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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사람이야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안나

by 여행가 데이지













새벽 2시 30분.

독일행 플릭스 버스에 오른다.

이전에는 독일 남부 도시를 갔다면

오늘은 북부 도시,

그 중에서도 독일 수도 베를린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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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순간들


베를린은 오래되면서도 낡은 느낌을 풍긴다.

비가 금방이라도 내릴 것 같은 우중충함은

어두운 베를린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클래식한 베를린 위를 다니는 노란색 트램.

트램을 타고 우연히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보며 생각한다.



독일의 통일과 같이,

한반도도 통일이 된다면,

지금 분단 시절을 어떤 식으로 기억할까?



북부 독일인에게서 재미없고 무뚝뚝하다는 독일인 인식이 나왔다는데,

베를린 거리를 걸으니

북부 독일인의 무덤덤함과 인상 굳은 표정이 연상되는 느낌이다.

이른 아침에서도 조금의 어두움이 짙게 묻어나는 거리를 걸으며 생각한다.



거리도 사람을 닮아가 나보다.

서울 거리를 걷는 외국인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새로운 공간이 주는 몽상을 하다 보니

호스트 안나 집에 다다른다.

귀여운 흰색 강아지가 나를 먼저 반긴다.

조그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 뒤로 안나가 인사한다.


안나의 강아지 루디와 함께

"루디야. 내 이름은 안나고."



짧은 단발머리의 안나는

무거운 배낭을 풀며 들어온 나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한다.

안나가 출근하기 전,

우린 차 한 잔을 마시며 아침 시간을 함께한다.



"꽃이 정말 많다."




꽃을 좋아하는 안나 집에는

침대, 베개, 주방 곳곳에 꽃문양으로 디자인했다.



아늑한 다락방에 온듯한 부엌은

그의 세심하고 아기자기한 성격을 보여준다.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안나와 나는 다락방 부엌에서 함께 아침과 저녁을 먹으며

서로의 우주를 공유한다.


20230922_084605.jpg?type=w773 훗날 안나의 부엌은 나에게 안나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안나는 조산사로 일하며 본인이 아기를 좋아하고

아기를 돌보는걸 행복해함을 발견했다.

주위는 안나에게 '좋은 엄마'의 표본이라 말했지만,

안나는 엄마가 될 마음이 없다.



"아이 계획까지 했던 남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했어.

전 남자 친구는 바람을 피우고 있었더라고."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갖고,

엄마로 사는 삶을 안나는 계획했지만,

이별 이후 계획은 와장창 깨진 뒤

너덜너덜해진 신뢰만이 남아있었다.

이후 그는 깊은 상실감으로 온전치 못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는 사실이 내게 언제나 좋다는 말은 아니잖아.

난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내가 받은 상처로부터 치유되는 게 우선이야.

적어도 몇 년 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거야."


여전히 관계의 아픔으로부터 나온

짙은 상처를 마주하기에 마음이 아프지만,

강아지 루디와 함께 오랜 기간 여행을 계획하며

그는 하루하루 살아내며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결혼은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는 거야."



"맞아. '네가 누군가를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잖아."


"그렇구나.

나는 반대되는 말도 알고 있어.

'너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너에게 찾아올 것이다.

그에 열린 마음을 가져라.' 라는 말이야.

(What belongs to you will come to you. Things good things happen all the time. Be opne.)


결국 너는 마음을 바꿀 거고,

가족을 가질 수도 있겠지.

그건 너에게 달렸어."


20230922_193720.jpg?type=w773 안나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저녁을 준비하는 안나,

안나가 올린 샐러드가 지글지글 프라이팬에 올라간다.


안나는 여전히 자기 안의 독을 정화하는 중이기에

우린 유독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



"내 친구는 그는 결혼하여 집을 갖고,

가족을 꾸리는 게 할 일 목록이었지.


상대방과 결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결혼하고 싶어서 상대방을 고른거야.


결국 상대를 제대로 모른 채 결혼을 했고,

남편은 아이를 갖고 난 뒤, 친구를 학대하기 시작했어.


물론, 함께 보낸 시간에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방을 자세히 알아가는데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결과로 나타난 거야."




"한국에서도 결혼을 하면 무조건 함께 살고,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과거에 강했어.

그래서 요즘 젊은 층에서는 결혼을 안 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해."



"결혼을 구속이라 생각하기도 하지.

그렇다고 상대방을 찾지 말라는 건 아니야."




