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만난 진희
중국의 현자가 물었다.
"학문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렇게 답했다.
"사람을 아는 일이다."
또다시 질문했다.
"선(善)은 무엇입니까?"
현자가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p.279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김혜남
"언니!!!!!!"
"예진아!!!!!!!!!!"
키가 크고 뾰족한 코의 덴마크 사람들 틈으로
두 명의 동양인은 이산가족이 만나듯 서로를 껴안는다.
꾀죄죄한 배낭여행자 꼴로 덴마크에 나타난 나를
진희 언니는 꼭 껴안아 주었다.
"언니!!! 잘 지냈어?"
대학교 새내기일 때 만난 진희 언니는
대학교 추억에서 빠질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언니는 덴마크로 교환학생을 왔고,
나는 유럽 여행 중에 언니를 보러 덴마크에 찾아간다.
포옹이 끝나자마자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린 각자가 지내온 우주를 공유하며
덴마크에서의 잊지 못할 2박 3일을 채운다.
나는 그동안 다녔던 여행 이야기를 나눈다.
언니도 막 시작한 교환 생활 이야기를 나에게 공유한다.
"언니가 교환 생활하면서 매번 음식을 해 먹고 있어.
오늘은 중국음식 만들어줄게"
"중국음식! 라오스에서가 마지막이었는데.
라오스에 있었을 때 중국 부잣집에 머물렀는데,
그 사람은 몸 곳곳에 문신을 하고 있었어!"
서로가 목격하지 않은 각자의 필름을 되감으며
서로가 함께하는 덴마크에서의 새 필름을 함께 현상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반 고흐 박물관에 다녀왔었어.
반 고흐 작품을 보면 우울함이 느껴져.
그림이 반 고흐 삶을 반영하는 게 느껴지는 거 같아."
"반 고흐는 어려운 삶을 살았음에도
희망을 그리고,
밝음을 그리려고 노력하는 게 좋아."
공기는 조금 쌀쌀하면서도
안온한 느낌으로 우리를 감싼다.
자전거로 코펜하겐 일대를 다니며
뺨을 스치는 바람을 맞는다.
"진희 씨 - 지금 날씨가 어떤가요?"
"예진아 덴마크는 어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묻는다.
현재를 사는 순간,
현재를 함께 공유하는 순간,
서로에게 건네는 질문과 대답으로
우린 지금 이 순간을 느낀다.
"언니, 우리가 한국에서 해외여행을 결심하더라도
덴마크를 결코 고르지 않았을 텐데,
언니도 마침 교환학생을 오고,
나도 유럽여행을 하고 있다는 점이 참 신기하고 좋다."
"운명의 장난이네.
우리를 덴마크로 이끌었잖아."
"(웃음) 그러게"
한국과 약 8,000km 떨어진 덴마크.
덴마크에서 서로의 청춘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린 더욱 치열하게
지금 이 순간을 음미한다.
함께 뉘하운 운하를 거닐며
덴마크의 여유를 힘껏 느끼고
함께 강둑 위를 자전거 타며
덴마크의 차갑지만 따뜻한 바람을 맞는다.
짙푸른 남색으로 덴마크 바다가 펼쳐진다.
굵지만 푸른 바다는 차가운 공기와 만난다.
북유럽의 고요한 차가움은
마치 얼음 나라의 동화 속에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맑은 바닷물을 음미한다.
냄새를 품지 않은 바닷물은 짠맛이 없다.
맛조차도 고요하고 투명하다.
차가운 바다가 품은 투명한 맛은
우리가 있는 순간을 신비롭게 만든다.
"금방이라도 오즈의 마법사가 나올 거 같아.
여기가, 바로 동화 속인가?"
사소한 순간일지라도
우리가 함께한다는 이유로
그 무엇보다 소중한 공간이 된다.
서로의 숨결,
서로의 미소,
서로의 깊은 속 마음까지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해 떨어지는 줄 모른 채 나눈다.
"우리.. 바다에 빠질래?
지금 너무 행복해서
바다에 빠져야겠어."
함께하는 순간에
행복을 주체하지 못한 채
갑작스러운 제안을 한다.
"진심이야?
... 그럴까?"
조금씩 지는 해를 뒤로
훌렁훌렁 허물을 벗어던진 채
밤바다에 입수한다.
차가운 바닷물이 살결에 닿는 순간
우린 어떤 굴레에서부터 벗어나 자유를 만끽한다.
풍덩
"꺄!
너무 좋아!"
"이게 자유인가?"
