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에서 만난 미사
천천히 느리게 머무르며
오랫동안 거니는 도시 프라하.
주황빛의 지붕으로 낮게 깔린 집들 위로 흰색의 구름이 뭉실뭉실 떠있다.
평화로운 프라하의 거리는
시간을 머금고 어두워지며
걷기만 해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낭만을 듬뿍 품는다.
구시가 광장은
유럽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비슷하지만,
프라하의 건물은
유독 더욱 정교한 유럽풍이 느껴진다.
독일에서 넘어와 저녁 늦게 도착한 프라하.
프라하 중심 가지에서 떨어져
외곽에 위치한 미사와 아담 집에 찾아가니
어느덧 껌껌한 밤이 된다.
미사는 딸 마리와 손잡고 정류장에서 나를 맞이한다.
미사와 아담도 세계여행자 삶을 지내왔다.
오랫동안 미국과 호주 여행을 하며 내가 느낀 환대와 친절을 경험하여
체코로 돌아온 지금, 받았던 것을 돌려주고 있다.
다시 세계 여행을 꿈꾸는 그들은
동시에 부모를 꿈꾸었기에
자식을 계획해 체코로 돌아온다.
6살 딸 마리와 4살 아들 프란티섹은 내게 수줍게 인사한 뒤
장난감으로 가득한 영역으로 줄행랑친다.
껌껌한 밤을 내보내기 전,
우린 체코 와인과 간단한 저녁을 함께하며 서로의 우주를 공유한다.
여전히 여행을 꿈꾸는 아담과 미사는 내 여행이야기에 많은 흥미를 보이고,
난 여행 이후 부모가 되어 자리를 잡아가는 그들의 삶에 흥미를 가진다.
미사는 특히 엄마로서 아이 교육을 고민한다.
학생과 선생님 간의 관계와 같이
학교의 분위기를 통해 아이가 얻는 에너지를 중요시하며
홈스쿨링도 선택지에 둔다.
"미사, 너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데?"
"아이들이 목표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모가 되고 싶어.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자 노력해.
부모 되기 책을 읽으면서 이론적으로 익히지만, 현실에서 쉽게 적용되지 않지.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매일 나 자신을 알아가는 거야.
특히 감정적으로.
가령 내가 기분이 안 좋다고 아이들을 안 좋은 기분으로 대하면 안 되지.
사실 아이들은 내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다 알고 있을 거든."
"맞아.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한국말도 있어.
엄마가 되는 심정은 어때?"
"행복하지.
그렇지만,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
여전히 나 자신을 통제하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매 순간 싸우고 있어."
나는 인도를 여행하며 들었던 생각을 공유한다.
"인도에는 길거리에 노숙자가 정말 많았어.
가족 단위의 노숙자도 많았지.
그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부모가 되는데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이 필요할까?'
물론 경제적 능력으로 부모 됨을 판단할 수 없지만,
노숙자를 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일부 경제적 풍요가 있으면 좋지.
그렇지만 부모 됨을 경제 능력으로 재단할 수는 없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필요를 가졌으니까."
화이트와인에 몽롱해진 마음으로
체코의 첫날밤을 보내니,
오래된 느낌의 빨간 트램이 프라하의 새벽 공기를 감싼다.
창문 너머 조그만 종소리도 들려온다.
동시에 아침 준비에 시끌벅적한 미사와 마리아 소리가 들린다.
딸 마리아는 미사에게 투정을 부리고
그는 마리아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마리아는 빵빵한 볼로 죽을 씹으며 나를 바라본다.
훗날, 여행을 마치고 나도 부모가 되어
여행자들을 반기며 부모 됨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이제껏 생각해 보지 않은 화두가 떠오른다.
'가족'
나는 어떤 가족을 이루어갈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있을까.
나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을까.
문득 가족을 떠올리니 눈물이 흐른다.
눈물은 이내 다짐으로 이어진다.
가족들에게 더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어야지.
더욱 여행하고 나아가야지.
정신없는 아침을 마치고 돌아온 미사.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풋풋하게 미소 지으며
미사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아이들이지.
여행을 할 때에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어.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서
아담과 여행을 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프라하에서의 여행을 위해 아침을 정리하며
다시 한번 공상에 빠진다.
훗날 그와 그의 아이들이 어떤 가족이 되어있을까.
훗날 내가 꾸려나갈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가족들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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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