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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려는 생각

38일 차

by 다작이

사람이라면 늘 다른 일만 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같은 일의 무한 반복, 어쩌면 그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른다. 1년이라는 시간을 한 번 예로 들어볼까? 1년이 지나는 동안 낮과 밤이 정확히 365(혹은 366)번 반복된다. 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챙겨 먹는다면 1095(1098) 번의 식사를 하게 된다. 늘 맛있는 것 혹은 고가의 질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늘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일들로 채워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 한다. 익숙한 것이 삶을 편하게 만드는 반면에 그 익숙함은 사람을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런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들이 우리 삶에 획기적인 발견이나 발명을 이끌어낸 점을 생각한다면, 익숙함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마냥 탓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사실 난 살면서 맞닥뜨리는 이런 매너리즘을 헤쳐나갈 만한 그릇이 못 된다. 생각 없이 그저 안일함 속에 빠져 들겠다는 얘기는 아니나, 기꺼이 모든 걸 내다 버릴 만큼의 배짱이나 용기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는 삶을 살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나만의 비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이 매너리즘이라는 낱말의 뜻을 되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습관적 반복, 상투적인 모방, 진부한 기교 등을 일컫는 말로 새로운 창조력이 상실되었다는 부정적 의미가 들어 있다.


이 정의에 의존하자면 분명 우리의 삶은 충분히 매너리즘적이다.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일상, 나의 삶을 살면서도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사람에 대한 상투적인 모방, 그리고 어떻게든 다르게 살아보려고 부리는 갖은 기교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이 눈에 띈다. 바로, 새로운 창조력의 상실이라는 부분이다. 익숙하고 진부한 것에서 창조력이 발휘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런 익숙하고 진부하다는 것에 대해 비틀어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익숙하고 진부한 것을 잘 비틀어 보면 뜻하지 않는 개념과 조우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낯설게 하기'이다.


일상적이고 익숙한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하여 전혀 새롭게 느끼도록 하는 예술 기법


'낯설게 하기'는 친숙하거나 인습화된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고 낯설게 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방법으로 러시아 형식주의의 문학적 수법이라고 한다. 사실 이 기법은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법이다. 출생의 비밀, 배다른 형제, 재벌과 신데렐라 등의 뻔하디 뻔한 스토리에도 우리가 삼류 드라마에 빠져 들게 되는 것도 결국은 이 '낯설게 하기'의 효과가 아닌가 싶다. 자, 그렇다면 이젠 문학으로 가봐야 한다.


이곳에서 쓰는 에세이(사실 이 '에세이'라는 말도 쓰면 안 된다. 수필이라는 말을 버젓이 놔두고 왜 이 말을 굳이 쓰려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류의 모든 글은 문학에 들어간다. 그 논의의 범위를 좁혀 문학을 시나 소설 등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늘 그 많은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왜 매번 다른 사람이 쓴 에세이를 읽게 되는 걸까? 단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거나 일필휘지로 잘 정련된 글이 아닌데도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읽는 그 모든 것들에서 '낯섦'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글을 쓸 때 이 '낯설게 하기'의 기법을 적용해 글을 쓰려한다. 읽는 사람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이 조금도 새롭지 못하거나 '낯섦'의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그건 순전히 내 미천한 글 솜씨에 원인이 있다.


이제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보려 한다. 나는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렇게 살아왔고, 아마도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똑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는 진부하고 따분한 삶을 살아가지만, 나는 매 순간순간이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는 느낌을 가지려 노력한다. 설령 조금도 낯선 구석이 없다고 해도 마음만은, 혹은 나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새롭다고 생각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매번 반복되는 이 진부한 일상이 색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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