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만난 하디야
사람은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결핍과 좌절을 경험해야 한다.
결핍되고 상실한 것을 스스로 찾아 메우려는 노력이
바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작가 김해남
탄자니아 모시를 떠난 뒤,
푸르른 인도양을 가로질러 잔지바르에 도착한다.
잔지바르에 도착하니 이전 탄자니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차림의 이슬람 복장의 사람들
기도할 때 착용하는 무슬림 전통 모자를 쓴 사람들
한자와 일본어가 붙어있는 버스들,
중국어로 된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매번 서아시아계 민족의 이슬람 문화만 봐온 나는
아프리카계 민족이 이슬람 문화를 갖는 게 마냥 신기하다.
이슬람교가 대부분이지만,
잔지바르를 찾는 기독교 친구들로 인해
무슬림 일부도 크리스마스를 함께 축하한다는 이곳.
잔지바르는 이슬람의 모습을 가지면서도
세계 곳곳과 아프리카 흔적을 곳곳에 보여준다.
잔지바르 호스트는 선착장으로 툭툭을 보낸다.
툭툭이 다다른 곳에 내리니
호스트 하디야는 귀여운 아들을 껴안은 채 나를 반긴다.
"안녕!"
사범대를 졸업한 하디야는
언어에 관심이 많아 중국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중국에서 2년 동안 유학을 한 뒤에 돌아와서 결혼했어."
그는 중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투어 가이드를 진행했지만,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중국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중국어 자격증으로 이곳에서 무엇을 해?"
"잔지바르에서는 중국어 자격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지금 중국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아?"
"사람들은 중국어를 막 배우려고 하지만, 가르칠 시간은 없는걸."
대학에서 미디어 전공을 가르치는 하디야는
세 아들의 엄마이자, 아내이고
투어가이드로도 지내고 있다.
"내일은 수업에서 학생들을 가리키고,
이후엔 어머니를 뵈고,
이후엔 아이들을 돌보고,
그리고 투어를 하러 갈 거야."
"어떻게 그 모든 걸 다 하는 거야?"
그가 가진 역할에 놀라며 묻자
그는 웃으며 답한다.
"확실한 건 내가 즐기고 있다는 거야."
이내 그는 덧붙인다.
“삶이 어려우니까,
자식은 4명까지만 낳고 싶어.
미래의 나를 위해 투자하는 거지”
잔지바르는 1964년 전까지 독립된 왕국이었다.
탄자니아와도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갖고 있던 중,
1964년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다.
파디야는 잔지바르 섬을 소개하며 말한다.
"탄자니아 본토(mainland)는
잔지바르보다 가능성이 많아."
"하디야는 본토에 가고 싶지 않았어?
왜 잔지바르 섬에 남은 거야?"
"이곳에 나의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삶이 있으니까.
나는 잔지바르에서 살고 싶어."
하디야는 관광회사에서 일할 시절,
회사 프랑스어 반에서 남편을 만났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뭐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찾았으니까."
"너를 사랑해 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많지.
그러나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사람은 달라."
"그걸 어떻게 구별해?"
"느낄 수 있어.
진심은 마음으로 통하잖아."
나를 위해 점심을 만드는 하디야를 보며
그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가 자식을 얼마나 아끼는지 느낀다.
아침에 눈을 떠 천장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포근함이다.
하디야가 아들에게 쏟는 사랑이
넘치다 못해 나에게도 넘어온다.
엄마의 마음이 따뜻해서
나조차도 포근하고 편안해진다.
"데이지, 우린 오늘 놀이공원에 갈 건데 같이 갈래?"
"물론이지!"
"데이지, 너도 저 놀이 기구 탈래?"
"그래도 돼? 재밌을 거 같아!"
"우와!!!"
하디야를 도와 자식들을 돌보지 않고
하디야의 또 다른 딸인 양
어린아이처럼 놀이동산을 돌아다닌다.
묵묵히 아들의 손을 잡고,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는 하디야 뒤로
여전히 놀이 기구를 타고 싶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내 모습.
영락없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하디야의 책임감 있는 엄마 모습을 바라본다.
'난 아직 엄마란 직업을 갖기엔
하고 싶은 일들이 많구나.'
교통체증으로 인해
어렵사리 툭툭을 구해 오는 길,
둘째 이산이 툭툭에 용변을 누는 바람에
오는 길은 초토화된다.
용변을 누고 쓰러진 채 내게 안긴 이산을 바라본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챙긴 하디야는 피곤함이 분명한데도
능숙하게 용변을 치우고 이동한다.
기나긴 하루의 끝에 집에 도착한다.
씻고 나서 저녁을 먹고
잠들기 위해 침대에 오른다.
곧바로 한 문장이 떠오른다.
'전쟁 같은 하루가 끝났구나.'
동시에 하디야가 떠오른다.
전쟁터와 같던 밖에서 돌아오자마자
울고 있는 아들을 달래고
자식들을 잠재운 뒤
나에게 밥을 가져다주는 하디야.
본인도 피곤하고
자식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도
나의 저녁까지 챙기는 상황이 놀라울 뿐이다.
그가 조용히 밥을 담은 쟁반을 건네는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강해 보였다.
엄마랑 직업은 굉장히 대단한 거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양육은 우리는 어떻게 자랐는지 생각해 보고
현재 아이들이 겪는 일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거죠.
그래서 부모가 된다는 건
인생을 다시 사는 기회가 되는 거죠.
영화 매리 포핀스 리턴즈" (Mary Poppins Returns)
하디야 가족을 보며 문득 생각한다.