20230923_234057.jpg?type=w773 어느덧 껌껌해진 독일 베를린의 밤



"루디 산책할 시간인데, 같이 갈래?"



우린 함께 베를린의 어둑한 거리를 산책한다.

방방 뛰는 루디는 보도블록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다.

목줄이 필요 없을 만큼 한적한 거리에서 그에게 묻는다.


"안나,

이전에는 왜 부모가 되고 싶었어?"


"나는 언제나 아이를 좋아했거든.

조산사로 일할 때도 줄곧 아이와 함께 일하는 게 좋았지.

그렇지만, 싱글맘이 되고 싶지는 않아."



"왜?"



"내가 싱글맘의 아이였으니까.

그건 내게 어딘가 결핍을 주곤 했어.


싱글맘이 되면 나는 월급이 그다지 많지 않기에

경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거고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분명히 전달될 거니까."



그는 이후 자신이 가진 다른 선택지로 '가정위탁'을 언급한다.

친부모는 여전히 부모의 법적 효력을 갖지만

가정위탁 부모는 경제적 압력 없이 부모가 되는 것이다.



입양과 가정위탁의 차이점

입양(adoption): 양친과 양자가 법률적으로 친부모와 친자식의 관계를 맺는 신분 행위.
법적으로 부모가 됨. 경제적으로 책임감이 있음. 시스템 속에서 무언가가 있으면, 부모는 아이를 위해 지불을 해야 함.

가정위탁(forster parents): 친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상황일 때, 다른 곳에서 길러주는 것.
독일의 경우 교육 수료 이후 단체의 승인을 받게 되면 단체에서 돈을 지급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및 안나의 말 참조



안나도 어릴 적 가정위탁을 갔던 안나도 본인의 경험을 말한다.



"좋지 않은 일을 겪어도,

그들이 학대를 당해도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사랑해.

아이들은 상처를 받더라도, 부모를 사랑해."



그렇기에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끊임없이 상기해 줘야 해.

연결을 해주는 게 중요하지.

그리고, 최선의 환경에서 성장을 지지해 줘야 하는 거야. "



20230923_104347.jpg?type=w773 독일 베를린에서


여행하며 바뀐 '결혼'에 대한 생각을 더하며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결혼에 대한 큰 생각이 없었는데,

여행하며 만난 다양한 형태의 삶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어.


그것이 결혼 아래 남편이든, 친구이든

삶에서 나와 시간을 공유하고, 추억을 함께 나눌 동반자가 있다는 게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어떤 형태이든 간에 함께 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삶에서 정말 중요하다는 것 말이야."



"맞아. 때로는 관계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잖아.

나와 맞는 이와 함께 관계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결혼'과 '부모'를 주제로

베를린 밤거리를 산책한 순간.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결핍에서 깨달은 가치를 공유해 준 안나 덕분에

우중충해 보였던 베를린 거리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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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맞이하는 베를린의 아침


누드 문화가 발달된 독일에서 누드 사우나를 계획했기에

안나에게 묻는다.


"안나, 베를린에서 누드 사우나에 가보고 싶었는데,

혹시 추천해 줄래?"


"내가 자주 가는 사우나가 있어.

나도 마침 시간이 비는데, 같이 갈래?"




우린 저녁에 사우나 앞에서 만난다.

잔뜩 설렘에 가득찬 나를 보며 안나는 말 한다.



"(웃음) 누드 사우나가 처음이면 신기할 수도 있겠네.

그렇지만, 사우나 이후에 내가 더 엄청난 걸 말해줄게."



안나 집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으며

안나는 자신을 따라 하라며 옷을 벗고는 성큼성큼 사우나로 이동한다.

그를 따라 짧게 샤워를 한 뒤 사우나로 이동한다.


알몸의 나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며

옷깃의 장애물 없이 살갗에 곧바로 흐르는 땀은

사우나를 가득 채운 수증기와 함께 춤을 춘다.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 속에서

우린 한껏 땀을 빼며 이야기 나눈다.



"안나, 부모가 되는데 기준이 필요할까?

내가 인도에 있을 때, 노숙자 가족을 많이 봤어.

그들은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어 보인 채

구걸을 하며 배회했지.



물론,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지만,

어쩌면 부모가 되는데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걸까?

나도 모르게 의문이 든 거 같아."



"물론 그러면 좋겠지.

하지만, 우린 능력 없이 부모가 된 사람을 비난할 수 없어.


그보다, 사회를 바꾸려고 해야 하지.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더라도 그 자식은 가난하지 않도록 만드는 사회로 말이야.

