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건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이 둘 중에서 공간은, 근본적인 변화를 꾀할 수는 없다고 해도 주거공간이나 직장 등을 옮기는 것과 같이 어느 정도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공간의 변화를 주게 되면 일정 부분에서 우리 삶의 양태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면 공간에 있어 변화를 주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간의 영역에 들어서면 그 어떤 노력이나 시도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시간은 그 어느 누구도 부분적인 변화조차 줄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해도, 혹은 연로한 누군가가 시간이 더디게 흘러 조금 더 살고 싶다고 해도, 스물네 시간이라는 하루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길이로 지나가고 마는 것이다. 설령 지금 겪고 있는 이 시간이 힘들다고 해서 그 시간을 빨리 가게 할 수도 없고, 더러 성공이나 행복에 취해 있다고 해서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려고 시간을 더 천천히 가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그렇게 지나가는 일상 속의 크고 작은 일들은 예외 없이 되풀이된다. 언덕 아래에서 끊임없이 무거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가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여전히 같은 행동 패턴을 반복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린 시간의 굴레에 늘 갇혀 사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이 굴레가 싫다고 해서 우리가 시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니까.
이쯤에서 하나의 유명한 표현을 빗대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볼까 한다. 그건 바로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시간 속으로 고스란히 끌고 들어와 보면 정반대의 논리가 성립한다. 즉 사람 나고 시간이 난 게 아니라 시간 나고 사람이 났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우리가 있건 없건 간에 시간은 늘 똑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그 말은 곧 우리 각자가 죽어 사라진다고 해도 시간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우리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 안의 시간만 정지할 뿐이다. 더는 시간이 우리를 위해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 테다. 그렇게 우리에게서 멈춘 그 시간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시간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는 셈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시간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눠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막 통과하고 있는 이 '현재'의 길이가 가장 짧다. 나머지 둘의 경우엔 명백히 사람마다 달라지게 마련이다. 가령 우리 아들 같으면 '미래'가 '과거'보다도 확연히 길 테지만, 내게는 앞으로 살아갈 '미래'보다 지금껏 살아온 '과거'가 훨씬 더 길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더라도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와도 같다. 그런데 여기에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걸론부터 말하자면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마치 말장난과도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미래'도 우리의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 버린 우리의 '과거'는 얼마든지 다가올 '미래'를 바꿀 수가 있다. 그래서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에 젖어 있지만 말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철저히 대비하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을 곧잘 하곤 한다. 그러나 그 많던 순간순간의 '현재'들은 기어이 '과거'가 되어 버리고 만다. 게다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들도 모두 순식간에 '현재'가 되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내 '과거'속에 묻혀 버린다.
제임스 카메론이 메가폰을 쥐고 아놀드 슈왈 제네거가 열연을 펼친 유명한 영화 '터미네이터'에 '미래는 과거로부터 온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 말을 곱씹어 보면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가 굳건히 믿고 있는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그건 이미 사라져 버린, 단지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과거'에서 축적된 생각들이 미래의 상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결국 '과거'밖에 없는 셈이 된다. 애초에 우리에게 '미래'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는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다.
어쩌면 그 '미래'는 이렇게 한 줄 한 줄 타이핑하는 순간에도 이미 '과거'라는 적재함 속에 차곡차곡 쌓이는지도 모른다. '미래'를 운운하는 그 순간에 이미 '현재'를 거쳐 '과거'가 되어 버린다는 얘기다. 결국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생각하며, '과거'라는 망령에 사로잡힌 채 시간을 보내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