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독서로 '슬로 리딩'을 지켜라!
일단 아무리 이상한 주장이라 생각해도 가만히 참고 상대의 발언을 슬로 리딩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발언 기회가 돌아오면 반론하기에 앞서 우선 ㅡ 텍스트를 통해 쌓은 실력을 발휘하여(?) ㅡ '그러니까, 이런 뜻이죠?'라고 상대방의 주장을 정중하게 요약하고, 여유가 있다면 부족한 부분까지 보충해준다. 그때 '지금 하신 말씀은 매우 중요한 지적입니다'하고 한마디 덧붙여주면 분위기는 더 부드러워질 것이다. 요컨대 상대에게 자신이 그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전하는 것이다. - 히라노 게이치로,《책을 읽는 방법》
위 상황은 일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책을 읽는 방법을 개선하면서 세상을 읽고 사람을 읽는 방법으로 바로 응용할 수 있었습니다. 책, 사람, 세상. 이런 것들은 모두 연결돼 있으니까 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독서활동만은 아닌 것이죠. 우리 손에 쥐어진 책이라는 것 자체가 여러 사람의 단단한 활동과 긴밀한 협동, 그리고 사회가 가진 힘의 결과물이니까요. 물론 책 안에만 함몰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책에서 세상으로 아주 빠르게 옮겨갈 수는 없습니다. 시선이 옮겨지듯, 산책하듯 천천히 옮기는 거죠. 책을 빨리 읽어버리면 이런 모든 과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산업혁명 때 철도가 생기고 유럽인들이 가장 안타까워했던 것은 바로 '속도'였습니다. 철로가 놓이는 바람에 마을에서 옆 마을 사이의 '틈'이 모두 사라져 버린 거죠.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대체된 거니까요. 우리가 속도의 유혹에 넘어가는 건 공짜가 아니에요. 비싼 값을 치르고 있는 거죠. 저는 값을 거부합니다. 천천히 읽음으로써 온전히 '틈'을 지키고 싶습니다.
《일식》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일본의 젊은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슬로 리딩에 관한 좋은 책을 썼습니다. 번역 제목이 너무나 평범한 《책을 읽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독자들이 책을 읽는 방법을 잘 모르니까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책을 읽고 세상도 읽어달라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난 책이죠. 저도 이 책을 통해서 '메모 독서'의 아이디어를 살찌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슬로 리딩'과 '페스트 리딩'의 대비는 매우 설득력이 강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당신도 '슬로 리딩'의 신봉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똑똑할까, 오늘날 사람들이 똑똑할까?
누구나 한 번쯤을 가져봄직한 질문이죠. 지금은 사람들이 우주에도 가고,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도 3D프린터로 만들 수 있기에 얼핏 보면 오늘날 사람들이 똑똑할 것 같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단정하기 어렵죠.
작고도 섬세한 온갖 세공품들은 핵 물리학의 어떤 장비 못지않은 발명의 재능이 필요하고 보다 깊은 의미에서 인간의 등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바늘, 송곳, 단지, 화로, 삽, 못과 나사, 풀무, 끈, 매듭, 베틀, 마구, 단추, 신발 등등 단숨에 그 실례를 백 가지라도 들 수 있다. - 야콥 브로노프스키, 《인간등정의 발자취》
히라노 게이치로에 따르면 "옛날 사람들은 모두 슬로 리더"였습니다. 책이 지금처럼 일반화되지 않았으니까요. 중국의 죽간만 하더라도 책 전체를 돌돌 말아서 수레에 들고 다닐 정도였고, 그 값어치는 집 한 채 값에 버금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공자처럼 위편삼절할 정도로 읽을 수밖에요. 책을 천천히 읽음으로써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깊은 사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색은 빠른 속도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것이죠.
현대의 사람들은 이렇게 천천히 읽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보의 양이 엄청나고 많은 매체가 유혹하니까요. 그러니까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책을 천천히 읽도록 강제하는 장치
메모를 하는 동안은 책을 천천히 읽을 수도 있고 사색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시간도 벌 수 있죠. '느린 시간'이 주는 효과를 우리는 잊어버렸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느리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저는 정보 파악을 위한 독서를 할 때는 빠르게 읽습니다. 메모도 필요 없죠. 하지만 깊이 읽고 사색해야 할 책은 메모를 이용합니다. 사색해야 하는 책을 그냥 읽으면 자연스럽게 빨리 읽게 되고, 읽었던 내용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천천히 읽도록 강제하는 안전 장치가 필요하기에 '메모 독서'를 저의 방패로 삼습니다.
독서를 운동에 비유한다면 '유산소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산소 운동'은 높은 젖산 함량을 견디는 능력과 피로감을 참으며 운동경기에서 승리하도록 해주니 '선수'에게 유리한 운동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운동선수가 아니므로 '유산소 운동'이 이롭죠. 유산소 운동은 숨이 차지 않고 큰 힘을 들이지 않기에 몸 안에 최대한 많은 양의 산소를 공급시킴으로써 심장과 폐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강한 혈관조직을 선사합니다. 오랫동안 규칙적으로 한다면 운동 부족과 관련이 높은 고혈압, 동맥경화, 고지혈증, 허혈성 심장질환, 당뇨병 등의 성인병을 적절히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만 해소와 노화 현상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몸은 유산소 운동으로 건강하게 만들고, 마음은 '유산소 독서'로 건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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