"이걸 행복이라고 하나 봐"
하루는 덴마크의 모든 여유를 흡수하듯
기숙사 근처 공원에 돗자리를 편다.
우린 돗자리 위에 침대처럼 편하게 눕는다.
"여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삶의 이유'를 묻기 시작했어."
나는 진희 언니에게 데이지 프로젝트를 말한다.
언니는 내 프로젝트를 듣고는 말한다.
"예진아
너는 희망 그 자체야"
종종 내게 '햇살'이라고 말해준 진희 언니는
언제나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해준다.
언니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을
나는 오랫동안 추억하겠구나.
참 소중하다.
"언니 삶의 이유는 뭔데?"
"나는.."
언니는 짧게 생각한 뒤
입을 연다.
나는 사랑이야.
누군가를 계속 사랑한 채 살아가고 싶어.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못난 사람이거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은
우리 둘 모두에게 눈물로 나타난다.
"언니, 나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와"
"나도"
행복이 최고조에 이르면
감정이 주체할 수 없어서
눈물을 내보내는 걸까.
행복이란 감정을
주체할 수 없던 눈물은
우리 눈망울에 가득히 고인다.
우린 공원에서 누워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듣고
하늘을 바라보고
순간을 느낀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순간을 잡아
서로에게 공유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잡아
추억으로 남긴다.
"언니에게 읽어주고 싶은 게 있어."
문득 학창 시절에 힘이 되어준 글귀를 선물한다.
-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사실은 삶이 버거운 너에게,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은 삶이 버겁고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늘 울고 있는
옛 과거의 나쁜 기억에서 발목을 잡혀
매일매일 괴로워 신음하고 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너에게
그렇게 특별하다 믿었던 자신이
평범은커녕 아예 무능력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고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던 이성으로부터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분신인 듯 잘 맞던 친구로부터
정이 뚝 떨어지는 순간이 있고
소름 돋던 노래가 지겨워지는 순간이 있고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그저 짝사랑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다
삶에 대한 욕망이나 야망 따위가
시들어 버리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삶이 치명적일 정도로
무의미하게 다가오는 순간 또한 있다
우리는 여태껏 느꼈던
평생 간직하고 싶던 그 감정은 무시한 채
영원할 것 같이 아름답고 순수하던 감정이 다 타버려
날아가는 순간에만 매달려 절망에 빠지곤 한다
순간은 지나가도록 약속되어 있고
지나간 모든 것은 잊히게 마련이다
어차피 잊힐 모든 만사를 얹고
왜 굳이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며 사냐는 게 아니다
어차피 잊힐 테니, 절망하지 말라는 거다
겁내지 마라.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기죽지 마라.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
슬퍼하지 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조급해하지 마라. 멈추기엔 너무 이르다
울지 마라 너는 아직 어리다
"좋다."
덴마크 휘게*를 마음껏 느끼며
서로의 모습을 담고
서로를 향해
마음 깊숙이
따뜻하게 이해해 주는 순간들.
진희 언니 삶의 이유인
'사랑'을 다시 떠올린다.
"언니,
삶의 이유에 대해 다시 말해줄 수 있어?"
웃으며 카메라를 드는 나에게
언니는 답변을 다시 공유한다.
*휘게: 덴마크에서 유래한 단어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
내 삶의 이유는 사랑이야.
나는 계속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어.
그게 내 삶의 원동력이야.
나는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나를 사랑하게 돼.
항상 누군가를 항상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어.
사랑이란 뭘까.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미움, 증오, 무관심 ···.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그 사람을 사랑해야지 가능한 것이다.
사랑과 증오는 함께 있다.
그 사람을 증오한다는 건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진실한 관계를 원한다면
나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보이면 된다.
어쩌면 진희 언니가
사랑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는 이유는
진실한 자기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 아닐까.
자기의 모습을 싫어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진희 언니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남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중국의 현자가 물었다.
"학문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렇게 답했다.
"사람을 아는 일이다."
또다시 질문했다.
"선(善)은 무엇입니까?"
현자가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p.279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김혜남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나의 삶을 풍부하고
나의 삶을 가치 있게 해 주고
나란 존재의 가치를 알려준다.
동시에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다.
사랑.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고귀한 감정이자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소중한 흔적이다.
그 흔적을 삶의 이유로 가진
진희 언니의 사랑을
나는 오래도록 응원하고 싶다.
해당 편은 영상을 통해서도 생생히 만날 수 있습니다.
도난 당해도 덴마크가 좋았던 이유
https://youtu.be/Xih9RthflN4?si=YC3EYAPM7mXLxRTW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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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