하디야의 가족은 정말 아름답다.
나도 나만의 가족을 갖고 싶다.
나도 아이를 갖고 싶다.
나도 하디야와 같은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
하디야는 누구보다도 강한 엄마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따뜻한 엄마이다.
아침을 준비하는 하디야를 따라 상점에 간다.
여느 때처럼 차파티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어느덧 마지막 아침이구나'
"데이지, 오늘 계획은 뭐야?"
잔지바르를 떠나기 전,
관광객들이 찾는 스톤타운을 둘러보려 했지만,
하디야 가족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너희랑 같이 잔지바르 바다를 보고 싶어."
마지막 차 파티를 먹으면서
둘째 아들은 찻잔을 달라며 엉엉 운다.
울음은 커지고
첫째 아들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공을 튀기며 논다.
막내아들을 돌보다 황급히 나온 하디야
그는 아들 셋을 달래며 전쟁 같은 아침을 보낸다.
하디야를 보면서 생각한다.
아이를 갖는 것은,
하나의 가족이 되는 것은,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일이구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잔지바르 바다가 있어."
집 근처에 있는 척화니비치(Chukwani Beach)로 향하는 길은
하디야의 첫째 아들, 이 판과 나란히 걷는다.
아이들과 말은 통하지 않지만, 미소로 대화하며
10분 정도 걸었을까,
저 멀리 바닷소리가 들린다.
인적 하나 없는 조용한 척화니바다는
잔잔한 모습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이판을 껴안아 바다에 들어간다.
무어라 말하며 내게 조개와 자갈을 쥐여주는 이판.
둘째 아들 이산도 웃통을 벗은 채 바다에 뛰어든다.
파디야는 멀리서 바라보면서 미소 짓는다.
저 멀리 물병으로 만든 배 위로
여자아이와 아버지가 보인다.
잔잔한 척화니비치를 바라보니,
어제 갔었던 능귀 비치가 떠오른다.
잔지바르의 모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능귀 비치는
하얀 모래사장 위로 에메랄드빛의 바다를 품고 있었다.
영화 촬영장같이 화려한 능귀 비치와 달리
척화니비치는 조용하고 한적하다.
그저 멍하니 물살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신나는 노랫소리와 파티가 즐비한 능귀 비치와 달리
척화니비치는 조용히 마을 주민에게 위안이 된다.
무엇보다 하디야와 아이들과 함께 오니
순간은 더욱 특별하다.
조용한 물살 소리와 함께
하디야 와 아이들을 바라본다.
'어쩌면, 엄마가 되어 가족을 이루게 된다면
능귀 비치가 아닌 척 아니 비치 같은 바다가 되려나.'
아이를 키우는 경험만큼 특별한 건 없다.
There is no experience like having children.
-[Tuesday With Morrie]
그는 아이를 갖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말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덧붙인다.
"자식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나의 소중한 동반자야."
내 삶의 이유는 나의 가족이야.
나는 내 삶의 나머지는 가족들과 보내고 싶어.
그들은 나의 전부이기 때문이야.
"왜 가야 해요?"
잔지바르를 떠나려는 나에게
첫째 아들 이판이 묻는다.
하루는 저녁 늦게 하디야 집에 도착하니
이판은 엄마에게 물었다.
"데이지 고모랑 같이 자도 돼요?"
아침에 일어나서도
계속해서 내 옆에 있는 이판.
내게 마음을 연 그의 모습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모습에 미소 짓는다.
동시에 하디야 가족과 함께한
잔지바르의 순간을 떠올린다.
여러 곳곳에 공사를 하고 있으며 삐걱거리며 출발하는 버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무슬림 차림의 아프리카 사람들,
눈이 마주치면 칭칭챙챙 니하오~라며 말을 거는 사람들,
수줍게 인사하는 어린아이들,
흙먼지 날리는 버스 중앙 정류장,
그 속에서 바닥에 상을 치고 물건들을 파는 사람들,
하디야 가족과 함께 갔던 조그만 놀이동산,
그곳에서의 500실링짜리 아이스크림.
피곤에 쌓여 그저 멍하니 바닥을 바라봤던 순간,
여러 가지의 순간이 스쳤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섬이지만,
발리에서의 느낌과는 사뭇 달리,
아프리카의 섬이라는 매력이 짓게 베여있던 잔지바르.
잠깐 동안 멍 때리면서
사람들이 머무르면 생기는 커뮤니티와 마을,
가족들,
그 속에서의 따뜻함.
탄자니아에서 내가 느낀 것들이다.
잔지바르에서의 휴양을 꿈꿨던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잔지바르는 하디야 가족과의
시간으로 풍성히 채워졌다.
사람들이 아름답다는 능귀해변, 파제 바다를 제대로 즐기지 못해도,
이판이 가장 좋아한다는 척 아니 바다에서 함께 수영했고,
서로에게 조개와 돌멩이를 선물했으며,
잔잔한 바다 냄새를 함께 음미했다.
하디야는 촉수를 세우며 아이들을 챙기는
누구보다 강하고,
행복한 엄마였다.
영원한 친구인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모습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내게 잔지바르는 알리에게서 보았던 파티 현장의 섬이 아닌,
휴양지의 바다가 아닌,
하디야 가족의 따뜻함으로 가득 찬다.
잔지바르 역시
사람들이 그저 살아가는 하나의 삶이구나.
환상으로만 가득했던
아프리카 휴양지 섬의 인식이 바뀐다.
그리고,
그곳에서
엄마가 된다는 게 얼마나 강한지를 배운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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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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