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담맘에서 만난 다리야
"엄마는 줄곧 내게 말씀하셨어.
삶에서 진정한 성공이란,
'남과의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이라고.
인간관계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그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좋다', '싫다'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래서 나는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나와 다른 사람이 있는 거지.
나와 다른 사람이기에
어울리지 어렵다고 생각되면 거리를 두면 돼.
지구는 둥글고,
우리 삶은 다리 건너 다 알 수 있잖아."
사우디아라비아 호스트 살림과의 이야기 다시보기 ▶ 너는 우리의 손님이니까
사우디아라비아 호스트 살림은
3주 전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온 다리야를 소개한다.
무슬림 복장을 하고 있는 다리야는
본인을 멕시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히잡을 둘러쓴 아리따운 모습의 그와 인사를 나눈 뒤,
우린 함께 담맘의 한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기 시작한다.
다리야는 멕시코 방송국에서 일하는 저널리스트이다.
법원에서 통역 업무도 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멕시코는 가톨릭, 개신교가 주요 종교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깊은 이슬람 신앙을 갖고 있다.
"내가 이슬람을 종교로 받아들인 건 20살 때부터야."
다리야는 어릴 적 무슬림 친구들과 어울리며
종종 기도 장소에 따라가곤 했다.
그 순간들은 다리야에게 이슬람에 대한 호기심을 불어넣었다.
호기심은 이내 그에게 편안한 마음을 주었다.
"왜인지 모르겠어.
사우디아라비아에 오자마자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어."
그는 메카와 메디나를 방문하기 위해
두 달간의 휴가를 만들었다.
생애 처음으로 도착한 사우디아라비아이지만,
이곳이 주는 무언의 편안함은
포근한 엄마의 품과 같았다.
"한 번은 택시를 탔는데,
내가 외국인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초대되었으니
택시 기사가 돈을 받지 않겠다는 거야."
다리야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며 느낀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지의 나라로 모든 것이 새로운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흥미롭게만 들린다.
여성이기에 받은 배려,
자신이 공주라고 느낀 순간,
남을 도와주려는 사우디아라비 아인의 심성까지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슬람문화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슬람 문화가 여성을 대해온 태도를 익히 들어온 나는
생각한 것과 다른 '무슬림 여성'의 호의적 반응에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여성인권은 어떻게 갖춰져 있어?"
"이제는 여성도 운전이 가능하잖아.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도 있고,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성도 있어.
사우디아라비아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
다리야는 덧붙인다.
"요 근래에는 여성의 자유가 있어도 선택하지 않는 여성도 있어.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택해서 이루어지는 거지."
히잡을 둘러쓴 멕시코 여성과 시작한 사우디아라비아.
그 첫 순간은 담맘의 야경처럼
건조한 화려함으로 곳곳에서 빛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마지막 날.
내가 아프리카로 떠나는 비행기와
다리야가 멕시코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비슷하게 출발한다.
우린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내며
함께 공항으로 가게 된다.
커다란 배낭에 간단한 생활품만 정리한 나는
일찍이 떠날 준비를 마쳤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갖가지 기념품을 챙기는 다리야는
짐 정리에 시간이 걸린다며 방으로 나를 초대한다.
큼직한 캐리어 3개에 꾹꾹 눌러 담아도 물건이 담기지 않는 상황.
낑낑대며 문 닫는 걸 돕던 중,
다시 처음부터 물건을 풀기로 다짐한다.
"데이지 네가 21살이라고?!
내가 너 나이 때 결혼을 했어!"
35살인 다리야는 나의 나이를 듣고는 깜짝 놀란다.
이내 캐리어 안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꺼내며
시나브로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삶을 끝내고 싶었어.
나 자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는 상대방과 만난 자마자 강렬한 사랑에 이끌려
한 달 만에 결혼식으로 이어졌다.
결혼 후 바로 아이를 가졌지만,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쌓여온 화가 내면에 있던 사람이었어."
그는 끈적한 발음으로 천천히 그리고 나직하게 말을 읊는다.
다리야의 남편은 내면에 있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밖으로 표출하기 시작했고, 그 방식은 다리야에게 폭력으로 이어졌다.
다리야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눈 감으며 지내왔지만
어느 순간 그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나의 아이들도, 남편도, 그 무엇도 필요 없이
그냥 이 삶을 끝내고 싶다.'
다리야는 생각을 깨닫자마자 남편을 떠나기로 다짐했다.
그는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사과하며 변하겠다고 다짐하는 남편에게 그는 말했다.
"내가 떠난 걸로 인해
네가 깨닫고 바뀌는 순간이 되길 바라.
후에 다른 부인을 만나면 꼭 바뀐 너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
자신의 전부였던 남편의 폭력은
그의 삶을 망가뜨렸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했지만,
눈물을 머금으며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혼 후 아이 2명을 홀로 키우게 된 다리야.
이혼 이전까지 직업 없이 아이만 키워온 그에게
남편에게 의존해 온 경제적인 것을 한순간에 부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회에서 어떠한 경제적 노동을 해본 적 없던 그는
본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 둘과 함께 사회에 남겨졌다.
"정말 막막했지.
어머니에게 찾아가서 울면서 물어봤어.
