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나이로비에서 만난 베아
"곧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은 ···."
뭉실뭉실 떠오른 구름은
나이로비의 맑은 날씨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자연 너머로 나이로비 전경이 펼쳐진다.
안내원의 음성 소리 너머
케냐 사람으로 보이는 성인이
비행기 창문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너도 나도 신기하다는 듯이
창문에 철썩 달라붙어
눈을 떼지 못한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
비행기의 착륙을 즐거워하는 어린아이.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좋다.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신나 하고,
감사해하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일까,
케냐에 가기 위한 여정에서 스친 케냐인들의
순수하고, 호기심 어린 행동과 친화력에
나는 이미 케냐에 대한 기대감을 멈출 수 없었다.
낯섦의 끌림을 가득 안고.
동아프리카에 첫 여정이 시작된다.
"저기! 나 시내 쪽으로 가는데,
내가 부른 택시 타고 가~"
공항에서부터 눈이 마주친 사람이 나를 부른다.
나이로비 시내로 가기 위해 버스를 찾는 걸 깨달았는지
자신의 택시를 함께 공유한다.
"이거 가져가."
택시 기사는 현찰이 없는 나를 위해
버스비를 준다.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받는 대가 없는 나눔에
정신이 헤롱 해진다.
다닥다닥 힙합 뮤지션으로 보이는 코흐 터가 붙어있는 버스 안.
조금씩 자리가 차는 버스에 마침내 사람으로 가득 찬다.
커다란 배낭을 껴안은 채로 꾹꾹 눌러 담은 사람 틈 사이에 껴서
창문 밖을 바라본다.
화창하기 그지없는 하늘을 바라본다.
창문 너머로 눈이 마주친 이에게 웃음을 지으니
내게 사탕을 건넨다.
낯선 이에게 무언가 함부로 받지 말라는 경고에
사탕을 먹진 않지만,
활짝 웃는 모습으로 건네는 사탕은
케냐에 대한 호기심을 가득 채운다.
케냐의 거리는 인도와 네팔을 떠올리게 한다.
동남아시아 느낌도 조금 섞여있다.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의 냄새가 나면서도
그 속에서 아프리카만의 매력이 보인다.
즐길 줄 아는,
웃음 지을 줄 아는,
행복해할 줄 아는
그들의 에너지가 참 좋다.
사람에 대한 감동으로 시작한 케냐 여행.
나이로비 시내에 울리는 경적과 무수한 인파를 보자마자
감동은 긴장으로 바뀐다.
노상방뇨하는 사람,
잔디에서 낮잠을 자는 사람,
정기적으로 울리는 경적소리,
무언가 어두운 기분이 느껴지는 아스팔트 도로까지.
동부 아프리카에 발을 처음 디딘 순간은
설렘과 경계의 공존을 아슬아슬하게 껴안으며 이뤄진다.
나도 모르게 생긴 '아프리카는 위험하다'의 인식으로
배낭끈을 꼭 붙잡는다.
힐끔힐끔 인도 위 사람을 쳐다보지만,
눈은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이로비 호스트 집으로 향한다.
호스트 베아는 커다란 입으로 웃음 지으며 나를 반긴다.
장정 190cm에 달하는 거구인 베아.
그는 느리게 몸을 뒤뚱거리며 나를 껴안는다.
그 뒤로는 마을 아이들이 빼꼼 얼굴을 내보인다.
베아는 비히가(Vihiga)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자랐다.
비히가는 케냐 서부에 위치한 마을로 관광지로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나이로비에 와서 지내던 중,
비리가 마을에 있는 아이들 일부를 데려와
방학 동안 나이로비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럼 아이들은 너의 자식이 아닌 거지?"
"나의 자식은 아니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 같은 가족이야."
전통적인 케냐 문화가 남아있는 비히가 마을은
루키야 족(Luhya)의 고유한 풍습이 남아있다.
가족과 공동체 중심인 마을이기에
마을 내 주민들이 서로 유대감을 강화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그는 하릴없이 지내는 마을 아이들을 위해
일부를 대도시 나이로비에서 데려와 지내는 것이다.
농업을 주요 생계수단으로 한 마을이기에
그는 마을을 '가난한 마을'이라 묘사한다.
