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함과 정신건강의 상관관계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라고 생각면서 산지 약 2년 정도가 되었다.
위와 같은 생각은 우습게도 휴직을 고민하는 이유 중 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 자신이 없었다.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시작한 후나,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여행을 떠나고는 했으니까. 여행을 가면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나였다. 거의 대부분의 날에 해 뜨기 전에 기상하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하루 평균 2만보 걷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 여행이 어디가 되었든 매한가지였다. 대학생 때 내일로로 국내 여행을 가든, 친구와 1박 2일로 강원도 여행을 가든, 혼자 대만을 가든, 저 멀리 유럽이나 호주를 가든.
그렇게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시간을 1. 공부 혹은 일, 2. 여행, 3. 그 외 아무 것도 안하고 늘어져 있는 시간, 이렇게 크게 세 카테고리로 나누어서 살았었다. 그리고 1번이 없는 일상을 효과적으로 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는 일이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서, 나는 발령 대기 기간에도 기간제를 굳이 구해서 일을 하곤 했다. 아니면 다른 공부거리라도 눈에 불을 켜고 찾아서 했다. 헬스나 영어, 다양한 연수를 비롯해 요가부터 악기까지, 참으로 다양했더랬다. 대학교 방학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늘어져 있는 나를 보는 건 그 무엇보다 힘든 일이었기에, 알바 등 바깥에 나갈 수 있는 활동을 뭐든 찾아서 했다.
휴직 기간은 1번과 2번 카테고리가 사라진 기간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1번과 2번을 행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떠날 생각만 하던 나에게, 여행이 부담스럽게 다가온 것도 처음이었다. 그럼 기존 나의 시간 활용 카테고리에서 3번만 남는 것인데, 막상 6개월의 시간 동안 3번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나는 역시 생산성에 미친 사람이구나, 싶었고, 이 또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사회의 주입된 시선인지 모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1번을 만들었다. 대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명목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배우던 바이올린도 좀 더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연습 시간을 보다 밀도 있게 활용한달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리정돈 시간’을 1번에 넣어두었다.
나는 정리정돈을 못하는 성격은 아니다. 우리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깔끔 떨기’ 때문에, 보통 날을 잡고 청소를 하곤 했다. 하지만 문제는 ‘날을 잡고’ 한다는 데에 있었다. 입었던 옷 정리, 빨래 개기, 책 및 책상 정리, 들었던 가방 정리, 화병 및 화분 정리, 분리 수거 등을 ‘한 번에 몰아서’ 했던 것이다. 그 ‘날’이 되기 전에는 나만의 방식으로 여기저기 흔적들을 늘어놓았다. 입었던 옷은 다시 새 옷과 같이 넣을 수는 없으니까 개서 소파 위에, 빨래는 개서건조대 위에, 읽고 있는 책은 책상 위에, 침대 옆에 등등.
휴직을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내가 오래 있는 공간이 어질러져 있는 것을 참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생활하는 공간 하나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엌의 식탁 위에는 부엌에서 사용할 물품만 놓는 것으로. 청소를 할 때 구석구석 먼지를 잘 털어내는 것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온 집안을 대걸레로 닦는 것으로. 악세서리들은 너질러 놓지 않고 악세서리함에 사용한 그 날 바로 넣어두는 것으로. 햇살 좋은 주말에는 이불을 베란다에 널어 햇빛소독을 시켜주는 것으로. 화병의 물은 하루에 한 번 꼭 갈아주는 것으로. 가을이 되어 떨어지는 낙엽들은 오며 가며 열심히(?) 줍는 것으로. 입었던 옷은 밖에서 돌아오자마자 먼지를 털어 바로 걸어 두는 것으로. 들었던 가방은 속의 물건들을 다 꺼내 정리하고 옷방에 정리해 두는 것으로.
이 외에도 쓴 물건들을 바로 정리하거나 눈에 보이면 치우는 것은 생각보다 빈번해야 했다. 내 예상보다 치워야 하는 부분은 눈에 자주 띄었고,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좀 쉬려고 앉으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부분이 또 보이곤 했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거지’ 싶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나의 공간까지 흐린 눈을 하면서 살았구나,를 깨달으면서 구석구석 비워내고, 구석구석 치워냈다.
그렇게 구석구석을 비워낼 때마다, 치워낼 때마다 신기하게도 내 마음도 비워지는 것 같았다. 잡생각이 많아지면 집 청소를 하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지금까지는 집 청소를 해도 조금만 지나면 바로 어질러져서 그 말에 공감하지 못했는데, 기본값을 ‘정돈된 상태’에 두고 나니, 잡생각이 들 때 쓰레기를 버리거나, 조금의 흐트러진 상태를 바로잡는 것 만으로도 머릿속이 상쾌해 졌다.
그러다 내가 어릴 적 보았던 디즈니 영화 속 공주들이 떠올랐다. 여느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난 공주에 환장했고, 지금도 공주들이 좋고, 공주가 되고 싶고, 어쩔 때는 공주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다만 지금은 보다 그들의 현실적인 모습들이 보이곤 했는데, 그러다보면 공주가 되려면 결국 부모님을 잘 만났거나, 돈이 많아야 하지 않나, 라는 결론으로 귀결되고는 했다. 하지만 정리 정돈을 하며 생각해보니 게으른 공주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신데렐라를 생각해 보라.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신데렐라는 두 게으른 언니의 몫까지 모든 집안일을 해냈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것이 집안일인데, 그것을 평생 해 온 것이다. 와, 그것 하나만으로 근면 성실성은 보장된 것이었구나, 싶다. 백설공주도 마찬가지. 미녀와 야수의 벨도 마찬가지. 심지어 라푼젤이 부르는 ‘When will my life begin’을 들어보면 그녀는 하루를 48시간으로 산다. 그 탑에서 갇혀 살면서 하루에 하는 거 겁나 많다. 이미 프로 갓생러들이다.
그녀들은 겁나게 부지런한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예전 애니메이션이었기에 그들의 성공이 ‘왕자와의 결혼’만으로 표현되었지만, 솔직히 뭘 해도 해냈을 그녀들이었을 거다. 왜냐? 그녀들은 겁나 부지런한 여성들이니까.
공주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꼭 기억하도록 하자.
공주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부지런함과, 그로부터 발생되는 자기 정돈, 그리고 정신 건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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