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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Jul 07. 2024

일본 Ⅰ우리, 저 별똥별 같다

데이지 버킷리스트 ① 일본에서 하야시라이스 먹기


진정한 어른이란 무엇일까?


어릴 적부터 고민한 이 질문은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 걸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가치를 가진 어른'

'책임감 있는 어른'

'성숙한 어른'

'삶을 즐기는 어른'

'삶을 사는 어른'

···


'어른'이라는 두 글자 앞에 여러 수식을 붙이며

단순히 나이 들어 늙기보다

생각도 함께 늙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삶을 사는 어른이라 ···.

삶을 산다는 건 무엇일까?



단순히 숨을 쉬는 생존이 아닌,

나만의 인생을 사는 삶.


한 번뿐인 인생의 주인공으로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삶.


가슴이 터질 듯이 설레는 일을 꿈꾸는 삶.

설레는 일이 없어도 조그만 것에 감사하며 사는 삶.


사랑스러운 상대방에게도, 미운 상대방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잊지 않은 삶.



삶이란 한 글자 앞에서 내려진 정의 속에서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된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부르고,

생각의 덩어리는 켜켜이 쌓여 행동으로 이어진다. 


말괄량이 십 대의 신예진은

고등학교 학사모를 던지며 말한다.



"내 삶은, 내가 살 거야!"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경제적 자립은 필수조건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날, 경제적 독립을 외쳤다. 


그리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어릴 적부터 나의 오랜 꿈이자, 삶의 이유였던 

세계일주 버킷리스트를 위한 자금 마련을 시작했다. 





세계일주 전, 아르바이트와 인턴, 과외, 장학금을 통해 자금을 모았다.


세계일주를 출발하는 전 날까지도 할 일에 치였다. 


대학교 각종 동아리와 대외활동은 둘째치고

인턴과 아르바이트, 과외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렀다. 


계속 달려오다 보니 스스로 잠식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벌려놓은 일에 내가 끌려가는 느낌을 조금씩 받았다. 


폭풍 같은 일과를 마치고 푹푹 쓰러져 점점 다가오는 여행 날짜를 떠올렸다.

여행 준비는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은데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피곤함이 한가득 안겨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도 보였다. 



떨리는 마음이다.




"있잖아, 

어릴 적부터 꿈꿔온 세계일주를 곧 떠나.

정해진 게 하나 없는데 확실한 한 가지가 있어.

내 가슴이 쿵쾅거린다는 거야. 


아무것도 없는 흰 백지상태여서 

흰 백지를 나만의 색깔로 그려나간다는 사실이

나를 떨리게 해."



마지막으로 과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출국 전날이 당도했다.  

각종 서류를 확인하고, 부랴부랴 짐을 싸기 시작하니 

어느새 6시간이 지나 새벽 2시가 되었다.


갑작스레 남은 서류 준비 하며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은 나 자신을 느꼈다.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해야 하는 일정이기에 

부족함을 한탄할 겨를도 없이.

세계일주를 앞둔 설렘을 느낄 새도 없이 

피곤이라는 물살에 휩쓸려 급히 눈을 붙였다. 





#1. 불확실로 가득 찬 바다를 마음 따라 흘러가기로 했다.


1년동안 세계일주 버킷리스트를 할 거에요. 제 안의 목소리를 들으러 떠나요.


15kg가 넘는 배낭을 앞뒤로 메고 공항에 나선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4시간도 자지 못한 피곤함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엔 설렘이 가득하다. 

동시에 거울 너머 한 소녀가 보인다.

강원도 최북단 시골 마을에서 세계를 품던 소녀.

남몰래 세계일주 버킷리스트를 적으며 미래를 상상하던 소녀.

누군가 불가능이라 말하던 꿈에 스스로 용기를 준 소녀.

그 소녀를 보고 미소 짓는다.



'예진아, 오늘이 바로 네가 꿈꾸는 날이야.'


익숙하지 않은 탑승 수속에 공항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데, 엄마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엄마는 본인이 가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준비 하나 해준 것 없는데 

주책맞게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우리 딸, 조심히 다녀와. 응원할게."


우린 마치 하루동안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듯이 이야기했지만, 

흐르는 눈물은 1년간 긴 여정의 불확실성에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작별인사를 보여줬다.


"엄마, 나 세계를 마음껏 누리고 올게.

세계를 무대로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울기도 하며 

마음껏 춤추고 노래할게.

더욱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올게."


세계에 발을 딛고,

지구와 호흡을 나누며,

오래도록 원했던 꿈의 순간에 다가는 순간에서

인천공항까지 닿는 가족의 응원에 

나도 괜스레 울컥함을 숨길 수 없었다. 


첫 번째 국가인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받아 들면서 행복과 설렘, 떨림과 울림이 공존하는 마음을 

쿵쾅거리는 심장으로 음미한다.



나는 지금 하늘 위에 있다. 

결국, 가는구나.


가슴 설레어 잠 못 이루던 그 밤을 여전히 나는 기억한다.

전 세계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나의 모습을 수없이도 상상했다.

상상이 현실로 되는 순간을 경험하는 건 어떤 느낌이냐 묻는다면 나는 대답한다.

눈물이 나는 기분이라고.



가족들, 친구들도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나도 울었다.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세계일주 첫 번째 국가,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사실 설렘만이 가득한 것은 아니다.

내 앞에 펼쳐진 여정은 정해진 것 하나 없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은 한 몽상가에 불과했다.