"마을도, 집안도 가난했기에 혼자서 돈을 벌며 학교에 다녔어."
그는 학교 방학 때마다 쉼 없이 일을 했다.
4월, 8월,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물을 뜨기 위해 수십 km를 걸었다.
물만 옮겼을까, 그는 벽돌을 옮기는 일 등
손이 잡히는 일은 되는대로 무엇이든지 했다.
4년이란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17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수도 나이로비에 사는 친척 집에 잠시 머물렀다.
나이로비 거리를 걷던 중 우연히 아일랜드 사람과 이야기가 닿았고,
그 순간은 베아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아일랜드인은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했어."
우연히 만난 낯선 이는 베아를 위해
학비를 비롯해 생활비를 지원하였고,
베아가 스스로 자립하도록 인턴 기회를 주었다.
베아는 재정적 지원 아래 심리학을 전공하며 1학년을 다녔다.
IT 회사에서 인턴직을 얻은 2학년 때부터 스스로 학비를 벌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구나!"
"그 사람은 기독교인이었어.
케냐에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고 왔는데,
마침 나는 가난한 사람이자 도움이 필요했으니,
가능한 일이지."
베아는 24살에 대학을 졸업한 뒤로도
7년 동안 같은 IT 회사에서 일을 했다.
동시에 성경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성경 공부는 어느새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는 교회 사람들에게 설교하며 가르침을 나눈다.
삶의 조언을 묻는 내게 그는 말한다.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아야 해.
깨닫게 된다면, 그곳으로 가려고 집중해."
"데이지, 종종 봉사하러 가던 슬럼 마을이 있어.
관심 있으면 같이 가볼래?"
"내가 혹시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
"그들이 필요한 건 음식과 이야기 나눌 사람뿐이야.
일부는 약에 취하기도, 일부는 미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저 옆에서 이야기 나눠주는 이가 필요한 거지."
턱없이 부족하지만,
마트에 들러 우유 몇 팩을 사들고 마을(Makindu)로 향한다.
"베아, 카메라 들고 가도 괜찮을까?"
"괜찮아. 찍어도 돼."
혹시나 카메라를 뺏기지는 않을까
손으로 단단히 묶은 채 마을에 들어선다.
졸졸졸 나를 따라오는 아이들과 인사한다.
하릴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이방인의 등장에 손짓한다.
방문이 익숙한 베아는 능숙하게 말한다.
"우유를 가져왔어요!"
소식이 일파만파에 퍼지자 아이들과 어른들은 밖으로 나온다.
마치 선의의 낯선 이를 늘 맞이해 왔다는 듯
아이들은 일렬로 늘어서며 우유를 기다린다.
이런 시선이 이미 익숙하다는 듯,
오히려 마치 자신이 서커스단의 곡예사가 된 것처럼
능숙하게 나를 맞이한다.
"안녕?
골목에 냄새가 나지? 우리가 매일 맡는 냄새야"
가난이 무뎌진 사람들에 대해서,
동정이 익숙한 사람들의 눈빛을 알려준다.
여행을 다니는 나는
그들 앞에 서기만 해도
"너희는 가난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된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들은 그 목소리를 듣고,
지금껏 들어왔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익숙한 가녀린 눈빛을 하고
내게 "머니(Money)"를 외친다.
에너지 있고, 쾌활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즐기는 케냐 사람들이지만
가난에 익숙해서도
유쾌하게 돈을 달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가난하게 살고 있어~
영상 찍고 있니?
더 자세하게 보고 싶어?
내가 가이드해줄게!"
그들은 구걸하는 게 익숙하고
자신이 상대보다 낮은 게 당연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받아내기 위해
굽신거리는 게 당연했다.
미디어를 통해 어렴풋이 그런 상황을 보아왔기에,
그들의 삶이 충격적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삶의 시간이,
본인처럼 생기지 않은 이들은 모두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이미 패배자이자,
가난한 존재이자,
도움받는 게 당연하고,
도움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그들에게서 느껴진 것이 충격적이다.
영상을 찍으며 공터로 나오는데,
누군가 술에 취한 채 내 카메라를 뺏으려고 달려든다.
"촬영하지 마!"
