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자녀의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한숨을 나왔다. 창조적이고 탁월한 아이가 초등학교 학년을 건너면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단 한 명만이라도 책을 읽는 친구가 있었다면, 단 한 명만 말이 통하는 친구가 있었다면 좋겠다는 아이의 절박한 소망은 쉽게 배신당했다. 초등학교도 이미 정글이었고, 약한 아이라고 판단되면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탁월한 아이가 사랑과 동경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증오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쉽다. 심리학자 A.매슬로는 그 아이가 학교에서 처한 상황이 생각보다 더 가혹하다고 말한다.
한 가지 의심할 여지조차 없이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창조적인 아이들은 또래뿐 아니라 선생님에게서까지 미움받고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이다.
A.매슬로, 『인간 욕구를 경영하라』
위계적인 공기에서는 어린이는 언제나 타자나 약자, 무능력자로 읽힐 수밖에 없다. 탁월하고 창조적인 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림책 『까마귀 소년』처럼 이소베 선생님이 소년의 천재성을 바라보지 않는 한 '땅꼬마'일 뿐이다. 과연 그런 시선을 누가 제공해 줄 것인가? 만약 한국 사회에서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일 뿐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틴어: deus ex machina)는 "기계 장치로 (연극 무대에) 내려온 신"(god from the machine)이라는 뜻으로 뜬금없는 사건이나 인물이 문학 작품의 갈등이나 문제를 비현실적인 방법을 해결해 버리는 나쁜 연극을 비판하는 용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저작 『시학』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비현실적인 존재일 뿐이다. 결국 스스로 가시밭길을 지나갈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방법은 수더분하고 어리바리한 아바타를 하나 만들어서 연기를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의 단점은 어린 나이에는 단일 모드 압박 때문에 오히려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모드1, 모드2로 손쉽게 옮아가며 연기하는 게 자유롭지만(그만큼 위선에 익숙하니까) 어린이들은 전환이 쉽지 않다.
두 번째 방법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방어막을 만드는 것이다. 로버트 액설로드가 <협력의 진화>라는 책에서 제시한 방법이다. 이 방법 역시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무척 어렵다.
그 학생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낀 하루였다. 다만 문제를 직시하고 명확하게 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