엄마,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신의 생계와 아이 둘을 부양해야 하는 그는
절망과 막막함 속에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데이지, 이 향수는 나의 선물이야."
담기지 않을 것만 같던 물건이 정리되고
짐 정리를 마친 다리야와 함께 택시에 오른다.
그는 정리를 마치기 전, 아라비안 향수를 선물로 준다.
아라비안 향수의 오우드(침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침향은 공항으로 가는 택시로도 이어진다.
우리는 택시 안에서 이어서 이야기 나눈다.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창밖은 어느덧
다리야가 두른 검은색의 히잡처럼
진한 검은색으로 칠해져있다.
담맘의 깔끔하고 건조한 도로에 올라 이동하면서
다리야는 다시 운을 떼기 시작한다.
"그때가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지."
싱글맘으로 두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
그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야 하는 아픔을 아물기도 전에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을 맞이한다.
5년 전,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떠나고,
어머니를 잃은 다리야.
다리야 너머 창밖의 풍경처럼 깜깜한 밤이 보인다.
한순간에 떠난 소중한 이들의 부재를 감당해야 했던 그.
그가 보냈을 수없이 많은 밤이 스친다.
"그때였어. 신의 부름이 들렸지."
그런 그가 넘어져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신의 부름이라는 메시지였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일을 할 수 있는
온라인 번역 직업을 얻게 되었고
방송국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멈추고 싶은 삶에서
한줄기의 빛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보인 것이다.
"그건 알라의 부름이었어."
알라가 보내온 다리야의 새로운 삶을 통해
그는 본인에게 찾아온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이겨냈다.
알라의 부름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말한다.
"너에게 시련이 주어진다면,
그건 신이 네게 주는 선물이야."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이미 많은 이들이 경험한 걸 알고 있지만,
나도 내 기도의 답변을 받은 걸 느꼈어.
나에게는
나의 믿음이 있고,
나의 아이들이 있어.
나의 믿음은 내가 처했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 줬어.
나는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을 잃었지.
그 이후에
나에게 삶의 이유가 된 것은 믿음이었어.
나는 알라의 부름 덕분에 새로운 삶을 헤쳐나갈 수 있었어.
내 삶의 이유는 알라와 내 아이들이야.
그는 덧붙인다.
"우리는 왜 이곳에 있는지 몰라.
그러나, 우린 운명적으로 쓰인 삶의 목적이 있는 거야."
무신론자인 나조차도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신이 실재한다고 믿게 된다.
모든 걸 갖고 있다가
한순간 다 잃을 때의 감정.
다리야는 그 순간을 돌이키며 말한다.
"나 자신을 죽이고 싶은 감정이야."
나를 해치고 싶은 수많은 밤을 보내오며
시간은 흐르고
다리야와 나는 지금 여기 있다.
다리야는 아이를 가졌고,
아이를 위해 살아왔다.
"내가 21살이었을 때, 나는 많은 것들에 신경 쓰지 않았어.
현재에만 즐기면서 놀았지.
가끔은 생각해.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더 나은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는 주마등처럼 스치는 영겁의 시간을 돌아보듯 창문을 바라본다.
"하지만, 생각해.
내가 그때 마땅히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거야.
지금처럼 강해지지도 못했을 거지.
나는 신 앞에 서있지 못했을 거야.
아마, 내게 어려운 시련을 주게 하려고
운명적으로 적여있었나 봐.
신에 더 가까이 가도록."
나는 그에게 말한다.
"너는 정말 강한 사람이야."
"강해지도록 강요받은 거지
그는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신이 만나지 않은 너를 비난하는 건 아니야.
너도 훗날 이 경험을 가질 수도 있고, 안 가질 수도 있겠지.
네가 살아가면서 점점 더 많은 경험을 하겠지.
하지만,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어.
나는 나의 종교를 절대 바꾸지 않을 거고,
나는 죽을 때 무슬림인 채로 죽을 거야.
나는 이걸 선물이라고 생각해.
신으로부터의 선물.
그는 존재해.
그는 우리를 들어.
그는 우리를 듣고 있다고 믿어.
그는 우리를 사랑해.
그는 우리가 필요하지 않아.
그는 가장 강력한 존재야.
그는 우리보다도 우리를 바꿀 수 있어.
하지만, 우리는 그가 필요해.
그는 우리의 창조자야.
모든 것들은 그의 아래에 있어."
각각의 사람에게는 그가 얻을 것과 잃을 것에 대해 시험이 주어지며,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들을 시험한다.
[코란] 아르-라드 (13:11)
"데이지,
너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고
그게 너의 삶을 바꿀 거라고 느낀다면,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눠.
어려운 이들을 돕는 건 결국 너 자신을 돕는 일이야."
그와 헤어진 뒤,
케냐행 비행기 대기실에 도착한다.
그가 내게 해준 조언과 이야기는
아라비안 향수의 침향처럼
그윽하게 잔향을 남기며 울려 퍼진다.
무엇으로부터의 부름이든,
그가 견뎌온 시련 앞에서 마주한 용기를 음미한다.
용기의 향을 조용히 음미하며
새로운 대륙, 아프리카로 향한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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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