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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반대말은 일상이다

독일 뮌헨에서 만난 다니

by 여행가 데이지


유럽 여행이 시작된 후,

3일에 한 번꼴로 바뀌는 국경을 밟으며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채 휩쓸리며 여행한다.


가만히 열차를 기다리며 바닥에 앉는다.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없는 순간 속에서 지내다 보니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이 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



정신없는 여행자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장난꾸러기 독일은 도착 첫날부터 내게 장난을 치는 듯

버스를 잘못 타 예정된 호스트 집과 정반대에 도착한다.

시간은 이미 새벽 2시를 가리킨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기에 잘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임에도

나를 기다려주던 호스트에게 사과를 하니

늦더라도, 기다릴 테니 조심히 오라고 말한다.


정반대 길을 다시 돌아간다면 늦어도 새벽 4시.

대중교통으로 갈 수단이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잘 곳을 찾은 거야?"

"네가 원한다면 열쇠를 문 앞에 둘게."


먼저 자라는 나의 말에 안부를 걱정하는 그 덕분에

길 잃은 낯선 독일 뮌헨의 새벽 공기가 따뜻하게 나를 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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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다니 집에서


운 좋게 잘 곳을 구해 하룻밤을 보낸 뒤 무사히 호스트 집에 도착한다.

본인을 다니라고 소개하는 호스트는 어젯밤 소동의 결말을 듣고 함께 안도한다.

따뜻한 카레 콩과 함께 따뜻한 걱정을 내주는 다니 덕분에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SE-145a204c-1e70-40d6-b3c2-520f68231712.jpg?type=w773 매번 빵과 요구르트로 연명하던 유럽 여행 중, 따뜻한 국물요리는 집에 온 것처럼 편안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다니는

유럽에 대한 로망으로 건너온 뒤 직장을 구하려고 노력하던 중

유모 일을 하며 학생 비자를 준비하고 있다.


아침부터 바삐 나갈 채비를 하는 그는

커피보다 핫초코를 더 좋아하는 소녀처럼 동그랗고 귀여운 미소를 보인다.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부엌을 지나 방으로 들어간다.

창문 너머를 멍하니 바라본다.

어릴 적 유일하게 왔던 유럽 국가 독일.

독일만의 길거리는 어릴 적 느낀 그 분위기가 연상시킨다.

다니의 마음 덕분일지, 어릴 적 기억 덕분일지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아무래도, 독일을 좋아하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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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다니와 함께 거리를 걷는다.


올해로 26살인 다니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오게 된 시간부터

홀로 일궈온 삶을 들려준다.


콜롬비아에서 유럽으로 오게 된 이유,

많고 많은 나라 중 독일인 이유,

많고 많은 도시 중 뮌헨인 이유,

그의 삶을 둘러싼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듣는다.



자신이 꿈꾸는 삶을 위해 낯선 곳으로 돌진한 그의 용기는

둥글둥글하며 애교 넘치는 그의 웃음 너머로

굳건한 다짐을 만들어 낯선 땅으로 다니를 이끈다.



"콜롬비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뭐야?"


"교육이 중요하지. 사람들이 교육을 받아야 해.

그렇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기본적인 것들이지.

교육을 받기 전에 물이 먼저 제공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활의 기본 요소가 충족되어야지 교육을 받고,

이후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으니까.

콜롬비아는 아직, 물이 필요한 국가야."


콜롬비아로 돌아가고 싶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다니는 앞으로도 유럽에서 직장을 구해서 쭉 살고 싶다고 말한다.



"콜롬비아는 내 가족이 있는 소중한 국가야.

그렇지만, 여전히 발달해야 하는 게 많아.

나는 지금 유럽에서의 삶이 좋고,

유럽에서 공부하고 싶어."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꿈을 향해 나아가고,

외딴 타지 생활에서도 웃음과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 모습.

그 속에서 따뜻하게 타인을 바라볼 줄 아는 다니.

