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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r 10. 2018

퇴고 3주차_해야 할 것 말구요. 좋아하는 게 뭐에요?

  세비야에서의 두번째 밤, 노을이 질락 말락 하는 시간 대에 강과 다리를 보면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노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평소에는 노을 질 시간에 나갈 일이 별로 없고, 하늘을 쳐다보는 일도 별로 없었다. 내가 구비진 골목길을 좋아한다는 것과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모여있는 거리를 좋아하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정처없이 떠도는 것을 좋아한다. 생각이 많아서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음 껏 내버려두고 흘려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벤치에서 낮잠 자는 것을 좋아하고,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가도 지나가는 아기가 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 인디음악 모음 라디오를 듣다가 로지피피의 Falling in love라는 노래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세비야에서의 그 하루가 떠오른다.


  해야 할 것보다 하고 싶고 좋아하는 걸 더 생각해 본 다소 낯선 하루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 같아 보기 좋다고 했었다. 나 스스로도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취업 하기 전에 지금의 회사로 올 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다. "하고 싶었던 일을 선택해서 저는 더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를 보여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동안 보람도 많이 있었고 실력 이상의 인정과 애정도 받고 있다고 생각했고 만족하며 지냈었다.


  그런데 “여전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라고 한다면 그 질문에는 쉽게 답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왜 그때는 그렇게 좋아했는데 지금은 자신 있게 답변하기가 어려 울까. 앞으로도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머릿 속이 복잡했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온전히 하고 싶고 좋아하는 걸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땐 여행이 아직 10일도 더 넘게 남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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