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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뚜막 고양이 Jan 16. 2023

5. 첫날밤

<4월의 밤공기>

우리의 다음 만남에서는 커피가 아닌 술을 마시기로 했다. 대낮에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처럼 어색하고 불안하기 싫었던 것이다. 우리는 작은 룸으로 되어있는 술집에서 만났다. 그 누구의 시선도 미치지 않는 곳이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우리는 술을 주고받으며 금세 취해버렸다. 취했음에도 서로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하며 거리를 두었다. 혹여라도 실수할까 봐 애써 모든 욕구를 참으려 애를 썼다.


우리는 제법 많이 마셨는지 잔뜩 취해있었다. 취기가 올라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또다시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그의 손이 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따뜻한 느낌이 손끝에서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와 손을 잡으니 우리는 마치 연인이 된 것 같았다. 그의 일부는 나에게 속해있고 나의 일부는 그에게 속해있었다.


그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꼭 껴안아 주었다.

“춥지?”

그는 나를 보호해주기라도 하듯이 소중하게 감싸 안았다. 그의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나도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슬림하고 탄탄한 몸이 그대로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길을 걸었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옆에 비즈니스호텔이 눈에 띄었다.

“우리 저기서 쉬다 갈까?”

나는 그에게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안 돼요 안돼.”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장난으로 시작한 말이었지만 그가 거절하자 나는 괜히 오기가 발동했다.

“왜 안돼? 잠깐 쉬기만 하고 나오면 되잖아. 응?”

그는 술에 취한 상태였지만 정신을 차리려는 듯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나도 너랑 자고 싶어. 근데 우리 이러면 안 돼.”


나는 그런 그의 팔을 끌고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그는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생각을 고쳐먹은 듯 체크인을 하고 룸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는 관광객인듯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술 취해서 호텔방으로 올라가는 남녀를 바라보고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불현듯 우리 관계가 들킨 것 같아 어디론가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카드키를 문에 갖다 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오랜 기간 친구였던 그와 호텔에 들어오다니 기분이 점점 이상해졌다. 호텔방 안은 어색함으로 가득 채워지고 말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몰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TV를 켰다. TV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조금은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 그는 익숙한 듯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나는 순간 놀라서 눈을 가렸다. 하얀 그의 몸뚱어리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가 벗어놓은 롤렉스 시계와 아이폰이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셔츠와 바지는 가지런히 의자에 걸려있었다. 나는 멀뚱히 그의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씻고 나오면서 나도 얼른 씻고 나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나는 알몸으로 샤워하면서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나의 몸을 좋아할까? 그에게 나의 벗은 몸을 보여줄 생각을 하니 그만 아찔해졌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그의 옆에 조심스럽게 누웠다. 그에게 맨몸을 보여주기 쑥스러웠던 나는 벗어 놓은 옷가지들을 그대로 다시 챙겨 입고 나왔다.

“뭐야 왜 이리 꽁꽁 싸매고 나왔어?”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와 상의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두 손으로 드러난 몸을 감췄다. 하지만 그의 손길은 이미 치마 지퍼를 향해 있었다. 나를 덮고 있던 모든 것들은 허물 벗듯이 벗겨져 나갔다. 우리는 흰 살결을 드러내고 서로 마주했다.

그는 부드럽게 얼굴을 감싸고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내 피부에 닿을 때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나의 몸은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내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유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격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슬픔의 눈물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나의 혼란스러웠던 마음은 그의 눈빛에 이내 녹아내리고 말았다. 그에게 온전히 내 몸을 맡겼다.

그 날밤 나는 미지의 세계를 경험한 듯했다. 분명 이때까지 알고 지내던 그와는 달랐다.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잠자리에서는 조금 거칠고 힘이 넘치는 수사자 같았다. 우리는 몇 번이나 계속 사랑을 나누었다.


그는 이내 지친 듯 조용히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나는 그의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왠지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때까지 알던 그와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잠들지 않은 채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관찰했다. 군살 없이 탄탄한 그의 몸은 마치 밀랍인형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의 셔츠 안으로 드러난 몸을 처음으로 보았다. 신기한 것을 본 아이처럼 나의 눈은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의 모든 것이 내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높이 솟아있는 그의 코를 살짝 만져보았다. 그는 놀란 듯이 일어나 다급하게 옷을 입기 시작했다.

“왜 그래?”

“시간이 너무 늦었다. 얼른 나가자.” 우리는 급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호텔방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엘리베이터 안에 밝은 불빛이 우리를 비추자 마치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죄책감을 느끼는 듯 조금은 불편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나도 그만 마음이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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