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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Aug 05. 2024

사랑은 완벽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니야

인도네시아 바투에서 만난 나팔

*일러두기: 글에 나온 호스트는 여행자 커뮤니티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호스트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처음 본 사람도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게 흔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여도 나눠주기를 좋아하거든.

네가 오늘 지나가다가 한 사람과 인사를 나누게 되면 그 사람은 냉큼 너를 집으로 초대할걸?"


족자카르타 호스트인 레지나는 내게 말한다.

만난 적도 없는 나를 위해 숙박비와 교통비를 대신 내주겠다는 사람이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 남자랑 만난 적도 없는데, 어째서?"


"같이 지구에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뭐가 어때서?

나는 처음 본 남자 넷이랑 여행하고 같은 방에서 잔 적도 있어. 물론 침대는 각자였지만"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그들의 자비를 익히 경험했지만,

이익을 바라지 않는 나눔은 언제나 다른 의도가 있다고 의문이 앞선다.


여행자 커뮤니티인 카우치서핑에 브로모와 카와이젠 화산 일정을 올리니 누군가 연락이 왔다.

그는 숙소비는 자신이 내겠다며 수라카르타(Surakarta)에 마중 나올 테니 여행 동행을 제안한다.


개인 차로 갈 테니 이동 편리함과 상대적 비용이 절감이 분명하다.

잠시만, 

그럼, 이 남자와 같은 호텔을 쓰게 되는 건가?


레지나는 말한다.

"그 남자의 후기와 다른 SNS 계정으로 안전한 게 확실하면, 안 만날 이유 있나?"


그렇게, 나는 그 이와 만났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으로 처음 본 남자와 같은 방을 사용한다. 


그의 이름은 나팔.

처음 본 남자와 같은 방을 사용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순간.

나팔은 내게 생소한 순간을 선물했을 뿐만 아니라 

브로모와 카와이젠 화산 투어를 함께 하며 내게 잊지 못할 순간을 안긴다. 

나팔과 함께한 순간과 우리가 나눈 우주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라카르타로 향하는 지하철 안,

자리가 없어 짐칸에 앉으니, 보안원이 말을 건다.

인도네시아어를 못해 영어로 답하니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옆에 있던 다른 보안원은 영어를 못해 당황하는 그를 비웃는다.


마치 학창 시절, 교실에서 친구를 비웃는 장난꾸러기 모습과 겹친다.

순수하고 어리광스러운 모습은 내 마음을 괜히 편안하게 만든다.


해는 뉘엿뉘엿 져 노을빛이 되어 지하철에 스며든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은 익숙한 행진을 오늘도 해나간다.


수라카르타와 말랑의 위치


나팔은 나를 데리러 오기 위해 말랑(Malang)에서 수라카르타로 온다.

자신의 차로 수라카르타역 앞에서 나를 반기는 나팔과 만난다.



곰돌이 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나팔을 만나자마자 마음이 편해진다. 

툭툭 내뱉는 그의 말은 끊임없이 배꼽을 잡게 한다. 여과 없는 말에도 배려가 느껴진다. 


올해 26살인 나팔은 Shopee라는 쇼핑 플랫폼을 통해 피부관리 제품을 판매한다. 

이전에는 전 애인과 동업했지만, 

이별 후 여동생과 작업을 하고 있다. 




저녁 시간을 때맞춰 울리는 배꼽 알람을 끄기 위해 식당으로 간다.

식당의 종업원을 흘낏 보는 나팔, 푸근한 인상의 그는 친오빠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일하여 받는 임금을 맞춰보라며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떤 삶을 사는지 거침없이 늘어놓는다.


"여기 종업원은 하루 12시간 일하고, 17만 원가량의의 돈만 받아.

그들은 낮은 임금을 받고도 살아, 왜냐면 그들은 낮은 임금에도 행복해하거든."


달래진 배꼽과 함께 새로운 존재를 실은 자동차는 밤이 늦게 말랑으로 다시 이동한다.

자정이 다 되도록 우린 웃음과 서로의 삶을 주고받았고,

이미 친근한 오빠처럼 편해진 그를 보며 대가 없는 나눔을 의심한 나를 반성한다.




녹초가 되어 곧바로 잠에 빠졌더니 어느새 아침이 나를 반긴다.

말랑에서의 모든 계획을 짜놓은 나팔도 나를 반기며 이야기한다.


"데이지, 오늘 준비를 마치면 우린 호텔 앞에서 밥을 먹고 여기와 저기에 갈 거야. 이후는 이곳에 갔다가, 여기를 들려···"


그는 잊지 않고 세심함도 보인다.


"혹시 더 가고 싶은 곳, 혹은 여기서 가기 싫은 곳 있어?"



나팔이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송곳니는 나팔을 더욱 친근하게 만든다.

이방인에게 인도네시아 전통을 체험시켜 주겠다는 배려는 나를 바틱 수공예와 바틱 박물관으로 이끈다.

본인도 초등학생 이후에 해보지 않았다며 붓 잡는 거조차 어색해하는 그의 모습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말랑과 인근 작은 마을 바투를 함께 구경하며 나팔이 미리 알아본 유명 식당과 카페를 방문한다.



"It's up to you"

여행 내내 나팔은 내게 말한다.

