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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Aug 01. 2024

돈을 바라는 게 아니야. 네가 웃으면 나도 좋거든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만난 노란 옷의 친구



#1. 족자카르타 프람바난 사원에서



족자카르타 프람바난(Candi Prambanan) 사원 찬디에서. 찬디는 힌두교 사원을 지칭한다.


대평원을 장악하듯 거대한 찬디가 웅장하게 펼쳐진다.

80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18세기가 되어 재발견된 프람바난 힌두사원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여전히 복구가 한창이다.

곳곳에 석탑 잔재가 남아있지만, 찬디가 가진 웅장함은 가려질 수 없다.


입장료로 인해 요한과 잠시 헤어져 홀로 사원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현장실습과 소풍을 온 아이들은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손하트를 보여준다.

몇몇 아이들은 영어 수업 과제로 보이는 종이를 꾸깃꾸깃 만지며 내게 다가온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어디가 가장 좋았나요?"


작은 손으로 펜을 꽉 움켜잡으며 아이는 묻는다.

족자카르타라는 내 답변이 꽤 마음에 드는 듯, 배시시 웃음을 보인다.


족자카르타 프람바난(Candi Prambanan) 사원에서


힌두사원을 감싸는 공기는 조금씩 지는 해와 어우러져 은은한 냄새를 풍긴다.

무너진 석탑 잔재는 어스름하여지는 석양과 소곤소곤 이야기 나눈다.

일몰로 유명한 프람바난의 다른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와 같은 목적으로 같은 공간에 이동하는 누군가가 시야에 잡힌다.

그도 나를 시야에 잡았는지, 발걸음을 나와 맞추기 시작한다.

우린 어느새 동일한 속도로 발걸음을 맞춰 걷는다.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린 친구가 되었다.


점차 가까워진 물리적 거리, 동일한 보폭으로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힌두교도가 대부분인 발리, 그 아름다운 섬에서 온 세카디는 찬디 앞에서 능숙하게 기도한다.


힌두사원에 압도되면서도 세카디를 몰래 바라보며 그를 따라 기도를 흉내 낸다.



어느덧 잿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세카디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을 걱정한다.

호스트의 집이 사원과 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카디와 다른 친구는 인도네시아어로 이야기를 나누다 내게 말한다.


"그래, 같이 가자"


친구들이 사준 이온 음료를 내려놓으며 나는 어리둥절해한다.

세카디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와 같은 방향의 기차에 오른다.

그의 집은 내 호스트와 정반대임에도.

중간 지점에서는 그랩을 불러 안전하게 가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나는 그들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친절한 걸까?



"왜 내게 이렇게나 친절한 거야?"


"우리는 카르마을 믿어.

누군가에게 친절하면 그 친절이 돌아오는 카르마.

발리 사람들은 한번 만나면 다 친구야."


불과 몇 시간 전, 

같은 방향의 길을 걸었기에 우린 친구가 되었고,

지금, 이 순간,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함에도 우린 친구였다.



그들의 친절에 보답할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한다.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나를 안전하게 바래다 준 그랩 운전사


구불구불 깊숙한 숲에 있는 호스트 집으로 가는 와중에도

그랩 드라이버는 내게 연신 질문을 퍼붓는다.

오돌토돌 돌멩이를 오토바이 바퀴가 넘어갈 때마다 걱정과 신남이 교차한다.

한국에서 왔다는 내게 "오! 꼬레아!"라며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기 때문일까.


운전사는 발리 친구들에게 내가 무사히 왔다고 인증해야 한다며 내 사진을 찍어간다.

나의 안녕을 끝까지 걱정해 준 발리 친구들.

그들의 과분한 친절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친다.

솟구치는 감정을 해소하려는 방법은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나의 친절이 도달하도록 나도 스쳐 가는 인연에 친절을 베푸는 도리뿐이란 사실.


