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울며 나오는 아이를 보며,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다. 왜 굳이 벌써 이렇게까지 공부를 시켜야 하나에 의문을 갖던 내가, 나도 모르게 빅 3, 빅 5를 찾으며 이전 원보다 더 좋은데 가자고 아이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니 학원을 보내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레테의 압박감, 유명학원의 도도함(한 곳이긴 했지만 임팩트가 컸다.), 더 이상 경쟁 속에 아이를 넣고 싶지 않았다. 매주 있는 단어시험, 레벨테스트, 순위별로 세워지는 성적표에서 아이를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학원을 그만두고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원래도 밝은 아이라 생각했는데, 실은 더 밝고 흥이 많은 아이였다는 것이다. 주 3회 두 시간씩 학원 수업, 1-2시간씩 걸리던 숙제시간이 빠지고 나니 아이의 삶에 여유가 생겼다. 더 많이 웃고, 장난을 치고, 춤을 추는 시간이 늘어났다. 간혹 보이던 예민함, 짜증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제일 좋은 것은 아이와 더 이상 숙제로 씨름할 일이 없어졌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긴 했지만, 아이가 가끔은 버거워했고,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억지로 끌어와 과한 공부를 시키는 게 내 마음도 불편했기에 해방감이 느껴졌다.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고, 바로 성적이 나오며, 꼭 그날까지 외워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컸다. 집에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졌고, 이전에 비해 아이에게 화를 낼 일이 반이상 줄었다. 그 시간에 가족들끼리 대화를 하고, 보드게임을 하고, 일상을 좀 더 깊이 공유하게 되었다.
아이는 남는 시간 동안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 피아노 등 창작활동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테이프를 붙이며 스티커 놀이판을 만들기도 하고 입체적으로 놀이터를 만들기도 해서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선물하기도 했다. 아이 주변에 친구들이 더 늘어나고 아이의 친구 관계도 더 넓어졌다. 피아노를 주 3회로 늘리고 여유시간이 많아져 집에서도 뚱땅거리기 시작하니 실력이 쑥쑥 늘기 시작했다.
신기한 변화는 초반에는 관찰되지 않은 책 읽기의 증가이다. 여러 육아책에서 말하는 아이가 심심해지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학기 중에는 학원을 끊은 효과가 크지 않다가 방학이 되니 아이가 너무 심심한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그간 너무 만화책만 읽은거 같다고, 이제는 글밥 있는 책을 읽고 학교에 내진 않지만 독서록을 써보겠다고 했다. 평일에는 한 권씩 주말에는 두 권씩 해보겠다고 계획을 세우는 모습에 너무 기특해서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어제는 독서록을 그림 위주로 자꾸 그리게 된다며, 그림만 그린날은 일기를 써보겠다고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시간이 남아도니 이제는 스스로 할 일을 찾고, 뭐가 자신을 위해 더 유익한지 생각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주어진 숙제만 해치우듯이 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기 주도적 공부가 시작된 것 같다. 자기주도적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하나 계속 고민해 오던 것인데, 시간이 여유로워지니 아이 스스로 생각할 틈이 생긴 것 같다.
영어학원을 그만둔지 4개월 정도 되었고, 이제는 주변에서 학원 안 보내냐는 질문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상태가 되었다.
"네, 놀 수 있을때 더 놀게 하려고요~"
영유를 보내고 초등 연계로 어학원을 보내며 남편이 항상 지적하던 것이 있다. 네가 영어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어서 애 영어를 더 시키는거 아니냐는 것. 남편은 미국 이민자라 영어에 능통했고, 나는 중학교 때 알파벳을 시작하고 그리 영어를 좋아하지는 않아 수능 영어를 잘 맞출 수 있는 수준의 영어만 가능하다. 해외에 나가거나 외국인을 만나면 주눅이 많이 들었고, 전문의가 된 후 유학에 대한 욕심도 잠시 있었으나 영어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에게는 너무 진부한 지적 아니냐고 했지만, 어쩌면 내 마음속에 아주 조금은 그런 마음이 있어서 아이 영어를 열심히 시켰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마흔이 넘은 지금, 나의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