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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Mar 28. 2023

카프카는 왜 불행을 '소녀'로 의인화했을까?


카프카의 유명한 중편소설 《변신》을 읽고 놀랐던 점은 그레고르 잠자가 그렇게 흉측한 벌레가 되었는데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말했다. "지금 나는 방에서 유령을 보았어요."
"마치 수프 속에서 머리카락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그렇게 불쾌하게 말하시는군요."
「불행」



<나>는 유령을 본 것을 "수프 속에서 머리카락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하지만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유령이 나타나더라도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의 원인과 불행의 본성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할 여유도 가지고 있다. 불행 또는 유령의 잦은 방문이 《변신》과 연결되는 지점이 독특한데 《변신》의 경우는 카프카의 몸으로 방문했다. 집이 아니라!


불행의 방문이 잦았던 것처럼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익숙하다. 마치 오래되었만 언제나 적응이 안 되는 관계처럼. 흥미로운 건 불행이 아이의 모습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왜 아이의 모습이었을까? 그것도 소녀의 모습으로.


"나는 아이입니다. 왜 그렇게 나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마음을 쓰십니까?"
"그리 마음 상하진 마세요. 물론 당신은 아이입니다민 그렇게 어리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어른입니다. 만일 당신이 소녀였다면, 이렇게 아무렇게나 나와 한 방에 틀어박혀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불행」


소녀를 의인화한 「불행」은 '죽음'을 의인화한 그림책 『오래 슬퍼하지 마』를 생각나게 한


집과 몸은 연관이 깊다. 미디어 전문가 마셜 매클루언이 "집은 몸의 연장"이라고 말한 것처럼 나만의 사적 공간이자 안정적인 재생산의 장소인 집에 불청객이 방문한 것은 몸이 흉측한 괴물로 변신한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집에 방문한 불행이라는 손님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 방문했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불행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다. 불행이 '세게' 상처를 내는 것보다는 사소한 스크래치 정도로 넘어가 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불행의 경우 운명의 서슬퍼런 명령이기에 불행도 어쩔 수 없겠지만, 불행 스스로가 결정할 있는 내용물이라면 협의나 흥정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둘은 오랫동안 불행의 견적에 대해서 협의를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의 본성은 나의 본성이며, 내가 원래 당신에게 친절하게 대할진대 당신도 그렇게 할 도리밖에는 없을 텐데요."(<나>)
"그게 친절한 것입니까?"(불행)
"나는 전에 있었던 일에 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나>)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불행)
「불행」

암 투병중인 중년의 사나이가 도서관의 논어 읽기 모임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암세포가 있는 부분을 손으로 다독이면서 인사를 한다고 말했다. 나에게 찾아온 암이라는 불행과 매일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불행은 안 만나면 좋겠지만 누구도 불행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다. 때로는 흥정을 해야 할 일도 있다. 불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경우 말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불행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 원인이 나와 연관돼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와 완전히 상관 없는 불행도 있을 테지만 내가 일으킨 날갯짓이 불행을 부른 경우가 더 많다.


카프카는 왜 어린 소녀를 불행의 전령으로 택했을까? 불행이 사뿐히 걸어 오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해서였을까? 불행이란 게 앞문을 닫으면 뒷문으로 들어오는 날렵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오래 슬퍼하지 마』의 죽음보다는 어리고 가벼워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 같다. 불행이 떠나고 <나>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기분으로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조용히 산책을 하려고 했으나 외출은 하지 않고. 불행이 전혀 방문하지 않는다면, 불행이 나를 완전히 떠나버린다면. 카프카는 불행의 의미에 대해서 나에게 다시 질문하고 있다.











변신 - 단편전집 개정판 -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저자프란츠 카프카출판솔출판사발매20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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