나의 선택에 따라준다는 그.

나를 배려하며 미리 생각하고, 자신의 선택을 양보하는 그의 모습은 적잖은 감동을 준다.


아얌(닭)을 좋아하는 그는

판자로 만든 지붕 아래에서도,

길거리에 위치한 식탁에서도,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 안에서도

언제나 저렴한 가격으로 아얌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언급하며 먹는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음식, 괜찮았어?"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이다. 나팔은 내게 괜찮다며 자라고 한 뒤, 운전을 계속 했다.


성공적인 말랑 여행과 브로모 화산 투어를 마치고 나팔은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카와이젠 화산에 가기 위해 바뉴왕이로 넘어가기 위해서다.


6시간이 넘는 운전이기에 운전자 옆에서 심심하지 않게 해줘야 하지만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노래를 듣기도 하다 보니 몰려있던 피로를 주체하지 못하며 잠에 든다.

나팔은 졸린 눈을 비비며 나를 깨워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잠을 깨려고 하지만, 

졸면서 횡설수설하는 여행자를 당해낼 도리가 없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급한 피로가 해결된 여행자는 운전자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무안해하며 다시 시작된 대화는 조금씩 깊어진다.


나팔은 전 여자 친구와 2주 전에 이별했다.

결혼을 함께 바라본 상대에게서 돈으로 인해 달라진 태도는 나팔에게 비수가 되어 가슴 깊이 꽂혀있다.

틱톡을 통해 명성을 얻으며 돈을 많이 벌게 된 그는 나팔에게 종종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과거에는 협상하며 조율해 나갔지만, 조금씩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더 이상 좁혀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눈동자 울렁임은 나팔의 상처가 깊을 거라 말한다.

그의 말은 점차 자신의 단점으로 옮겨졌고, 자신을 비난하기에 이른다.


어느새 우리를 실은 자동차는 바뉴왕이로 이어지는 연결도로에 진입한다.

하늘은 밤을 맞이하느라 분주하고, 창밖은 빠르게 스치는 일련의 장면들로 내게 들어온다.

나는 나팔에게 말한다.


"Love yourself."


"네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데, 다른 이가 너를 사랑해 주길 원하는 거야?

너를 사랑해 줄 사람은 너 자신 뿐이야.

우린 이기적이게 살 필요가 있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 필요가 있다는 말이야."


그가 내게 보인 과도한 배려와 섬세함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기에

오로지 남에게 자신의 좋은 점만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언제나 남을 살피고, 남의 눈치를 보며, 남의 표정을 살피는 거였다.


그는 남을 살피느라 나 자신을 살피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말을 곱씹듯이 나팔은 나직이 반복해 읊는다.

잘 지내는 것 같기에 누구도 나팔 마음 구석의 수납장을 들여보지 않았지만,

수납장 속에서 나팔은 누구보다 외로운 이였다.

조금의 정적이 흘렀을까, 나팔은 자신의 수납장이 열린 걸 발견한다.


"그래, 사실 내가 수라카르타까지 가서 너를 만난 것도, 

그 긴 시간을 여행한 것도, 나는 지금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야.

나는 지금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었던 거지.


너의 말은 내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어.

내가 말랑까지 차를 가지고 온 이유가 이거였구나.


너를 만나기 전에 나는 행복하지 않았는데,

너를 만나고 나는 행복해졌어.

내게 필요한 건, 나 자신이었어.

정말 고마워 데이지."


나의 에너지가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게 신기하고 의아하다.

서로 주고받으며 얻게 되는 소통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나팔은 나와 만나기 전, 안전하게 올지 내가 걱정된다며 수라카르타에 온다고 했다.

어쩌면 나팔이 걱정한 것은,

정처 없는 길 위에서

함께 온기를 채워 줄 사람이 필요한 자신일 수도.


나팔이 내게 묻는다.


"데이지, 사랑이 뭐야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너는 뭐라고 대답할 거야?"


"사랑은 신뢰야. 사랑은 서로 믿는 거지. 너는 뭐라고 생각해? "


"사랑의 가장 중요한 건 함께 살아가는 거야. 서로를 돌보는 거지.

만약 네가 결혼하고 싶다면, 그건 완벽한 상대방을 찾는 게 아니야.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부정적인 면도 받아들일 줄 아는 거야. 너의 어두운 면도 포용하는 거지."


나팔은 덧붙여 말한다.


"나도, 내 어두운 면을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다음날, 나팔과 함께 카와이젠 화산을 오르며 나팔은 자신의 우주를 나눈다.


"돈으로 인해 사랑을 얻지 못해 왔지만 부자가 되고 싶어.

내가 말한 부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야.

사랑하는 이와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충분한 돈을 가져야겠지."


그의 말을 들으며 어느덧 카와이젠 정상에 이르렀고, 

에메랄드 빛의 아름다운 카와이호는 우리에게 인사한다. 


물끄러미 호수를 바라보며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야.
나는 나만의 부자가 되고 싶어.



돈을 좇지 않으며 '나만의 부자'를 꿈꾸는 나팔.

그가 보내온 외로운 밤이 잔잔한 카와이호에 울렁인다.


혹자는 그의 삶이 평범할 뿐이라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삶이 소중한 삶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나팔의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daisy_path/223413218828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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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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