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릴 순 없잖아?
나는 계절감 느끼는 걸 좋아한다. 봄, 가을은 점점 짧아지지만 그래도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달리기 덕분에 짧은 가을을 매일 느끼고 있다. 하루 하루 다른 공기와 바람, 노랗게 빨갛게 물들고 있는 잎사귀, 비와서 떨어진 낙엽 등 변화를 오감으로 느껴 본다. 보통은 3~4km를 멈추지 않고 앞을 보며 달리는데, 요즘은 산책하듯 걷고 두리번 거리며 주변 풍경도 많이 감상한다. 솔직히 매일 뛰고 나서 스트레칭을 충분히 해주지 않아 다리가 많이 뭉쳐있었다. 무릎과 발목도 조금의 통증이 느껴질 때가 있고. 그런데 가을을 핑계삼아 자주 걸으니 많이 풀렸다. 오히려 조아~
달리기를 하면서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은 꽤 많았다. 노래를 들으며 따라부르기, 없어지지 않는 생각 중 하나를 골라 계속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 해보기, 우선 순위 정리 또는 생각 정리를 하기도 하고. 유행했던 MBTI 중 나는 상상을 즐기는 N이기 때문에 그런지, 달리면서 공상하는 자유가 좋기도 하다. 실제론 초보 러너면서 마라톤 나간 선수마냥 트랙길을 뛰기도 하고, 자연에게 감사해서 나무들과 인사하고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최근에는 로제의 APT 신곡을 무한 한곡 재생으로 따라 부르며 로제가 된 것처럼 달렸다. (이상한 사람 아님)
달리기 자체가 힘들고 하기 싫어하던 이전과는 뭔가 조금 달라졌다. 달리는 건 동일하고 노래를 듣거나 생각을 하거나 하는 행위도 비슷한데 무엇이 달라진 걸까?
그렇다. 매일 나는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나와 대화하고 나의 마음을 들어주는 시간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저런 핑계로 솔직한 감정을 끌어올려 마주하는 걸 자주 하는 편은 아니였다. 심지어 힘들고 무기력할 땐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불편해서 이제 못 견디겠다 할 때까지 마음 보는 것을 피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젠 하기 싫어, 귀찮아, 힘들어, 불편해 등 당장 편하자고 회피하는 것들을 달리기 통해 마주한다.
나의 삶에 대한 태도가 좋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특히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에 공감하고 있다. 마음을 마주하는 것 외에도 매일 움직이니까 다른 부분들도 좋아지고 있는데, 하나는 실행력이 좋아졌다. 할 일을 미루는 일이 전보다 줄고, 생각하고 고민하기 보다는 행동으로 빨리 옮기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일희일비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태도이다. 마냥 좋다, 괜찮다하는 것이 긍정이 아니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할 수 있어’, ‘이 부분은 내가 부족하구나.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을까?‘,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실수해서 너무 아쉽다. 해봤으니까 다음에 한번 더 시도해보자.‘ 당장 부족하고 못난 나의 모습들도 수용하는 마음이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매일 달리는 루트를 통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인생도 평탄한 하나의 길을 막힘없이 달리고 있다는 착각을 종종 하는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평소 잘 되던 것이 어느 날은 잘 안 되기도 하고, 힘들 땐 잠시 쉬기도 하고, 일부러 비효율적인 길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포인트다.
이런 과정을 느끼게 해주는 달리기야 고맙다!
오늘의 달리기를 하러 이만 나가 보겠다.
이제 점점 차가워지는 바람과 추위를 대비해야겠다고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