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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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간호사 면허증은 아마 평생 동안 (보수교육만 착실히 잘 듣고 회비만 잘 낸다면...) 유효한 것이니까 앞으로도 가지고 있을 텐데, 그 면허증을 어떻게 잘 쓸 것이냐는 내 평생의 고민거리였다.

물론 임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간호사 선생님들을 비하할 목적은 없다. 그저 개인적인 삶이 매우 지루했던 것뿐이다. 2-3년 동안 같은 병동에 앉아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지루했으며, 매일 같은 이유로 시작하는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는 팀 분위기는 오래 씹어 질겨진 껌을 씹는 것 같이 단맛도 없고 질긴 느낌이기만 해서 턱이 아주 뻐근했다. 게다가 간호사로서 퇴화하는 느낌과 환자의 예후에 대한 불감증(거의 호스피스 느낌이긴 했다.)이 생긴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고, 동시에 요양병원업무를 맡기엔 내가 너무 이른 나이에 섣부른 결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마침 나의 특별한 지인 중 한 명을 만났고, 그가 다른 세상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에 없던 자극도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잘 다니던 요양병원에 사직서를 내던졌다. 당장 취업할 곳을 잡은 것은 아니었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대학병원에서 배우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C'시로 올라와 코로나 선별진료소에서 PCR검사 근무를 했다. 3개월도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근무를 하는 동안 머무를 거처가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코로나 선별검사소 근무는 좋았지만, 너무 혹독한 환경이었다. 열 명을 겨우 넘는 의료진들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구역을 배정받는데, 주로 바깥이어서 여름엔 더위를, 겨울엔 또 추위를 정통으로 느껴야 했다. 게다가 한두 시간 만에 적게는 100명부터 많게는 500명 정도의 검사자를 응대해야 하니, 의료진들의 소진 또한 금방이다. 검사를 끝내고 나서는 쓰러져 눕기 바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보다 혼자 충전하는 시간이 꼭 필요했다. 그러니 자취방을 구하는 일은 필수 불가결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알아보고 알아보던 중에, 나의 특별한 지인과 거리가 멀지 않은 집에 방 하나를 구했다. 일단 계약은 단기 계약으로. 나머지는 살아보고 결정하는 것으로 정한 뒤에 나의 초보 자취 생활이 시작되었다.




자취 한 달 차 어린이는 평소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물욕과 좌절감을 정통으로 '처'맞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 생애 처음이었던 자취소감 일기 속 첫 문장이다. 삼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니 삼 개월밖에 지나지 않아서 더 피부로 와닿는 제목일지도. 그전까지는 '나 정도면 제법 좀 진취적인 여성이지.' '혼자서도 잘하는 게 많지!' 하면서 우쭐거리면서 살았는데, 이 오만을 한 번에 허물어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대구의 한 허름한 집, 언니 방 의자에 앉아 곰돌이 푸 머리카락을 뜯어가며 '나도 내 방이 생긴다면 좋겠다.' 소원했던 어린아이는 커서 도망치듯 나와버린 자취방에서 황홀경을 맛본다. 비록 나 혼자 운신할 정도의 작은 규모의 원룸이었지만 나에게는 성전과 같은 곳이었다. 처음 집이라는 공간을 나 혼자 쓸 정도를 얻어 본 경험은 이십 대 후반에 처음으로 온전히 느껴보았으니, 그때의 설렘은 말로 다 한 것 아닌가. 나름대로 첫 도전에 제법 넉넉하고 좋은 집을 구했다고 생각했다. 정당하게 코를 찌르고 얻은 돈(!) 외에 더 이상의 돈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나만의 공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꿈과 희망이 가득한 자취생에게 하얀 벽지는 새로운 꿈을 그릴 가능성의 도화지였다. 모든 것이 충만했다. 했는데...


삼 개월이 지난 지금의 자취생 어린이는 이제 얼추 현실을 깨닫는다. 현실에는 아무리 돈을 많이 써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더 많이 존재하더라는 사실 말이다. 집에 들이는 가구와, 간식들, 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용품으로 채우고 채워도, 정작 밥을 해 먹기 위해 필요한 기구는 모자를 수밖에 없고, 쏟아버린 음료수를 닦으려던 휴지조차 찾으면 늘 모자라다는 사실을, 본가에 있을 땐 보리차 물을 마셔 거들떠도 안 보던 생수병을 몇들이씩 사도 안에 있던 물이 수증기가 되어 증발해 버리는 건지 항상 모자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순간순간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숨 한번 쉬려고 하면 물 흐르듯 빠져나가는 생활비를 보면 기가 차서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백만 원이 넘는 돈으로 한 달을 살고 있는데, 왜 나는 자꾸만 채워지지 않고 비워져 만가는 느낌이 드는 걸까? 게다가 돈 한 푼 벌지 않는 지금의 나는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물건은 사도사도 점심밥에 담을 그릇하나가 모자라서 먹는 것을 포기하게 되고, 갑자기 터져버린 수도관에서 물 새는 소리가 듣기 싫어 싫어하던 바깥으로, 또 집 밖의 커피숍으로 짐을 싸고 나오게 되는 걸까?


점심시간, 나는 지금 노트북과(맥 OS는 아니지만) 책을 들고 스타벅스에 자릿세를 주고 커피를 받아 와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카페에서 글도 못쓰고 집에 가기 바빴을 텐데, 오늘은 커피를 두 잔 째 시켜서 이렇게 긴 글을 쓸 만큼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 글을 다 쓰고 나서도, 조금 더 미적거릴 것 같다. 집에 남아있는 내 마음 한편의 공허함을 눈으로 보기 싫은 탓이 크다. 모든 게 완벽히 갖춰진 것 같은 카페에 앉아 남은 커피를 최대한 천천히 음미하다 가고 싶다. 그렇게 막 새로 받은 커피를 한 모금 삼키는데 내 아주 특별한 지인께서 내 아이디를 태그 했다. '진짜 독립은 이런 것이다.'


'자취를 한다는 것은 생필품 구매로 300만 원을 썼음에도 잼 발라먹을 스프레드가 없어서 부엌에 망연자실하게 서 있어야 하는 그런 것이란다.'


지인이 보내준 밈을 보고서는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조금 더 카페에 뭉그적거리며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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