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행복의 기원>, 서인국 을 읽고
“위 제시문의 학자 A가 삶의 목적으로 주장한 것은 무엇인지 쓰시오.”
초수 임용고시 도덕 각론 파트에서 만났던 문제이다.
당시 나는 학자 A가 아리스토텔레스인 것은 알겠으나, 그가 최고의 선으로 주장한 것이 무엇인지 외운 기억이 없어 머리를 끙끙 싸매다 나왔다. 시험이 끝나고 나를 기다리던 엄마와 언니, 형부에게 외우지도 않은 부분에서 이런 문제가 나왔다며 억울함을 토로하자, 운전을 하던 형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거 행복 아냐?”라고 대답했다.
아차, 분명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시간에 배웠는데,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저 문제 외에도 언니는 아는, 엄마는 아는, 하지만 나는 모르는 여러 문제들을 맞히지 못해 다음 해에 한 번 더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을 최고의 선이라 생각했음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시험에 합격한 이후, 나는 이렇게 잊히지 않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나의 행복’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다양한 선택들을 했다. 행복할 수만 있다면 수중에 있는 돈 내에서 얼마가 들든 상관없었다.
그렇게 행복을 목표로 하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과정 중에 행복을 느꼈으면 그걸로 됐어,라고 위안 삼으며 지낸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참 웃긴 것이,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무언가와 같이 이 ‘행복’이라는 것도 오히려 손아귀에 넣으려 할수록 새어 나가는 듯 보이는 게 아닌가.
나와 같은 이들에게 책 <행복의 기원>의 작가 서은국은 행복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인간은 동물에 해당하며, 동물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들(예를 들면 공작새 수컷의 화려한 꼬리)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서 이 공작새 꼬리의 기능을 하는 것은 ‘마음’이라 이야기한다. 마음의 능력이 높을수록, 즉 멋진 마음을 가질수록 인간의 생존과 번식 확률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인가. 바로 이 마음에 해당한다. 따라서 작가는 결론을 다음과 같이 짓는다.
행복감 또한 마음의 산물이다. 창의력과 마찬가지로 행복도 생존을 위한 중요한 쓰임새가 있는 것은 아닐까? 행복은 삶의 최종 목적이라는 것이 철학자들의 의견이었지만, 사실은 행복 또한 생존에 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마치 피카소의 창의성 같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이 ‘생존’을 위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는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부터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높은 행복 수준의 조건인 ‘심리적 자유감’이 적고 하나로 수렴되는 생각을 하도록 교육받아 왔기에 이런 가치관을 변화시켜야 한다 주장한다.
행복은 우위를 매길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다. 남들에게 설명할 필요도, 이해시킬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을 느끼는 것은 살기 위해서이다.
가장 최근 언제 행복을 느꼈는지를 떠올려 보자. 나의 의지로, 다른 사람의 개입 없이 행동을 하고 있을 때, 나의 일상을 여행처럼 보내고 있을 때 나는 행복하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낼 때, 걸을 때, 그리고 좋은 음식을 먹을 때, 행복은 나누기가 아니라 곱셈이 된다.
생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도 못한 채 호흡을 연명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닐 테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행복을 찾자.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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