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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휴일을 꿈꾸다.

by 다작이

내일이면 금요일, 주말을 앞두고 있다. 시간은 쏜살같이 간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식상한 표현을 하자면 월요일이 엊그제 같았다. 주말이 온다고 해서 뭔가 특별한 계획을 세우려는 건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 살았을 때가 더 의미 있는 휴일을 보냈던 게 아닌가 싶긴 하다. 누군가는 바로 그런 게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일종의 책임감이라고 했다. 혼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무엇을 하든 삶의 중심에 가족을 두어야 한다는 것 등이 말이다.


어쩌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안정적인 삶에서 오는 안일함이 크게 작용한 탓이리라. 그런 안정적인 상황은 일상을 별생각 없이 맞이하게 했을 테고, 일상을 뒤흔들 만한 어떤 변화의 조짐도 허용하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더없이 편한 가운데 굳이 모험을 할 이유가 없었을 터였다. 누군가에게 편한 상황이 더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불편함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걸 잊은 게 아닌가 싶다. 그리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주말이 다가오면 늘 마음이 분주해지는 이유이다.


혼자 사는 삶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 나 혼자 있을 때는 일상적인 주말이 아무렇지 않아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그럴 수 없다. 매번 똑같은 주말을 보내야 한다는 게 혹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게 탐탁지 않다. 그래서일까,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사서 하고 있다. 무슨 이벤트라도 있어야 한다거나 차를 타고 멀리 나가 시간을 보내고 와야 뭔가를 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다 그 때문일 테다.


어느덧 나이를 이만큼 먹어 놓고도 여전히 나는 주말이 다가올 때마다 색다른 휴일을 꿈꾸고 있다. 인생이라는 게 뭐 그리 특별한 구석이 있을까? 때로는 그런 재미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면서도 정작 어딘가로 움직이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뭔가 약간의 변화를 예상한다고 해도 일상적인 패턴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고작 한 번 정도 웃을 만한 일이 생기곤 한다는 것 정도가 아니겠나 싶다. 만약 그걸 두고 '특별한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가령 지난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내게 이색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번 주 주말이라도 색다른 휴일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과연 그렇다면 색다른 휴일이라고 했을 때, 이 '색다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누군가와 함께 멀리 여행을 갔다 오는 것, 그것이 색다름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지인이나 친구를 만나 함께 하루 정도를 보내는 걸 말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값비싼 비용을 들여 집안에 그럴듯한 가재도구나 전자기기라도 들여놓아야 색다른 하루를 보냈다고 할 수 있을까?


색다르다: 보통의 것과 다른 특색이 있다.


이쯤에서 '색다르다'는 말의 정확한 정의가 필요할 것 같아 사전을 찾아봤다. 보통의 것과 다른 특색이 있을 때 그걸 색다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현생에서의 나의 색다른 휴일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인이라는 한자의 특성상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는 동물이고, 그런 사람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게 인생일 텐데, 이만큼 나이를 먹은 시점에서 돌아보니, 이젠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게 더없이 마음이 편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 지금의 내 삶은 더없이 편안하고 일상적일 뿐이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가리지 않는다. 후회 따위의 얼토당토않은 생각은 애초에 없다. 어쩌면 내가 가장 바라던 것인지도 모른다. 특별한 휴일을, 전과는 다른 뭔가 색다른 휴일을 꿈꾸고 있다면 나 또한 담당해야 할 부분이 있을 텐데, 눈에 띌 만한 별다른 노력 없이 살아가는 나를 보곤 한다. 이만 저만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색다른 휴일을 꿈꾸고 있는, 이 철없는 중년 남자의 생각은 과연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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