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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칠레
I 세상의 끝에서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③② 세상 끝에서 라면 먹기

by 여행가 데이지


https://www.youtube.com/watch?v=RVF52K8cEoc

Screenshot 2025-04-26 at 10.36.29 AM.png 사진출처 : MBC 유튜브 공식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RVF52K8cEoc)


어릴 적 무한도전을 통해 세상 끝의 존재를 알게되었다.

세상 끝인 칠레 푼타아레나스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라면가게가 있다.


어두컴컴한 라면 가게에서 무한도전 출연자가 라면 먹는 모습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았다.


동시에 남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호기심을,

세상 끝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③② : 세상 끝에서 라면 먹기


호기심은 설렘이 되어 나를 세상 끝으로 이끌었다.

나는 세상 끝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와

대륙 끝이라 불리는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 라면을 먹었다.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의 섬으로, 우리나라의 마라도로 비유된다면,

푼타아레나스는 칠레의 대륙으로, 우리나라의 해남과 같은 곳이다.



#1. 세상의 끝에서 라면을 먹으며_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새벽 4시.

우수아이아로 가는 공항에 있다.

정확히 한국과 반대편에 있기에 한국은 낮 4시이다.


대한민국 대척점과 가까운 부에노스아이레스.


한평생 살아왔던 한국과

정반대인 곳에 있다는 사실은

새벽 공기의 공항을 들뜸으로 채웠다.


세상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우수아이아(Ushuaia).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에 위치해 '세상의 끝'으로 불린다.


세상의 끝이라는 상징성 때문일까,

무한도전에 나온 라면 가게는 칠레에 있지만,

나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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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아이아로 향하면서, 비행장 너머로 해가 떠오른다.


피곤이 극에 달해있어 잠시 눈을 붙였다 뜨니 버스에 아무도 없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피곤으로 뒤덮인 나는 꿈나라로 바로 빠졌지만,

날씨는 불안정한지 비행기가 요동을 많이 쳤다.


도착즈음 다시 눈을 뜨니 10시,

비행기가 무사히 땅에 착지함에 안도한 듯

기내 승객들은 지금 이 순간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창문 너머 힐끗 우수아이아를 바라밨다.

세상의 끝을 품은 마을은 산들이 보였다.


눈으로 뒤덮인 산을 보니,

히말라야와 작별인사 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네팔에서의 시간이 지난 5월이라니'


영락없이 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체감했다.


20240119_162145.jpg 우수아이아에서 만난 파메랄와 만나 이동하며


카우치서핑을 통해 파멜라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공항으로 나를 마중와 우수아이아 곳곳을 보여주었다.

파멜라 차창 너머 마을 거리로 바다가 보였다.


'이곳이 최남단이구나!'


나는 끊임없이 내가 세상 끝에 왔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상기할 때마다 내 가슴은 정신없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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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아이아를 구경하며

최남단 도시는

지금껏 보지 못한 지구의 새로운 모습을 갖고 있었다.

빙하에 뒤덮인 산,

놀랍도록 고요한 바다,

창문 너머의 설산들 절경조차

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새로운 풍경이 주는 신비로움은

아름다움에 녹아내렸다.

나는 감탄하며 떨리는 가슴을 표현했다.


"파멜라! 정말 아름답다!

이런 풍경을 살면서 처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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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아이아의 파그나노 호수(왼) 라구나 호수(오른) / 에메랄드 호수에 발을 담근 차디찬 호수를 녹인 마떼를 기억해


우수아이아의 여름은 차갑다.

차가운 공기 아래 바다 역시 차보였다.


바다는 차가워보일정도로 짙은 남색을 띄었다.

여름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동시에 차가움 속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차가운 바람과 공기 속에서 마시는 마떼는

차디찬 호수에 발을 담가 맞닿은 살갗까지도 따뜻하게 했다.

따뜻함은 달콤하게까지 와닿았다.


잔잔한 바다는 무언가 오랜 깨달음을 가진 구루를 보는 느낌이다.

차분하고 담대하게 받아들이라고 내게 고개를 끄덕이는 느낌이다.

세상 끝의 바다를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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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아이아 라구나 호수로 향하는 길


우수아이아의 굵은 나무 줄기 사이로

녹색의 털은 순수하지만 굵직하게 솟아있다.


나무가 보여준 순수한 털에서

세상 끝 작은 마을인 우수아이아의 온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숲 길에 핀 수많은 야생 데이지를 보며

차가운 공기가 코 끝을 간지럽히는 기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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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우수아이아의 마을들


우수아이아의 아침은, 더더욱 차가우면서도 따뜻했다.

