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은 Aug 04. 2022

나의 '홍'





사람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결’이라는 게 있다. 머릿결, 피부 결이 다 다르듯이 마음의 결, 취향의 결, 성정의 결이 모두 다르다. 

사람 사이에서 결이 맞는다, 는 말만큼 마음이 편해지는 문장도 없다. 결이 맞는 사람이라 하면 어쩐지 취향의 간극이 너무 벌어지지 않고 대화의 온도가 크게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을 것만 같다. 결이 맞는 사람이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절로 안정감이 느껴진다. 

대화가 잠시 끊겨 침묵이 감도는 순간도 결이 맞는 사람과 함께면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그 쉼이 반갑기까지 하다. 


쉴 새 없이 말을 하고 웃어야 편안한 사람은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한다. 웃음이 있어야 하고 잘해줘야 하고 또 잘 보여야 하는 만남은 얼핏 유쾌해 보여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가만히 서로를 내버려 둬 주는 여유는 아무와 나눠 갖는 게 아니다.

요즘처럼 갑자기 대화를 멈추고 핸드폰을 만지느라 마가 뜨는 그런 침묵과는 애초에 다르다. 더욱이 나처럼 조금 시끄럽고 말 많은 인간에게 여유로운 침묵이라니, 귀하고 드물기까지 하다.     

잠시 다른 생각 하거나 아무 생각을 하지 않거나, 뭐든 해도 그러려니 내버려 두게 되고 또 지켜봐 주는 그런 사이가 있는가. 



크게 운이 없는 사주팔자라지만 무슨 복인지 어릴 적부터 그런 사이인 사람 둘이 있다. 살면서 진정한 친구 둘만 있어도 성공한 거라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제법 성공한 셈이다.

느닷없이 성공한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는 둘, 오늘은 그 둘 중에 동방예의지국의 순서를 지켜 ‘홍’을 먼저 소개하려 한다.     

풀네임 홍승현, 승현 언니. '홍'이라 불리는 언니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경우 예의 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지 않았지만 제법 싸가지없다는 소리를 들어오며 살았다. 아 물론 지금도 들으며 살고 있다.

절대 먼저 시비를 걸거나 소리를 높이진 않는데 상대가 무례하게 구는 것을 참지 않는다. 기분 나쁜 티를 너무 잘 내서 문제다. 

학교 다닐 땐 선생님과 교수 앞에서 할 말 못 할 말, 다하다가 미운털 박힌 적도 많았고 불쾌함을 숨기지 않은 눈초리 하나로 별안간 ‘못 된 년’이 되기도 했다.

어렸을 땐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제법 싫은 소리도 잘하고 인상도 잘 쓰는 것은 물론, 여차하면 싸우겠는데? 싶은 일에 굳이 숨지 않는다. 

스스로 굉장히 여리고 소심하고 잡생각 많은 인물로 정의하는데 웃긴 것은 그런 단면 때문인지 정작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데에 있다.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가 나를 생각하듯 사람들이 나를 봐줄 수 없음을, 내 마음과 다르게 벌어지는 일들에 속상해도 그 역시 별수 없음을 말이다. 오해를 풀겠답시고 나서다가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

외형으로 정의되는 이미지만을 믿으려 하는 사람들은 그 이미지의 인격만 요구하기도 한다. 

굳이 나 아니어도 안팎의 갭 차이가 심한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고 한들 인격을 여러 개 두고 살아야 하는 요즘 같을 때면 더더욱 그 괴리로 많이들 고민할 것이다.

안타깝고 속상할 때도 있겠지만 우린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대충 보고 대충 정의해서 보고 싶은 모습만 보여달라 한다.     



내가 홍, 이라고 부르는 승현 언니와의 첫 만남은 무려 고등학생 때였다. 무용과 입시를 하면서 만났고 같은 해 나란히 입학했어도 꽤 다른 궤적으로 20대를 보냈다. 

