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내리는 비

by 다작이

어딜 가든 늘 메고 다니는 백팩이 있다. 브랜드가 뭔가 싶어 봤더니, "American Tourister"였다. 이 가방을 메고 다닌 게 얼핏 잡아 4년은 된 것 같은데, 오늘 처음 브랜드 이름을 확인한 것 같았다. 이런 브랜드도 있나 싶어 검색해 봤더니, 무려 미국의 수하물 제조업체라고, 쌤소나이트의 자회사라고 했다. 순간 '오, 쌤소나이트'라며 탄성을 질렀다. 아무리 브랜드에 무감각한 나 같은 사람이라도 쌤소나이트라고 하면 일단 가방 전문 제조업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 내가 중저가 브랜드라도 차리고 다닐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아내의 배려 때문이다. 나가서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꾀죄죄한데 옷까지 허름한 것을 입고 있으면 사람을 얼마나 아래로 보겠냐는 게 아내의 지론이다. 그런데 '아래로 보려면 봐라, 나도 그런 인간들은 상종하지 않는다'라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러니 늘 입고 신는 것 등으로 아내와 부딪칠 때가 많다. 친구는 그런 내게 복에 겨운 소리를 한다며 타박하곤 했다. 나중에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그렇게 챙겨줄 때 최소한의 호응을 보이라고 했다.


난데없이 웬 브랜드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나는 브랜드 따위에 별로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 내가 입은 윗옷을 보고, 누군가가 노스페이스네요,라는 식으로 말하면 아, 그런가요, 전 잘 몰라서요, 하는 식으로 응수한다. 속은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내 성향 탓 때문이겠다. 호박과 수박은 본질적으로 다른 법,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를 리 없다. 그건 어쩌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와도 같다.


브랜드 다음으로 무신경한 것이 아마도 내게는 날씨의 변화가 아닌가 싶다. 오십여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아직까지도 난 일기예보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심지어 내일 현장체험학습을 간다고 해도 날씨를 확인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뉴스를 봐도 날씨만큼은 건성으로 보곤 한다. 내일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하니 어떻게 차려입고 나가면 되겠다거나, 비가 온다고 하니 우산은 꼭 챙겨야겠다는 다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내가 늘 메고 다니는 그 백팩의 바깥 주머니에 늘 접이식 우산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오늘 아침처럼 하늘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면 짜증부터 폭발한다. 날씨 중에서 비 오는 날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우수에 젖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내 입장에선 그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비만 오면 내 왼손은 우산과 맞바꿔야 한다. 하루 온종일 그것만 들고 다녀야 하니 남은 오른손으로 다른 모든 일을 처리한다. 더군다나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우산을 들고 있을 때에는 막막하기만 하다. 그나마 출근하지 않는 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집을 나서자마자 맞닥뜨린 비는 스트레스부터 돋운다.


가방에 들어 있으면 비에 젖을 리는 없겠지만, 오늘은 일부러 노트북을 챙기지 않았다. 일과 시간 중에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굳이 가지고 가 봤자 쓸 일도 없다. 더군다나 비가 오는 날은 더더욱 가방이 가벼운 게 좋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서든 폈다 접을 수 있는 우산을 하나 챙겨서 백팩의 측면 주머니에 꽂아 넣는다. 제 기능만 할 수 있으면 된다. 디자인이나 크기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비가 와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제 읽던 책도 넣고는 집을 나선다.


대략 30분 정도 비가 온 것 같다. 지하철을 탈 때만 해도 뿌렸는데, 대구역에 내려 지상으로 나오니 그쳐 있었다. 물론 날씨가 완전히 갠 건 아니었다. 여전히 머리에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아무래도 오늘은 하루 온종일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할 것 같다. 그 덕분에 세상이 말끔해진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더위까지 제법 수그러든 느낌이다. 며칠 전부터 그 기세가 확실히 덜해지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 잠깐의 비로 인해 땀은 덜 흘려도 된다는 사실이 그저 만족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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