기다란 도로를 따라 쭉 늘어선 건물과 자동차,

그들 뒤로 펼쳐진 구름은 극지방을 알리는듯, 얇게 펼쳐져있었다.


멈추어 사진을 찍기도,

그저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기도,

만년설이 쌓인 산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길가에 핀 데이지들까지 내게 인사하는 듯 했다.

헤드셋 너머로 흘러나오는 노래는

나와 우수아이아의 수줍은 만남을 극대화했다.


지금 이 순간에 있음에 감사하고,

세상의 끝 마을에 있음을 마음껏 느꼈다.

차가운 공기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쌌다.

우수아이아가 참 좋다.


아, 행복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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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이라파타이아의 입구


우수아이아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는

상징적으로 세계의 끝인 '바하이 라파타이아'가 있다.

일반인 신분으로 갈 수 있는 도로의 가장 끝 자락이다.

바하이 라파타이아로 가기전, 라면을 사고자 슈퍼마켓에 갔다.


"라면을 먹으거라고? 내가 사줄게!"


슈퍼에 있던 손님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니, 그는 개구장이 같은 웃음으로 내게 말했다.


"오늘 내가 기분이 좋아서 그래! 원하는거 다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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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라면을 비롯해 핫도그와 다른 음식도 대접했다.


갑작스런 호의에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버스에 올랐다.

버스 기사와 아주머니가 나누는 아침 인사가 사랑스럽다.


괜스레 콧노래를 부르며 창문을 바라보는데,

문득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감정을 확신했다.


'나,

아르헨티나를 좋아하는거같아.'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괜스레 사람들의 사소한 손짓에 행복해 울컥해진다.


그냥 문을 열어두고 나가도 되는 우수아이아가 좋다.

노래를 들으며 버스를 탈 수 있는 이곳이 좋다.

낯선이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버스비를 대주는 마음이 참 좋다.


'나는 사람이 좋은 마을에 정이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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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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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라면을 먹으며


우수아이아에서 느낀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


놀랍도록 고요한 세상의 끝은

다른 바다보다도 외로워보였다.

마치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수호자 같았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한 존재로

덤덤하게 자리를 지키는 수호자.


덤덤한 외로움을 품은 수호자를 바라보며

라면을 먹었다.

먹는데, 눈물이 나왔다.


'내가 정말,

세상 끝에서 라면을 먹고 있구나.'


어린 시절, 상상한 세상의 끝은 멀게만 느껴졌다.


멀게만 느껴진 그곳에

지금 내가 있다는 사실이 울컥했다.


꿈을 꿨다는 사실이,

그 꿈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름답고,

감사하고,

울컥하고,

부드럽다.



한참을 감상에 젖어 눈물을 한바가지 흘렸다.

천천히 바닷가를 거닐면서 세상 끝의 고요함을 감상했다.


최남단 우체국


이후 최남단 우체국에 방문했다.

휴무라 닫혀있지만, 우체국을 둘러싼 자연은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세상의 끝에 있는 우체국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은가!'


나는 세상의 끝자락에서 나에게 편지를 작성했다.



미래의 나에게

안녕 예진아!
지금 나는 우수아이아 땅끝에 있어.
이곳에서 남극은 불과 몇km 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어릴적 꿈꾼 땅끝, 세상의 끝에 내가 있어.
이 감정은, 행보하다는 말로 밖에 설명이 안돼.
내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이,
그 꿈속에 있다는 사실이,
지금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조용한 바람을,
잔잔한 파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이순간에서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어릴적 세상의 끝 존재를 처음 알았을때
'내가 저곳에 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순간,
세계여행을 할 생각에 설레어 잠들지 못했던 순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버텨온 나의 십대 시절,
지난 순간에도 계속해서 언제나 어렴풋이라도 꿈꿔온 지금 이 순간을···


삶이란게 주저하지 않고 그저 큰 생각없이 마음대로 따라가는 것 같아.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것. 나를 위해서 사는 삶 말이야.
그게 진정한 삶이야.
사람들은 내게 생각이 깊다고들하는데, 사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것들이 많아.
여전히 더욱더 깊게 성장하고 싶고, 더 넓은 무대에서 더욱 가치있고, 더욱 큰 사람이 되고싶어.
돌아가서도 내적으로도 성장해서 다시 세계를 여행할거야.
세계를 무대로, 앞으로의 날들을 펼치고 싶어.
더 크게 희망하고, 꿈구고, 노래하고, 사랑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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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아이아의 마지막 밤.


우수아이아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우수아이아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해졌다.


