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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졔 Dec 15. 2023

내가 아는 너는 분명히 강한 사람이니까

우울증 환자를 위로하는 방법

‘위로’.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내가 정신과를 방문하고 우울증을 진단받기 전에, 나에게 본인의 정신과 진단명과 증상에 대해 이야기해 줬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당시에 그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말 그대로 정말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어떡해…’, ‘괜찮아?’라는 말을 하면 동정처럼 들릴까 두려웠고, 어찌 보면 본인의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대화 거리를 찾아 화제를 돌릴 만한 대화 스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기껏 했던 행동이라고는 저 ‘괜찮아?’를 물은 후에 감정에 대해 묻기에는 조심스러워서, 병원의 시스템이나 약의 투여 횟수 같은 신변잡기 식의 질문만 해대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함께 있는 동안에라도 친구를 웃게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남을 웃기는 재주는 딱히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실없는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진다거나, 조금 더 목소리의 톤을 높여 분위기를 띄워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 등뿐이었다.

 

 나의 그런 행동들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혹여나 위로가 되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싶어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 볼드모트처럼 ‘그 병명’을 입에 담지 않는 것이 그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 옆에 그들이 찾을 때 있어주는 것, 그리고 가끔 안부를 물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만나는 친구인 나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을 보살펴줄 수 있는 가족이나 애인이 나보다 더 위안을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 나는 그때의 친구들처럼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떻게 이곳을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저 막막한 상황에서 마음이 맞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후, 어쩌다 그 친구들 중 한 명과 연락이 닿았다.


 진단서나 법적으로 처리를 해야 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조언을 구한 후, 그녀는 나에게 12시간 시차가 나는 그곳에서 메신저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울이 길어지니까, 내가 원래 아픈 애였는지 헷갈리더라고. 원래 항상 약했던 것 같고. 예전에도 무너졌던 순간만 떠오르고. 근데 내가 기억하는 너는 엄청 강한 사람이니까, 꼭 헷갈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만 아픈 거야.”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이처럼 위로가 되는 말은 없었다.


 같은 병을 앓았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들보다 나의 마음을 잘 헤아려 줄거라 생각하고 짧은 시간 동안 훨씬 큰 의지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그저 ‘강해져야지. 이겨내야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원래 강한 사람이니까, 그걸 의심하지 마.’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 이렇게나 큰 힘이 될 줄이야.  




 우울증이 가장 힘든 이유 중에 하나는, 본인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니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이 아픔이 영영 지속될 것만 같아 남들은 다 나를 제치고 달려 나가는데 나만 그곳에 덩그러니 남아 어둠 속에 서 있는 것 같은, 한 순간에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그 기분. 그 기분은 친구의 말대로 내가 이전에도 이렇게 우울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우울을 극복했던 이전의 방법들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끝없는, 불빛 하나 없는 터널 속에 갇힌 것만 같을 뿐이다.  


 그런 사람에게 ‘지금만 아픈 거야.’라는 말은, 아픔을 인정해 줌과 동시에 그 아픔이 끝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같이 주는 진정한 위로의 말이었다. 사실 전문가로부터 명확히 진단받기 전까지 정신질환의 경우 본인이 본인의 아픔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주변의 사례도 정확히 알지 못하니까. 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나는 지금 아프다. 하지만 지금만 아픈 거다. 감기처럼, 안 쓰던 근육을 써서 다음 날 자고 일어났더니 아픈 근육통처럼, 낫는다.


혹시 주변에 본인의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에 대해 고백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이전에 했던 위로의 방법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아프다는 것을 인정해 주고, 그것을 낫게 해 줄 수 있는 활동들을 제안해 주자. 실제로 나는 ‘어떡해…’라는 말이나 내 앞에서 같이 울어줬던 사람의 위로에도 많은 위안을 얻었지만, 갑자기 한강 야경을 보며 달리는 드라이브를 가거나, 이전과 똑같이 맛있는 걸 먹고 인생 네 컷을 찍고 코노를 가거나, 끝없이 옆에서 수다를 떨어주는 것이 더 큰 위안이 되었다. 나를 그 어둠 속에서 끌어내 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나 스스로의 강인함에 대해 일깨워준 그 친구에게 감사하며,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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