가장 파란만장하고 세상에 불만 많던 열여덟 살이었다. 무용학원에서도 어딘가 삐딱하고 곱지 않게 굴던 게 그대로였고 오해 사기 좋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너 그러면 안 된다’라는 뉘앙스로 한 소리 듣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내가 또 문제였겠거니, 대수롭지 않은 척을 해댔어도 어린 마음 한구석에 내상을 새겨가고 있는 때였다. 

사실 그렇지 않았는데 그때는 어딘가 늘 의기소침해 있는 시절이었다.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하는 기분에 겉돌다가 혼자 나자빠져 혼자 홱 돌아서는 알 수 없이 이기적이면서 연약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기도 했다.

무용도 쉽지 않았고 그 안에서 사람도 쉽지 않았다. 이제 난 또 어떠한 나를 만들어내야 하나. 더 이상의 잡음을 만들어내지 않는 레귤러가 되려고 홀로 무딘 애를 쓸 때였다.      


언니는 그 순간에 그저 날 가만히 지켜봐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너 그러면 안 된다는 충고 한마디 한 적도 없고 괜찮냐고 다정히 물어주지도 않았다. 그저 모르는 척해주는 사람이었다.

너무 알아주고 너무 위로하지 않은 채로 언니는 선선한 거리감을 둔 채 매일 나와 함께였다.

때론 괜찮냐고 묻지 않고 섣부르게 공감해주지 않는 것이 훨씬 더 고맙기도 한데, 그때 언니에게 느낀 감정이 그랬다.

다 알면서 다 아는 체하지 않아 주는 배려가 있음을 그때 알았다.     


‘수고했어. 내일 늦지 말고 와.’     


막차가 끊기기 전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탈의실 밖으로 나가려 하면 언니는 늘 저런 인사를 해줬다.

그 말이 너 오늘도 잘 버텼어, 그러니 내일도 나와서 잘해보자는 말로 들렸다. 언니 역시 혼나기도 하고 무용이 마음처럼 순조롭게 잘 되는 게 아닐 텐데도 늘 저렇게 인사를 해줬다. 설령 언니가 아무 메시지를 담지 않고 그저 인사로써 건넨 한 마디였을지라도 그때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미운털 박힌 못난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했다.


고작 한 학년 위일 뿐인데 언니는 매일 그 속 깊은 한 마디로 마음속 어디 한쪽이 일그러진 나를 보듬었다.     

무용이고 나발이고 때려치울까, 하며 깜깜한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의 막차에 앉아 막연히 우울할 때면 그래도 언니가 내일 나오랬으니 내일만 나가보고.라는 생각을 했다.

내일은 그래도 오늘보다 잘하겠지.

집 근처쯤 도착하면 슬며시 근본 없는 긍정을 떠올리곤 했다. 내일 늦지 말고 오라는 인사 한마디가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등짝을 길어 올려주는 기분이었다.     


언니는 그때 나의 버팀목이었다.

모두의 근심 걱정, 나조차 나를 자신하지 못하던 때의 불안함을 요란하지 않게 응원하고 지켜봐 준 고마움이었다.      


모두 따뜻한 말 한마디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가까이에 언니를 두고 지켜보며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과연 뭘까, 생각해봤다.

물론 자상하게 온갖 말랑한 단어의 나열로 사람을 노곤하게 만드는 것이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언니를 알고 난 뒤 내가 정한 따뜻한 말 한마디는 ‘사려 깊되 기름지지 않은 겨울날의 따뜻한 어묵 국물 같음’이다.   


  

언니는 지금까지도 그렇다. 만날 때마다 주려고 가져왔다며 불쑥불쑥 선물을 내밀고 이게 제일 맛있겠다며 음식을 덜어준다.

나라면 생색내고 싶어 간지러웠을 텐데 언니는 당최 그런 법이 없다. 

무얼 내주고 나누어도 그 긴 시간 동안 내색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때마다 유행에 둔감한 나는 모를 브랜드의 핸드크림과 화장품, 아이의 간식을 챙겨 보내고 간간이 짧은 편지로 사람을 울렁대게 한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까. 유난스럽지 않으며 차갑지 않은 적정의 온도를 유지하는 평온함은 염치없이 자꾸 잠겨 들고 싶게 한다.


