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앉아 있었을까,

06

by DAISYEON

어느 정도 앉아 있었을까, 이나는 컵라면을 먹으려 했던 것 같았다. 면은 다 불어 터져서 라면이 아니라 우동같다. 밤이 찾아와 방이 어두컴컴해졌다. 아무리 먹는 것에 방점을 두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면을 먹고 싶진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음식물 쓰레기 통에 고이 넣었으려나. 두바이에 오고 난 이후로는 재활용이나 분리배출을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최근 들어서는 열심히 투자한다곤 하지만, 한국처럼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과 순환 시스템이 갖춰져있지 않아서 개인이 노력해 봐야 큰 변화를 만들 수 없다는 확신이 들어서다. 아무튼, 종이 쓰레기가 들어 있는 쓰레기통 안에 불어 터진 컵라면을 쏟아 넣어도 별로 죄책감이 생기지 않게 됐다.

반창고는 몇 년 동안 써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가져와서,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사용하고 있다. 다칠 때마다 반창고를 붙일 수 있는 사치스러운 상황도 아니거니와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키트가 있기도 해서다. 물에 덴 손이 부분이 부분이라, 영 거슬려서 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살짝, 작게 올라온 수포가 보인다. 방울방울, 어제 끓어오르던 물방울같이 생겼다. 폭. 터트리면 많이 아프려나. 바늘을 갖다 대는 대신에 반창고를 덮어주었다. 잘 자렴.

손가락에 집중을 너무 했나, 8시가 훌쩍 넘었다. 8시 30분까지는 자리를 잡았어야 했기에 35분을 향하고 있는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고, 립밤을 바른 후에 노트북 카메라를 조정해 앉았다.



Hello, I am so sorry for late. /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해요.


That’s totally fine. How are you today? / 정말 괜찮아요. 오늘 어때요?


I’m... okay. / 전… 괜찮아요.


이나와 주마다 상담을 하고 있는 상담사다. 상담사는 정갈한 복장에 햇볕이 잘 들어오는 방 안에 앉아 있다. 아무래도 시차가 있어서 그렇겠지.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할 수 있는 상담사를 구하다 보니 원격으로 할 수밖에 없었고, 그중에서도 한국어보단 영어가 더 편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 두바이 안에서는 한국 교민을 찾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그중에서도 상담 자격이 있는 정식 테라피스트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건너 건너 머나먼 곳에서의 테라피스트를 구했다. 값비싼 금액에.

이나의 회사가 제공해 주는 기본적인 건강 보험이 있긴 하지만…. 기대하기 어렵다. 중동에서는 정신 건강 문제에 아주 예민하다. 가까운 나라들 -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 인식은 현저히 다른 모양이지만. 회사 안에서는 이런 사항을 티 내서는 안 된다. 정신병으로 약물 치료 내지는 상담을 받고 있다고 하면 당장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이나는 일자리를 잃기 싫었고, 정신병으로 인해서는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이나의 이 시간은 항상 비밀스러웠다. 가족에게도, 회사에게도.

이나는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것이 영 쉽지 않았다. 저쪽에 앉아 있는 사람의 이름이 벨라인 건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말을 할 때마다 벨라의 눈보다 입을 보는 것이 편했다.



Not the food, anything else? Are you thinking about something else? / 그러면 음식 말고는요? 뭔가 떠오른 게 또 있을까요?


Something…? / 뭐가요?


The things are making you nervous. You mentioned chips and chocolate. /이나 씨를 신경 쓰이게 하는 것들요. 감자칩이랑, 초콜릿 말고.


Oh, I... I feel nervous when I tie up my hair. / 아 음…. 머리 묶을 때요.


Do you think you know the reason? / 왜 그런 것 같아요?


I don’t know. / 모르겠어요.


슬쩍 구불거리는 머리가 보였다. 승무원이 되고 난 이후에는 머리를 가만히 두던 날이 없었다. 아주 빳빳하게, 꼬리 빗을 가지고 말이다. 그래서 염색이나 파마를 하는 편이 아닌데도 머릿결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나름 컨디셔너와 헤어 오일을 빠트리지 않고 발라주는 편인데도 말이다. 이나는 습관적으로 책상 옆에 두었던 초콜릿을 바라보다가 쓰레기통에 던져서 버렸다. 퉁. 하고 쓰레기통에 초콜릿 통이 부딪히는 소리가 꽤나 크게 났다.



Excuse me. / 죄송해요.


습관적인 사과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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