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뚜막 고양이 Jan 15. 2023

4. 흔들리는 마음

<4월의 밤공기>

이제 마음을 정할 때가 되었다. 결혼까지 약속한 남자친구보다 그가 나의 마음속에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시간을 갖자고 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단지 나를 아껴주고 오랜 시간 함께 했기에 정이 들었을 뿐이었다.

양가 집안도 서로 자주 왕래했기에 자연스럽게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고, 다른 사람과의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의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 주 금요일 오후 우리는 커피숍에서 잠깐 만났다. 약속 장소는 삼성동 H빌딩에 있는 폴바셋, 낮에도 어두컴컴하면서 넓게 뚫린 공간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가 먼저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미리 음료를 주문해 놓으려고 메뉴를 물었다.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왠지 모르게 그와 닮았다. 진하고 고소한 향기 뒤에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의 차 바로 옆에 자리가 비어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차했다.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차를 바라보자니 괜히 연인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카페로 들어서자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검은색 피케셔츠를 입고 있어 시크한 느낌을 풍겼다. 내가 맞은편 자리에 앉자 빨대를 컵에 꽂아 나에게 내밀었다. 무심한 듯 행동했지만 다정한 그였다.

“나 여기 진짜 오랜만이다. 예전에 아빠가 근무하실 땐 자주 놀러 왔었는데.. 그때는 이런 커피숍 없었거든.. 이렇게 큰 커피숍도 생기고 좋아졌다.”

이곳에 이렇게 큰 커피숍이 생긴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 회사의 전직 CEO였다. 일반 사원으로 시작해 CEO의 자리에 오르신 입지전적인 분이셨다. 그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는 듯했다. 매번 아버지에 대해서 말할 때면 자기와는 다르게 대단하신 분이라며 추켜세웠다. 그때 아버지를 만나러 이곳에 왔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는 감회가 새롭다며 한참을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그동안 뭐 하고 지냈어?.” 그가 나에게 물었다.

“뭐 그냥 특별할 것 없이 지냈어.”

“넌.?”

“나야 뭐 회사 일로 정신없지. 며칠 좀 쉬고 싶다.”

그는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그렇듯,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 우리는 서로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로 시간을 채워갔다. 며칠 전 전화 통화에서 주고받은 달콤한 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조금은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리고는 무거운 말들이 오고 갔다.

“우리말이야. 무슨 사이야?”

그가 나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아직 남자친구와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어.”

“그래.. “

한 동안 정적이 흘렀다.

”기다릴게… 정리될 때까지.”


우리는 주차장으로 함께 걸었다. 주차하고 그를 만나러 올 때는 먼 길이었는데 돌아가는 길은 짧디 짧았다. 주차장이 조금 더 멀리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스쳤다 사라졌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온종일 그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와 조용한 공원에서 손을 잡고 걸었다. 바닷가로 여행 가서 펜션을 잡고 그에게 맛있는 음식도 직접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함께 껴안고 침대 위를 뒹굴었다. 나의 상상 속에서 끊임없이 그와 함께할 날들을 그려보았다.


이런 생각들이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면 더 큰 외로움이 밀려왔다. 간절히 원하지만,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것들이기에 몸서리치게 쓸쓸해졌다.


우리는 만나지 않을 때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각자의 삶을 살아갔다. 가끔 안부만 물어볼 뿐이다.

그는 늘 일에 치여서 지냈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끊임없이 업무에 시달렸다. 밤늦게까지 회식이 있는 날도 많았고, 수시로 지방으로 출장을 다녔다.

언젠가 그의 동료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 그 녀석 진짜 일을 잘해요. 괜히 승진이 빠른 게 아니에요. 보통 녀석이 아니라니까요. 사람도 잘 챙기고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잘해요.”

대학 때 아무 생각 없이 술 마시고 함께 어울려 놀았던 터라 사회생활을 훌륭하게 해나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도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데 바쳤다.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분명 멋있게 보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언젠가 그가 술 마시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사실 돌아가신 엄마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어. 힘들고 지칠 때 엄마한테 다 털어놓고 얘기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잖아.. 그럴 때마다 엄마 생각 많이 나.”

그에게 돌아가신 엄마의 존재는 너무나도 컸던 것이다.

나는 그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의 엄마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환해지는 그런 사람... 그가 나에게 그렇듯이.






















































이전 03화 3.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