계절보다 변화무쌍한 게 사람과 사람의 사이인데, 일정한 온도와 농도를 이토록 오래 유지하며 미끌 대지 않고 무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언니를 생각하면 이끼 하나 껴있지 않고 잘 정돈되어있는 고요하고 깊은 연못이 떠오른다. 그러면 나는 그 연못 속에 풍덩 빠져 쉬고 싶은, 연못을 꿈꾸며 헤엄쳐 나가는 지친 잉어가 되는 기분이다.          


연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언니는 네가 그렇게 힘들어했을 줄은 몰랐다며 내 글을 읽고 울었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미안했다. 오히려 너무 가깝기에 다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내 이기적인 자격지심 때문에 창피했다. 언니는 늘 나보다 다 나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또 못난 내가 되는 게 싫었다. 딱 언니같이 잔잔하고 편안한 사람과 행복한데 내 불행을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을 이야기하고 위로받긴 했지만, 더 깊은 내 안의 이야기와 슬픔에 언니가 마음 아파하는 걸 원치 않았다.      


나는 한 번도 우리의 관계를 우정이라는 범주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정이라는 단어에는 어딘가 애틋함이 빠져 있는 기분이라. 그렇다고 사랑이라기엔 고통스럽지 않은 사이라 그저 '홍언니와 나'로 일컬었다.

어쨌거나 사랑해 마지않는 언니에게만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싶으면서 초라한 건 또 보여주기 싫은 요상한 심리가 있었다. 

언니는 벌써 차근차근 모든 것을 이뤄가는 어른 같은데, 아직도 나는 언니에게 잘 보이고 싶은 열여덟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가 기꺼이 함께 앓아줄 걸 잘 알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받은 위로만 복습해도 마흔까지는 어느 상처에도 뚝딱 나아야 할 정도인데 또 나 때문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언니라고 파도가 없었겠고 누가 돌멩이 한번 안 던졌을까. 그리 잔잔하게 잠겨 들고 싶은 물을 품고 있기까지 그냥 된 건 아무것도 없을 거다. 

이끼가 끼지 않으려 홀로 수없이 연못 바닥을 닦아냈을 거고 내가 그랬듯, 동생이니까 괜히 미안해 말하지 않고 흘려보낸 수많은 고민과 슬픔으로 못을 채웠을 거다.      


어째서 이런 결이 같고 비슷한지 참 희한할 뿐이다. 머금기만 하고 뱉어낼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 답답해 보여도 우린 이 안에서 평화롭다. 그래서 오랜 시간 느린 관계를 유지하며 굴러간다. 

박효신의 <연인>이라는 곡에서 이런 가사가 나온다.  


쉽게 위로하지 않고, 서둘러 웃지 않아도

고요히 물드는, 눈빛으로 알 수 있는


실로 언니가 생각나는 가사다. 

쉽게 위로하지 않고 서둘러 웃지 않지만, 앞으로도 고요히 물들어가다 오랜 시간 눈빛으로 서로를 알아주기를. 바라기만 하면서 멋쩍다. 언니가 생각났다고 해본 적이 없지만 이 글로 아마 알 게 되겠지.

하지만 언니는 이미 훨씬 전부터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키는 내가 훨씬 큰데 가끔 언니에게 안기고 싶은 날이 있다. 

그렇게 또 만날 땐 언니가 준 핸드크림을 잔뜩 바르고 그때는 내가 제일 맛있어 보이는 한 입을 먼저 챙겨줄 거다. 언니는 왜 다 알아요?라고 앞뒤 다 자르고 물으면 내가 모르는 게 어딨냐고 싱겁고도 따사롭게 픽 웃어 줄 거다.

     

그나저나 얘가 갑자기 왜 이래, 하면서도 별 말없이 등을 쓰다듬어줄 나의 홍언니를 생각하며. 







    

작가의 이전글 MBT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