일주일 전에 회사에서 조직문화에 대한 중간 보고를 마치고 벌개진 얼굴로 탄천으로 뛰쳐나간 적이 있었다. "내가 조직에 대해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미 크고 오래된 기업들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일까?" 그 날 J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끝내 전화를 걸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날 연락을 받았다.


  생애 처음 15일 간 유럽(포르투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었다. 1주일 전에 티켓팅을 했 첫 날 숙소 외에는 어떠한 예약도 계획도 없는 채 였다. 10월부터 여러가지 프로젝트들이 몰렸다. 그 중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왜 내가 해야만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었다. 내가 어떤 주제든 늘 좋은 결과물을 냈고 이번 주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씀해주셨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앞으로 인정을 더 받을 수록, 더 경력이 쌓일 수록 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늘어나겠지. 같은 기분을 겪고 있던 동료들과 불만을 쏟아내고 넋두리를 하며 두 달을 보냈다.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미안했다. 불만만 쏟을 뿐 바꿀 힘은 없는 무기력한 내 모습이 싫었다.


  생각을 비울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실컷 걷고, 실컷 생각하고, 실컷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한 번도 일주일 이상 해외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20대를 돌아봤을 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었다. 결혼이라도 한다면 혼자 여행을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일단 떠나 보기로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기로 하고 여행을 떠나는 날에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 거냐”라니. "드디어 이 여행에도 가서 실컷 생각할 주제가 생겼구나"라는 마음과 동시에 큰 인생의 숙제를 받은 느낌이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생각만 하려고 했던 여행이었다. 그렇게 생애 첫 유럽 여행은 반십년 회사 생활에 대한 강제 회고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여행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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