우린 서로 비슷한 삶의 고민과 생각을 안고 있는 십 대 소녀들처럼

뮌헨 거리를 걸으며 서로에 대한 우주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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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삶은 공평하므로, 모든 건 같이 발생해.

행복이 오면 슬픔이 오고,

슬픔이 오면 행복이 오는 것처럼 말이야.


보통 나는 불행할 때 '이제 곧 행복이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만약 내가 행복하다면 불행의 시작을 떠올리며 겸손해지고자 노력해.

'좋아. 오늘은 완벽한 날이니, 즐기되 언제나 겸손해지자.'라고 스스로에게 되뇌곤 해."



"(다니)

보통 언제 우울해?"


"무언가 계획했는데 그게 실현되지 않을 때 우울하곤 해.

무언가 내 통제 밖에 있다는 걸 느낄 때지.

우울하게 되면 보통 자는 거 같아.

자고 일어나도 달라지는 건 없지만, 내 기분은 달라지니까.

조금 더 이성적일 수 있잖아.

다니 너는 보통 우울하면 어떻게 해?"



"정신건강에 대한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함께 치료해 가려고 노력하지.

혹은 그냥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

우울이란 감정은 쉽게 빠지고,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아.

나의 환경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다른 방안을 찾으려고 하지."



"치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필요하지.

우울은 내 마음으로 통제하는 게 아니야.

그건 과학적인 호르몬 문제일 뿐이야."



뮌헨의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잔디밭에 누워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물놀이를 하는 사람을 보며

뮌헨이 가져다주는 여유를 흠뻑 느낀다.



"다니, 보통 언제 행복해?"


"내가 나를 믿을 때,

내가 스스로 연습하고 실천을 많이 할 때,

내가 친구들과 있을 때 행복하지.


지금 내가 콜롬비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독일에 있는 친구들은 내 가족과 같아.

크리스마스나 다른 날들에 함께 보내니까."




꿈꾸는 삶의 방식을 위해 새로운 대륙에서 홀로 새 삶을 시작했지만,

그는 가족과 함께 보낸 시절을 회상하며 어린 시절 행복도 덧붙인다.



"너는?"



"아무래도 요즘에는 여행할 때지(웃음)


보통 나는 시간 낭비를 굉장히 싫어하는데,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좋은 시간을 보냈을 때 행복을 느끼곤 해.


좋은 시간은 가령 누군가와 함께 좋은 대화를 하거나,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단지 걷거나 주위를 둘러볼 때,

무언가를 하고 나서 휴식을 취할 때,

현재를 즐길 때 ···."




"그 순간을 살 때이네."



“(웃음) 맞아.

'불행의 반대말은 일상이다'라는 말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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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와 함께한 순간들


우린 행복과 슬픔에 관해 이야기 나누면서 공원 폭포에 다다랐고

폭포는 웅장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



깔끔한 공원과 거리 곳곳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베개 삼아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을 지나친다.


왕궁정원 호프가르텐의 조그만 공연을 물끄러미 감상하기도

구시가지 오데온 광장에서 히틀러 정권을 떠올리기도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달달함을 채우기도 한다.



되려 뮌헨에서 무얼 할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여행자를 위해

다니는 본인이 알고 있는 무료 전시 정보로 미술관에 나를 데려가기도,

뮌헨의 필수 장소를 샅샅이 데려간다.


그런 다니를 보며

그가 홀로 유럽의 삶을 꿈꾸며 나아온 이유를 깨닫는다.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에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언제나 기회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문화를 폭넓게 수용하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다니.



거리를 울리는 종소리에 맞추어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사람이 되는 거야.
우리는 단지 사람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잖아.

그저 생존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개척하고,
순간을 살고
사회가 규정한 삶이 아닌,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규정한 나 자신이 되는 거야.




낯선 곳으로 여정을 떠나는 수많은 이들 속에서

만나기 전부터 나를 따뜻하게 걱정해 주고,

만나서도 내게 알차고 따뜻한 뮌헨을 만들어준 다니의 미래를 떠올린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사람들에게 둥근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tellmeyourdaisy : 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daisyshin:유튜브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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