그러나, 몽상가가 몇 년 간 꿈꾸고 생각해 온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설렘과 울컥함이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 구름 위에 있다.

내 꿈의 구름 위에 있다.

잘못해도 된다.

그냥 즐기자.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자.


정해진 앞날 하나 없는 불확실성을 앞에서, 

여러 온도의 감정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조금의 두려움 한 스푼, 설렘 아홉 스푼과 함께.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① 일본에서 하야시라이스 먹기





우리, 저 별똥별 같다.
기약도 없이 날아갈 수밖에 없고 어디서 다 타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세 사람은 이어져 있어,
언제라도 한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다고.
그러니까 무서울 거 하나도 없어.

<유성의 인연>_히가시노게이고



중학생이던 시절,

강원도 시골의 조그만 학교의 도서관을 참 좋아했다.

초록색으로 된 쿠션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책이라는 세계에 빠지는 건 삶의 낙이었다.


소설의 세계로 나를 끌어들인 건 히가시노게이고의 [유성의 인연]이다.


<유성의 인연> 히가시노게이고의 추리소설로 강도살인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 삼 남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용의자와 관계된 양식당에서 시그니쳐 음식이 하야시라이스인데, 과거 삼 남매 부모가 운영하던 메인요리와 같다. 삼 남매는 어릴 적 맛본 하야시라이스와 비슷한 용의자 하야시라이스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미궁으로 묻힐 수 있던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히는 과정, 퍼즐이 맞춰지는 이야기다.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예리한 관찰력 바탕으로 서술된 인물의 심리묘사와 

결말이 궁금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유성의 인연]에 온전히 빠지게 했고,

책 속에 나오는 '하야시라이스'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호기심은 관심이 되어 꿈으로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중학생 신예진은 [유성의 인연]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자신의 세계일주 버킷리스트에 적었다. 


'일본에서 하야시라이스 먹기'



창가 사이로 보이는 일출에 눈이 떠졌다. 

스카이 타워를 배경으로 수많은 구름에 단풍이 들었다. 

만연히 번진 노을빛의 색조는 도쿄의 깊이 있는 아침을 황홀하게 물들였다. 

도쿄의 아침은 고요 속의 흥취 냄새가 났다.



우에노 공원으로 가는 길, 길가를 걷다 멈추는 여유를 만끽했다. 

멈추어 가만히 지나가는 차들을 보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표지판을 바라보고, 그냥 주저앉아도 본다. 

공원에서 낮잠도 자고, 그저 떠오르는 심상을 그대로 받아들여 동화나라에도 다녀오곤 한다.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건 언제나 떨리고 설레는 일이다.

일본 도쿄에서의 새로운 인연은 사토시였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연락이 닿은 우리는 지하철 낸조역 앞에서 만나 인사했다.

일본에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사토시에게 설렘을 가득 싣고 말했다.


"저녁으로 하야시라이스를 먹고 싶어!"


일본을 찾는 관광객 중 '하야시라이스'를 콕찝어 말하는 적은 처음이라며

사토시는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지만 곧바로 식당을 함께 물색한다. 

히가시노게이고 책을 읽으며 하야시라이스의 환상을 품은 어린아이의 꿈을 위해 

나와 사토시는 하야시라이스 원정대가 되어 도쿄 일대를 탐색한다.



팔거라 예상하던 식당에서 몇 번 퇴짜를 당했다. 

예상보다 관광객에게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일까, 많은 식당에서 팔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하야시라이스가 가능한 식당에 찾아가지만, 

제공하지 않는다는 소식으로 발길을 둘리며 나오는데,

이 순간이 마냥 좋았다.


한 일본 작가의 책을 읽으며

'하야시라이스'를 먹는 상상에 가슴 설레던 내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생긴 작은 꿈을 

불과 몇 시간 전에 처음 본 일본 남자와 함께 

도쿄 거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하야시라이스 있나요?'를 외치는 모습이 웃기고 행복했다. 


픽 픽 웃는 내 모습에 사토시는 의아해하면서도 함께 미소 지었다. 



그렇게 발견한 하야시라이스 식당.

고급진 식당 분위기에 낯설어하는 내게 사토시는 도쿄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하야시라이스를 선물해 주었다. 


2만 원가량 하는 하야시라이스 메뉴판을 보고 놀란 것도 잠시,

갈색의 하야시라이스가 나오자마자 행복함에 휩싸여 입꼬리를 내릴 수 없었다. 


사토시를 따라 밥 위에 하야시라이스를 부어 한입을 먹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내 머리끝까지 올라 하늘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그날 먹은 하야시라이스는 도쿄에서 먹은 음식 중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하야시라이스 자체의 맛도 좋은 게 분명하지만,

무엇보다 어릴 적 꿈꿔온 일을 

실현한 그 맛이 소스가 되어 

내 입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오늘 하루 사토시와 나눈 대화, 사토시와 걸은 거리, 도쿄의 분위기는

하야시라이스에 함께 녹아들어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가득한 내 마음을 적셨다. 



싹싹 비워진 하야시라이스의 그릇 때문일까,

첫 번째 버킷리스트를 이뤘다는 흥분 때문일까,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일본에서 첫 번째 버킷리스트를 마무리하며

잊을 수 없는 도쿄의 밤이 흘렀다.







친절함으로 얼룩진 감사함,

타인을 향한 정갈한 예의.

일본 도쿄의 따뜻한 마음을 품고

다음 버킷리스트를 위해, 대만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유튜브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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