족자카르타의 호스트 레지나와 함께


노란색으로 가득 칠해진 레지나의 집은, 어릴 적 할머니의 향토집을 떠올리게 한다.

노란 벽을 타고 움직이는 도마뱀은 이곳이 인도네시아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레지나는 문을 열고 들어설 때도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

디자인 학과를 나와 의류회사에서 일을 하는 그는 유머러스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우린 레지나가 준비한 인도네시아 전통 밥상을 펼쳐놓고 만나자마자 서로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레지나는 발리 여행에서 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남자의 초대로 남아공에서 한 달을 지냈다.

남아공에서의 한 달을 위해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었다.

사랑을 위한 미친 짓, 사랑을 향한 변화, 그 이후의 이야기 ···

유쾌한 레지나의 말솜씨에 배꼽을 잡으며 웃느라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줄도 몰랐다.


레지나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끝에 말한다.

"나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지만, 

한국의 높은 경쟁률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기 잘한 거 같아."

그의 말에 놀랐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가시적으로 보이는 한국과의 차이점을 느낀다.

단돈 몇 푼을 위해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

길거리 위의 구걸하는 노숙자들,

여전히 낙후된 시설들,

한국에서 보지 못한 순간을 적나라하게 보며,

눈으로 생생히 다른 배경의 삶을 담으며

시나브로 마음속에 생각이 들어왔다.


한국에서 태어나길 잘했다.


나의 이 오만한 생각은 자카르타에서 리나와 이야기하며 달라졌지만,

레지나에게 다시 한번 머리를 맞은 느낌이다.


역시,

선진국, 후진국을 논하며 경제지표를 아무리 들이밀어도

삶에서 중요한 건, 각자 자기 삶에 만족하는 거구나.


양복을 차려입고 뉴욕의 번화가를 걸어 높은 빌딩 사무실로 들어가는 사람과

다 해진 반소매를 입고 화장실 하나 없는 마을에서 우물에 물을 가지러 가는 사람.

우리는 그 둘의 삶을 제멋대로 판단할 수 없다.

우리는 남의 삶을 비교하며 내 삶을 평가할 수 없다.


우리는,

나 자신의 삶을 그저 사는 것이다.


우리는,

내 삶을 그저 미소 지으면 사는 것이다.







#2.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유심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신의 가호를 받은 요한이 내 유심을 만지작하더니 작동된다.


"요한, 아무것도 안 하고 만지기만 했는데 어떻게 작동된 거야?"


요한은 언제나처럼 말한다.

"신이 작동되게 해 준 거야."


그날은 그렇게 잘 사용하는가 싶더니, 다음날 다시 작동하지 않는다.

요한과 아침 일찍 만나기로 했기에 그랩 운전사를 불러야 하는데, 와이파이가 없으니, 방도가 없다.


마을 아무 집에 들어가 와이파이를 구걸한다.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순박한 웃음을 가진 아주머니는 무작정 집에 침입한 내게 미소를 선물한다.



와이파이 구걸로 약속된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했음에도 요한은 나를 보며 미소 짓는다.

이른 아침부터 예상치 못하게 두 명에게서 미소를 선물 받는다.

순간의 선물이더라도, 미소는 하루 종일 내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는 한국의 경주와 비슷하다. 인도네시아의 여러 전통 문화를 품고 있다.

요한은 자기 고향에 나를 초대한다.

고향으로 가는 중, 오토바이를 타면서 맞이하는 바람은 나를 심심하지 않게 해 준다.

요한 덕분에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족자카르타의 문화에 흠뻑 빠진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나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순박하고 순수하며, 수줍어하면서도 당찬 그들이 사랑스럽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


입장료로 인해 요한과 헤어져 홀로 보로부두르 사원을 둘러본다.  


불교가 만들어낸 섬세함과 웅장함 앞에서 모든 더위는 씻겨 내려간다.

과거의 흔적으로 수백 년이 지난 시대와 연결될 수 있다는 건 실로 굉장한 일이다.

