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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만난 사라

by 여행가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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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에서 크로아티아에 도착한다.


새벽 5시.

버스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이른다.

창가 너머로 아침 여명이 밝아온다.



크로아티아 호스트 사라가 보내준 주소로 찾아가니

출근하려는 빨간 재킷의 사라와 마주친다.



사라는 이른 시간에 출근하면서도

밝고 순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한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 하루의 행운을 빈다.



사라와 나의 모습



짧은 만남에도 사라에게서 순수함을 느낀다.

사라는 편히 쉬라며 넓은 침실을 제공한다.

하얀 침대의 푹신함은 밀린 피곤을 달달하게 녹인다.


잠시 쉬고 나니, 해가 밝게 떠 있다.

그 나라의 냄새가 짙게 밴 거리를 걷는 건,

새로운 느낌을 준다.

그 느낌은

나를 춤추게 한다.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절로 나오는 콧노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짙게 백 거리는

마치 가득한 풍선을 쥐어 날아다니는 느낌이다.

구름 사이를 지나 새파란 하늘을 향해가고 있는 풍선처럼.



<문자>

"데이지! 저녁에 만나기로 했잖아.

저녁에 하고 싶은 거 있어?"




<문자>

"음…. 크로아티아 음식을 같이 먹어보고 싶어!"



구름 위를 걷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크로아티아를 둘러보다

퇴근한 사라와 만난다.



IMG_9076.jpg?type=w773 각자 시간을 보낸 뒤, 우린 저녁을 함께 한다.


사라는 예약한 식당으로 나를 데려간다.

아침에 잠깐 보았던 수수한 모습과 달리

빨간 립스틱은 그의 색다른 모습을 보인다.

아리따운 모습을 한 그가 사랑스럽다.


무엇보다도 그가 착용한 미소 때문일까,

그의 모습은 더욱 사랑스럽게 보인다.

우린 북적거리는 저녁의 여유를 배경으로 담소하기 시작한다.


듀브로닉(오른쪽 원)은 수도 자그레브(왼쪽 네모)와 멀리 있다.

사라는 듀브로닉에서 6년간 학교생활을 보냈다.

관광학으로 대학을 진학한 뒤 관광업계에서 일을 시작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비즈니스 관광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그는 대학을 그만둔다.

새롭게 시작한 분야는 노래.

노래를 좋아하던 그는 뮤직아카데미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뮤직아카데미 입학은 부정부패가 많았어.

자그레브 뮤직아카데미는 보컬로 2명을 뽑지만,

그 2명은 입학 전에 이미 누가 될지 정해져 있었지."



부모님 연줄이 없다면 뚫기 힘든 뮤직아카데미는

엘리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라에게 큰 우울감을 줬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


1년 넘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방황하면서

그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2020년 택배 일을 하며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친구로 시작한 상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깊어진 관계는 2년의 흐름을 맞이했다.

상대는 사라에게 청혼했다.



IMG_9065.jpg?type=w773 데이지 꽃을 들고 있는 사라의 모습


"모든 게 좋았지."


함께 살기 시작하며 보낸 순간에

사라는 우연히 친구를 통해 그가 노름꾼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사라 몰래 가족과 친척에게 돈을 빌린 것도 모자라

은행에서 돈을 탈취한 소식을 들은 것이다.


사라를 혼란스러웠다.


도박을 일삼는 삶 속에서 사라에게 청혼을 하면서도

그도, 그의 부모님조차도 사라에게 알리지 않았다.



"나를 뺀 주위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내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어."



도박 사실을 들키게 된 사라는 청혼을 취소했다.

사람에게서 잃은 신뢰는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그에게서 받은 상실감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자그레브를 떠나 고향에 와서 그저 가만히 앉아서 과식만 했었지."



약혼이 취소된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우울의 심연 속으로 빠진 수많은 밤이 걸렸다.

우울의 밤은 고요 속에 뒤쫓아오는 초라한 자신만을 남겼다.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아픔이 그를 덮쳐왔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깨달았어.

'나는 잃을 게 없구나.'"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가 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다시 일어선 사라는 베이비 시터로 일을 시작한다.

새롭게 만난 촬영가 남자 친구와도 만남을 이어간다.


그는 바와 교회에서 노래 부르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잊지 않으며,

결혼식 촬영을 하는 남자 친구를 따라 함께 노래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비록 네가 바닥에서 내동댕이치는 심정이더라도,

너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나서 계속 나아갈 수 있어.


단지 일어나기 위한 시간을 가지는 거야.

이후에 '이제 괜찮아진 거 같아.'라고 말하며 다시 나가는 거지.

늦는 건 없어."



IMG_9098.jpg?type=w773 함께 이동하는 트램 안에서



사라는 무엇보다 순수하고 밝은 미소를 가진다.

서슴없이 자신의 아픈 순간을 공유하는 그의 모습은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꼭 껴안아 주고 싶게 한다.


거센 파도처럼 들이닥치는 감정의 쓰나미에서

밀려오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감정 흐름에 따라 물처럼 살아온 지난날들.


고통스러운 밤을 수차례 보냈을 텐데도

여전히 밝고 순수한 미소를 잃지 않은 사라.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사랑이야.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고받고자 원하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눌 때 행복을 느끼거든.

사라(Sarah) 삶의 이유




사라는 대답한 뒤 눈물을 흘린다.



"데이지, 너의 프로젝트는 정말 감동적이야."



사랑했던 이에게서 신뢰를 잃었음에도

사랑이라 답하는 그의 모습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나의 조그만 움직임에도

감동하며 눈물 흘리는 그의 모습은

사랑스럽다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크로아티아에서의 마지막 밤이

사랑으로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tellmeyourdaisy : 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daisyshin:유튜브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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