가정이 가난한 게 부모가 멍청하다는 의미가 아니야.

불평등한 사회 구조로부터 인한 가난도 많은걸.

중요한 건, 사회적으로 가난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해."



뜨거워진 열기는 식을 줄도 모른 채 사우나를 가득 채우는데

사우나 직원이 들어와 향기 테라피를 시작한다.

상큼하며 시큼한 냄새는 빠르게 움직이는 공지 분자를 뚫고 내게 다가온다.

넓어지는 혈관을 타고 혈액이 몸속 순환 여행을 시작한다.



"경제적 능력으로 가족을 갖는 사회는 옳지 않아.

오로지 부자들만 가족을 갖는다면,

그게 디스토피아가 아니고 뭐겠어?"



사회적 복지, 교육 지원에 앞장서는 독일과 같이

가정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말하는 안 나.

그의 진지한 어투는 사우나를 즐기는 방법을 설명할 때에도 계속된다.



"뜨거운 공기와 찬물을 번갈아 오가는

온열작용이 사우나의 기본 원리야.

땀을 조금 뺐으니,

찬물로 들어가 볼까?"



그는 한껏 뺀 땀이 식기 전, 찬물이 가득 담긴 냉탕으로 몸을 던진다.

그를 따라 몸을 던진 뒤 온몸을 관통하는 차가움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앗 차가워!"


차가운 물이 살갗에 닿았고

이내 몸 전체를 흐르는 차가움은 짜릿한 시원함으로 변한다.



"그리고, 쉼터에 누워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거야."



안나를 따라 쉼터에 누워

온열작용이 주는 마법을 조용히 느낀다.




"안나, 이 기분 최고다.

몸의 모든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야."


안나는 웃으면서 휴식을 깊숙이 들이마신다.

사우나의 천장을 바라보며

몸의 온열작용을 느낀다.

동시에, 이전에 안나와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이스라엘에서 만난 커플과도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눴는데,

자유(freedom)를 잃지만, 자유(liberty)를 얻게 된다고 말하더라.

그 대화를 통해 '부모 됨'의 인식이 바뀌었어."



"다 장단점이 있지.

그렇지만 이건 확실히 해야 돼.

아이는 인간이라는 점 말이야.

아이들은 독립적이기 전까지 오랫동안 너에게 의지할 거야.


감정적으로, 경제적으로 혹은 이외에 다른 모든 것으로

너는 아이를 책임져야 하고 그들을 가르쳐야 돼.


그 속에서 아이는 수많은 걸 가져다줄 거야.

너는 어린 시절을 다시 보내게 되는 행운을 갖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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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를 마친 뒤 / 안나가 준 (사우나 이후 엄청나다는) 스트룹 와플과 함께


"안나, 이번 사우나는 내 생애 최고의 사우나였어."


그는 매우 만족해하는 나를 보며 말한다.


"아까 내가 엄청난 걸 말해준다고 했지?

바로 최고의 행복을 알려주지!"


주섬주섬 가방 안에 있는 무알코올 음료와 스트룹와플을 꺼낸다.


"헐! 사우나 이후의 스트룹 와플이라니!"



내 생애 최고의 사우나였던 누드 사우나는

안나가 선물한 스트룹 와플에 완벽히 마무리된다.


사우나로 인해 노곤노곤한 몸으로 한입 베어 물을 와플은,

내게 최고를 넘어선 행복을 가져다준다.



동시에, 이전에 안나와 대화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안나에게 삶의 이유를 물었던 순간.








내 삶의 이유는 새롭게 발견한 나 자신에 대한 보살핌이야.
몇 년동안 나는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에서 불행한 시간을 보냈어.

이후 나는 새롭게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발견했고,
매일의 관심으로 보살피고 있어.

정신적으로 건강해야지 다른 이를 진정으로 돌볼 수 있기에,
나는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내 안의 평화를 지킬 거야.
세상의 모든 사랑을 허용하지만,
부정적인 것을 멀리하면서 말이야.




그가 가진 결혼관과 가족관은

여행하며 다져진 나의 세계관과 어우러져

조금씩 스며들었고,

나는 그의 스며듦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데이지,

좋은 일은 항상 일어나기 마련이야.

단지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 하지."



최고의 행복을 책임진 세 트룹 와플의 꿀이 내 혀에 스며든다.

달달한 꿀의 스며듦을 받아들이며 베를린 노란색 트램에 올라선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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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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