연결성을 만든 힘의 대부분은 종교라는 사실,

그 사실은 영겁의 시간 속 나약한 인간을 그 무엇보다 질기고 강한 존재로 만든다.


문화재 보존은 단순히 '보존'의 이유만 있지 않다.

문화재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자긍심을 키우며, 자신의 가정을 키운다.

불교 사원이 빚어낸 문화재는 혼자 기웃거리는 내게 말을 걸어준 청소 부분의 가족을 키워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위가 한창이다.

청소부는 더위를 뚫고 잠시 한숨을 돌리다 한 여행자와 눈이 마주친다.

그는 사원과 함께 여행자 사진을 찍어주고, 함께 잔디에 앉자고 제안한다.

조그만 선행에도 돈을 요구하는 사람을 여럿 봤기에, 여행자는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돈을 바라는 게 아니야. 네가 웃으면 나도 좋거든."


청소부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40년이 넘으신 선생님.


일본에 관심이 있던 그는 혼자서 공부해 능숙하게 일본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궁핍한 가정생활은 공부하고 싶었던 그를 지원하지 못했다.


그는 매일 사원의 쓰레기를 치우며 자식들을 키워냈다.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대부분의 인생을 꿈꾸며 살아온 나는 누구에게나 작은 소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웃으며 잠시 사원을 바라보다) 그런 거 없어."


적어도,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예상하며 새삼스레 질문한다.


"그래도…. 가족이 잘 되는 것도 바라지 않아요?"


"가족이 잘 되길 바라지. 그렇지만, 그건 내 꿈이 아닌걸."


일본어를 공부하며 그도 꿈을 꾼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꿈이란 단어를 오랫동안 품어오지 않았기에,


어느새 그 단어는 닿을 수 없는 몽상이 되어버린 걸까.


"에이,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청소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아요?"


어느새 그에게서 꿈을 어떻게든 찾아내겠다는 심보로 질문이 나간다.

그러나, 그는 연신 짙은 웃음을 내보이며 말한다.


"나는 꿈이 없어."


"그럼, 선생님의 삶의 이유는 뭔데요?"


그는 웃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 삶의 이유는,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른 청소부 분들도 한 분 한 분 옆에 자리를 잡는다. 

각자 구역에서 청소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갖는 시간이다. 


서로에게 물을 건네며 안부를 묻는 서로를 사이로 한 청소부는 환하게 웃으며 외친다.


"우린 친구야!(we are friends!)"


노란 유니폼의 친구들은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자 자신의 우산을 주겠다고 한다.


친구들의 마음은 소중해서 추억에 깊이 간직하고 싶었다.


사원을 나서는 발걸음을 아쉽게 한 건, 사원의 웅장함이 아니라, 청소부 친구들의 웃음이었다.  






다음 여행을 위해 족자카르타를 떠나 수라카르타에 가는 기차에 가야 한다.

요한은 나를 다시 기차역으로 데려다주겠다며 나와 다시 만난다.


오토바이 위 바람을 맞아 오는 내내 의문이 든다. 


자신과 관계도 없는 나에게 시간과 정성을 쓰는 요한과 족자카르타에서 만난 친구들.

왜일까?


수라카르타로 가는 내내 이어진 의문은 

여행 중 만난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인도네시아 여행 중 만난 이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말이 통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미소 짓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린 무엇을 위해 생판 모르는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

우린 왜 다시 만날 일 없는 낯선 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일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에게 미소를 짓지 않을 이유가 있나?

꼭 무언가를 위해 생판 모르는 남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할까?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도움을 주면 안 되는 걸까?



이익과 손해를 재지 않고

문화차이와 배경을 보지 않고

언어와 이념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저 삶을 여행하는 여행자로서

그저 존재 자체로서

서로에게 미소 짓고, 손을 내민다.


보이는 것들에 눈 마주치며 미소를 짓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인도네시아는 내게 알려주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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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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