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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Feb 15. 2023

절제의 극치를 보여준 한국전쟁 만화

홍지흔 작가의 『사이의 도시』, 『건너온 사람들』

※ 이 글은 작가님이 직접 보내주신 책을 얼른 읽고 쓴 것입니다.


초등학생들과 제주4.3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한 것은 슬픈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너무 상세하고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게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부분을 최소화하면 감성적인 이야기가 되고 본의 아니게 축소와 왜곡이 될 것 같아서 몇 년 동안 뚜렷한 결론도 없이 고민만 했다. 제주의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매년 4월만 되면 이 부분 때문에 고민에 잠기는데, 아! 좀 있으면 4월이다. 나는 고심 끝에 논어의 도청도설(道聽塗說,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한다는 뜻)을 원칙으로 삼았다. 제주4.3을 해석하고 꺼낼 만큼 숙성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에 대해서 같은 고민과 어쩌면 도청도설의 원칙에 유의하지 않았나 착각이 들 정도의 만화 작가를 발견했다.



홍지흔 작가의 한국전쟁 만화 『건너온 사람들』은 작가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렸기 때문에 참신하고 좋았다. 대개 어른들이 옛날 이야기처럼 들려주는 한국전쟁 이야기를 어린이가 해주는 책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후속작인 『사이의 도시』가 나왔다. 『건너온 사람들』이 거제도 피난 이전까지의 이야기였다면, 『사이의 도시』는 거제도 생활에서부터 시작해서 부산에 정착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나는 부제로 써도 될 것 같은 이 말이 참 맘에 들었다.


아무도 죽지 않고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와도 헤어지지 않는 전쟁 이야기
『사이의 도시』


한국전쟁을 어릴 적 시선 그대로 만화로 옮겨 온 『건너온 사람들』과 『사이의 도시』. 홍지흔 작가의 어머니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만화.


하지만 아무도 죽지 않고 다치지 않는 이야기라고 해서 미화하거나 축소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극적인 장면에 가려졌던 서늘한 현실을 꿰뚫는다고나 할까? 작가 어머니의 피난 생활 기억에서 되살린 대화 중 유난히 인상적인 대목을 옮겨적어 봤다.


인민군에게 끌려갈까 봐 남쪽으로 피해 왔는데 이번엔 방위군이라니...
『사이의 도시』


아들을 징집당해 어두워진 부모의 대화를 보니 '곰도 무섭고 범도 무서운 세상'이라는 제주4.3 당시의 유행어가 떠올랐다. 낮에는 군인과 경찰들에게 시달리고, 밤에는 무장대에게 시달린 당시 제주인들의 심정을 담은 말이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면'이란 말을 하지 않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네요.『사이의 도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당시 할 법한 말들이었지만 묘하게 정곡을 찌르는 면이 있다. 경복이는 이북에 있을 때 고등어를 질리게 먹어서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피난 오고 나서 고등어를 끝까지 안 먹고 남긴 한 할아버지를 보면서 분개한다. 그렇다고 식성이 완전 바뀐 것은 아니지만 고등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뀐 것은 사실이다.


훈련병들은 밥 안 줘요?
죽지 않을 만큼만 줘. 아냐, 조만간 진짜로 굶어 죽을지도 모르지.
『사이의 도시』


피란민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폐교가 국민방위군의 훈련소로 사용하게 되자 "전시 상황이니 군인 훈련이 더 먼저지, 어쩌겠습니까." 하고 급히 묵을 곳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의 번고롭고 고단한 피난생활이 보이는가 하면, 배고픈 훈련병이 엄마가 준 떡을 먹다가 군인에게 발각돼 엄마 보는 앞에서 개처럼 매맞고 질질 끌려가는 모습은 만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그 장면이 오래도록 남았다.


문학은 형상화의 예술이다. 작가가 주제넘게 상황을 설명하려 해서도 안 되고 오로지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말하게 하는 것이라면, 홍지흔 작가의 두 만화 『건너온 사람들』과 『사이의 도시』는 작위적인 장면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만화를 통해서 한국전쟁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어쩌면 '너무 작은 이야기'라는 아쉬움이 느껴질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축한다는 것과 절제한다는 것은 감정을 지뢰처럼 숨기고 있기 때문에, 담담한 문장과 컷들을 보면서 갑자기 감정이 터져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편안한 장면도 긴장하면서 보게 되는 게 이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홍지흔 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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