마음을 달래고자 우수아이아 바닷가를 산책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동네.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를 거닐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우수아이아가 아름다운 이유는,

동네에 살고있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기분이 좋다며 아침과 과자를 사준 낯선 이,

버스카드를 놓고 온 나를 위해 버스비를 내준 이,

히치하이커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운전자들,

새벽 늦게 노래들으며 산책해도 되는 치안,

아름다운 자연,

수많은 하이킹,

만난 좋은 사람들,


지금 내가 이 곳을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

마법같았던 오늘 하루,

우수아이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

끊임없이 부는 바람과

오다마는 가벼운 비,

아름다운 구름까지.


세상 끝에서의 따뜻한 추억은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우러나왔다.


"나중에 남극에 오기 위해서 찾아올 수도 있어!

그때까지 건강해야돼.


우수아이아, 안녕!"





#2. 대륙의 끝에서 라면을 먹다_칠레 푼타아레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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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푼타아레나스, 대륙의 끝에 도착했다


날아다니는 갈매기,

차가운 파도,

매섭지 않지만,

바람에 같이 춤을 추는 파도에 흠뻑 빠졌다.


아름답다.


하늘 모서리를 조그맣게 채운,

회오리 모양의 구름은 내가 땅 끝에 왔다는걸 알려줬다.


우수아이아와 마찬가지로

푼타아레나스에서도 구름들이 회오리 쳤다.

동시에 굉장히 잔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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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타아레나스 마을 곳곳은 캐모마일과 민들레, 데이지로 가득했다.

마을 곳곳에 꽃들이 있다는건 정말 행복한 일이구나.


한참 마을의 순간을 음미하다가

칠레 라면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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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 고파?"


"메뉴판을 볼 수 있을까요?"


"메뉴가 어디 있어.

라면이랑 김밥뿐이지."


무한도전에 나온 라면집은

십년 전 봤던 모습 그대로 였다.


"그럼 라면이랑 김밥 주세요(웃음)"


본인을 '호'라고 소개하는 가게 주인은

퉁명스러우면서도 따뜻한 말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가 만든 라면은 따뜻한 열기를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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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대륙 끝에서 먹는 라면


우리의 대화를 배경으로

호가 재생한 90년대 팝송 리스트가 흘러나온다.

'Let it be' 노래가 울려 퍼지며

칠레에서 라면을 먹는 이 순간.


소중하다.


라면 국물을 한입 마시니

한국에 온 느낌을 받았다.

그의 라면은 내가 먹은 어떤 라면보다도 맛있었다.

순간적으로 공간이동을 한 느낌은

90년대 팝송리스트와 함께 우수에 젖게했다.

나는 호에게 물었다.



"선생님 삶에 대해 들려주세요!"


"허 참, 그런 걸 질문해!?"


그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면서

줄곧 자기 이야기를 피해오면서도

조금씩 내게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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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로 돌아가서, 가만 보자,

나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살았어.

멋진 연애도 했지."


그는 학창 시절의 세세한 이야기를 하며

우수에 젖은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의 눈빛은 라면 가게에 흘러나오는 90년대 팝송에

더욱 아련하게 젖어들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그는 조언했다.


"당당하게 살아.

없어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

머리를 들고 살아.

기죽지 말고"


돈이 없는 건 불편한 것뿐이며 부끄러운 게 아니라며

사람은 항상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며

그는 구수한 욕을 덧붙인다.


"이 새끼야,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샹!

너도 앞으로 여행하고 이렇게 살아갈 때는 당당하게 살아."



그의 이야기와

식당에 울려 퍼지는 90년대 팝송을 들으니

괜스레 울컥함이 들었다.


먼 곳 칠레에서 지내면서,

한국에서의 찬란했던 시절의

세세한 순간까지 다 기억하는 호 선생님.


나도 훗날 외국에서 살게 되면,

이렇게 과거를 추억할까?


그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반추하고,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렸다.


"너는 꼭 외국에 나가서 살아.

더 큰 세계를 꿈꾸란 말이야."


버킷리스트인 칠레 끝에서 라면을 먹는 이 순간,

그가 내게 공유한 그의 지난 삶과

그가 내게 보여준 우수에 젖은 눈빛과

그가 내개 들려준 90년대 팝송이

참으로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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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대륙 끝에서 먹은 라면


경계에 선다는 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이다.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상태.

세상의 끝이라는 경계에 서서 이룬 어릴 적의 꿈.

난 세상의 끝과 시작의 경계에서 나 자신으로 존재했다.


불안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존재로,

과거의 꿈을 이루며 미래를 향해가는 존재로,

명사가 아닌 동사로 존재한다.


그렇게 세상의 끝에서,

나는 다시

세상의 시작을 향해 나아갔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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