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이 연애라면 선생님이 되는 건 결혼
대학에서 교직과정을 이수할 때는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일말의 가능성만을 열어두었다. 하지만 교생실습을 한 뒤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교생은 한 여고에서 했었는데, 인생에서 다시없을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일단 젊은 남자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기는 상당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 그랬다. 신입생으로 돌아간 듯 동료 교생과의 생활은 재미있었고, 어렸지만 '선생님'이라며 존중해주는 학교 특유의 문화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벤트를 하듯 연구수업을 준비하는 과정 또한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훗날... 진짜 선생님이 된 뒤에는 교생을 받게 되면 마지막 날에 이런 말을 꼭 해준다. "선생님, 교생이 연애라면 선생님이 되는 것은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두 단어, 연애와 결혼이다. 연애에는 설렘과 기대, 따뜻한 반응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이 그저 좋기만 하다. 하지만 결혼은 설렘이 끝나더라도 유지되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한껏 꾸민 모습으로 만나던 연인을 완전한 민낯과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마주할 때가 훨씬 더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연애 때와는 다른 점이 아주 많다.
한 통계에 따르면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냐는 질문에 10명 중 4명가량이 "후회한다"라고 답했다. 결혼을 후회하냐고 물으면 이와 비슷하거나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선생님이 되는 것과 결혼하는 것, 이러한 것들에서 우리가 후회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큰 기대가 큰 실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선생님이 되면 담임으로서, 교과 담당으로서 수많은 학생과 마주하게 된다. 말을 잘 들어 예뻐 보이는 학생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맞지 않아 힘들게 하는 학생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이 모여있다. 그리고 내가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을 감히 바꾸려 들기 시작하면 비극은 시작된다. 동료 교사와의 관계 또한, 이해관계에 얽혀 자주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겉으로는 "선생님, 선생님"하며 존중하는 척 하지만 실상은 이보다 더 꼰대일 수 없는 문화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그나마 수업이라도 재미있으면 나름 만족하겠지만, 매 학기, 매년 반복되는 수업 내용과 진도의 급급함 앞에서 수업은 금세 타성에 젖어버린다.
이러한 이유로 선생님을 그만두는 교사가 부쩍 많아졌다. 하지만 맞지 않는다고 해서 교직과 이혼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이다.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부정적인 면에 집중하면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보인다.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한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다툼은 반복될 뿐이다.
나 또한 학생으로부터 큰 실망을 한 뒤, 교사가 된 것을 많이 후회했다. 그러나 학생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다면, 반대로 힐링을 받을 때도 있다. 직무가 불만족스럽다가도, 때로 자유롭고 보람차다고 느낄 때도 있다. 이보다 더 양가적일 수 있을까.
C.S. 루이스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는 설렘과 기대, 흥분은 지속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것들은 어떤 목표를 향한 추진력을 제공하지만, 도달한 후에는 이를 유지할 책임과 의무가 필요해지게 된다.
옛날이야기들은 흔히 "그 후로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말로 끝나곤 하는데, 만약 이 말이 '50년이 지나도록 결혼하기 전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뜻이라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뿐 아니라 설령 정말 그럴 수 있다 해도 전혀 바람직한 일이 못 됩니다. 50년 동안이나 그런 흥분 상태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또 그럴 경우 일이나 취미나 잠이나 친구 관계는 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결혼 전 연애의 감정이 지속될 수 없듯, 교생 할 때의 설렘과 기대 또한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야 한다. 그래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더라도 덜 아프다. 한 달 연애로 평생의 결혼생활을 예측할 수 없듯, 한 달 교생으로 평생의 교직생활을 예측할 수 없다.
만족과 후회 같은 감정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지나간 감정을 되돌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이 안에서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으로 시선을 돌리면, 선생님은 그 어떤 직업보다도 재미있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요즘은 학교에 교생이 와도 학생들이 별 관심이 없다. 학교의 분위기 탓인지, 세대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생이 실망을 가지고 교직에 대한 꿈을 접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실습이 끝나갈 무렵, 학급 반장을 불러 감사의 편지와 작은 이벤트라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넌지시 한다. 나 때도 담당 선생님이 이렇게 해주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교생이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작은 불씨라도 가져가길 기대하며 매년 씨앗을 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