술 냄새가 가득 풍기는 이에게
카메라를 넘기고 나니
나를 대신해 가이드해주는 이가 되려 성을 낸다.
붉어진 얼굴로 씩씩대는 상대를 바라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유라는 위선을 이용해 찾아온 외국인이
슬럼가가 신기하다며 촬영을 하고 있다니.
얼마나 예의 없는 걸까.
고작 우유만 사간 나 자신도 웃기고,
우유 하나로 호기심을 채우려던 내 모습이 부끄럽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괜찮다며
취해서 그런 거라고 다시 나에게 카메라를 돌려주지만,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슬럼가에서 나오는 길.
우유 양이 적어 미처 다 주지 못한 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데이지, 저 사람에게 남은 돈을 줘."
베아 말을 듣고는 그에게 가서,
우유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남은 돈을 쥐여준다.
고작 천 원이었다.
그는 천 원으로 윤택한 하루를 보내지만,
고작 천 원으로 그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는 것은 아니다.
나는 천 원을 건네며
받는 입장에서 느낄 굴욕감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누군가에게 실제로 지폐를 건네준다는 게,
동정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무색한 순간이라는 게,
고작 천 원을 쥐여주는 그 장면은 다분히 폭력적이었고,
나는 그 폭력적 장면의 가해자였다.
우유를 더 많이 사 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작 천 원을 쥐여주면서 내 마음이 편해지려는 걸까?
결국 나 편하자고 그에게 굴욕감을 준 건 아닐까?
그가 천 원을 받아 드는 상황에서 굴욕감을 느끼지 않더라도
천 원을 쥐여주는 행위는 엄연히 폭력적이었다.
선행을 했지만
전혀 선행이 아닌 행동에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마을을 나온다.
베아는 내가 마을에 충격을 받았다고 느꼈는지
케냐가 맞이한 문제와
케냐 빈민촌 현실에 대해 말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인플레이션으로 옥수숫가로, 연료 같은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어.
많은 이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의료 서비스는 무슨,
교육도 받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지."
미디어를 통해
영양실조, 빈곤한 개발도상국의 이미지를 보아왔지만,
실제 마주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그들의 눈빛,
그들의 내음,
그들의 분위기,
가난에 익숙해진 채,
상대보다 본인을 낮추는 게 당연해버린 그들의 모습과
동시에
그 속에서도 쾌활하고 웃음 넘치는 그들의 모습이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다.
저소득 지역과 비공식 정착촌
소득이 낮은 이들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내몰린다.
"내 목표는
슬럼 지역 주민을 위해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거야.
국내외적으로 자원을 확보해야지."
베아는 그런 이들은 위해 움직인다.
나눌 식량을 위해 토지를 임대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배급한다.
"미용 학교, 기계 및 운전 학교 등의 맞춤형 교육 기회를 확대 헤야지"
베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교육을 통해 자립을 도와
본인의 삶을 살도록 하는 일이다.
나는 고개를 적극 끄덕인다.
천 원짜리 지폐에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자아이에게
고개 숙이는 게 익숙해져 버리지 않도록,
당당하게 자신을 발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걸 해결하려면
더 포괄적인 개혁,
강력한 거버넌스,
쥐약 측에 대한 표적 지원이 필요하지.
기부자들의 지원으로
내 꿈은 실현될 거라 분명히 믿어."
베아의 말이 견고하게 다가온다.
본인 역시 가난한 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며,
우연히 만난 이로부터 교육비를 지원받아서
자립하여 살아왔기에,
누구보다 '가난'이란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첫 번째, 나는 신을 이해서 살아.
두 번째, 인류애를 위해서 살아.
"나는 사람들의 삶을 감동시키고 싶어.
나는 고통에 받는 사람들을 보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나아질 때마다
항상 행복을 느껴.
특히
아이들의 웃음을 볼 때마다 참 행복해.
장애를 가진,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
나는 그들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 좋아."
케냐에 도착한 뒤로 왜인지 모르는 편안함을 느낀다.
미지의 영역이던 케냐의 순간들의 편안한 이유는
어쩌면 베아가 나누어준 마음 덕분일까.
천 원을 건네며 느낀 불편함을 떠올리며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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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