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나이로비에서 만난 리건, 티모니, 조르단
케냐 나이로비의 공기를 뚫고
호스트 베아가 보내준 주소에 찾아간다.
알려준 층에 올라가고 나니
철창으로 막힌 입구에 도착한다.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아 베아에게 어떻게 연락할지 고민하는데
엘리베이터가 문이 열린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히기 전
그 찰나의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아이는 내게 묻는다.
"혹시 L2에 가려 하는데, 초인종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L2요?
저희 집이에요!"
소년은 엘리베이터에서 바로 튀어나와
나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신이 난 채로 커다란 입으로 웃는 소년의 이름은 티머니.
그가 데려다준 집에 있던 다른 아이들 리건과 조르단과도 인사를 나눈다.
베아는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아이들을 데려왔다.
가난한 마을에서 제대로 먹고살지 못하는 아이들이기에
방학 동안이라도 함께 지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숙제를 위해 바닥에 누워 무언가 끄적이기도 하고
공 하나로 옥상에 올라가 축구를 하기도 한다.
주말이면 베아와 함께 교회에 가고
그저 멍하니 티브이를 보며 낄낄 웃기도 한다.
여타 케냐 사람들과 같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아이들이지만,
낯선 이방인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밝게 미소 지으며 나를 반긴다.
"얘들아! 너희는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쇼콜라!"
"초콜릿을 좋아하는구나!
나도 초콜릿 좋아해!"
"쇼콜라···. 쇼콜라?"
스와힐리어로 무언가 말하는 맥락에서
'쇼콜라'만 알아들은 나는 초콜릿으로 이해하지만,
알고 보니 스와힐리어로 음식(Chakula)을 의미한 것이다.
초콜릿을 먹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히 쇼콜라를 초콜릿이라 이해한 나는
나중에야 아이들의 대답을 이해한다.
"나는 차파티를 좋아해!"
"나는 계란이 좋아."
"나는 우길리가 좋아."
평평한 빵인 차파티(Chapati)와 옥수숫가루를 끓인 우갈리(Ugali)는
동아프리카에서 주로 소비되는 기본 음식이다.
한국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쌀과 같은 음식이다.
아이들의 답변을 곱씹는다.
한국 아이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을 때
'나는 쌀 좋아해!'라고 말하는 격이다.
스파게티, 사탕, 떡볶이와 같이
으레 무언가 가공된 요리를 말할 거라 생각한 나는
기본 재료나 기본 구성 음식을 말한 아이들의 답에 신기하다.
동시에 어제 베아와의 대화가 스친다.
"베아, 오늘 저녁엔 뭘 먹을 거야?"
"우린 저녁에 뭘 먹는다고 고민하지 않아.
매일 우갈리와 짜파티만 먹는 걸."
매일 우갈리를 다 먹고 나서 감사를 표현하고 접시를 갖다 놓는 아이들.
이거 먹고 싶다, 저거 먹고 싶다
떼쓰지 않고 오늘의 식량에 감사해하는 아이들.
그들은 자기가 먹는 음식을 더 이상 바라지 않고
지금 주어진 음식에 만족해한다.
의젓하게 나를 챙기는 리건과 언제나
쑥스러워하면서도 밝게 미소 짓는 티모니와 조르단.
어려서부터 자신의 것에 만족하며
감사해할 줄 아는 그들의 모습을 배운다.
저녁을 먹고 다 함께 티브이를 보면서 저녁을 보낸다.
피곤을 잠재우려 저녁 인사를 나누는 나를 따라
아이들은 내 방을 소개한다.
밤사이에 모기를 피하기 위해
직접 방구석구석을 다니며 모기를 잡고
모기장을 치고
이부자리를 정리해 주는 아이들.
이층 침대로 되어있는 공간에
내게 침대 하나를 빌려주고
세명은 모아서 한 침대에 잠든다.
그들의 배려에 감동하며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기 전,
아이들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리건: 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고,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싶어요.
병으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조르단: 나는 경찰이 되고 싶어요.
모두가 규칙을 따르게 하고, 세금을 내고, 범죄를 막으며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티모니: 그도 의사가 되어, 아픈,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공통된 이유를 가진 아이들.
각자의 꿈으로 서로에게 온기를 전하는 의젓한 어른이 된 아이들을 상상한다.
티브이 너머로만 있던 동아프리카 세계에서
아이들이 가진 미소와
리건이 보인 의젓함과 성숙함,
티모니와 조르단이 지은 커다란 웃음을 간직한다.
헤어지는 아쉬움에 괜히 리건에게 만남을 기약한다.
"리건, 나중에 한국에 오면 맛있는 거 다 사주고
한국 이곳저곳도 소개해 줄게!
커서도 연락하자."
"응 좋아.
나는 폰이 없으니까,
베아를 통해서 내 안부를 물어줘."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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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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