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마흔이 되었을 무렵 한 지인이 세상을 떠났다. 나와 그녀는 특별히 슬프다거나 마음 아파했어야 할 만한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다만 나보다는 내 아내나 두 아이들과 꽤 친밀하게 지냈던 터라 그들에겐 적지 않은 상실감을 주었던 그런 죽음이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그녀는 내게 조금도 반갑다거나 친밀하다며 내세울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둘도 없는 친구라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묵인하는 형편이었고, 나중에 아들이 장성하고 나서 물어보니 녀석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터였다.
사실 그녀의 죽음까지 바랐던 건 아니었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그녀가 죽건 말건 나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나는 그녀가 죽기 얼마 전부터 참 묘한 경험을 했다. 그건 사실 말로 설명하기가 애매한 일이었다. 누가 생각해도 상식적인 선에서의 납득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녀는 이미 암 선고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믿거나 말거나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하루빨리 죽기를 바랐다. 그녀가 죽은 후 그녀 소유의 아파트 한 채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었다.
완벽한 시한부는 아니라고 해도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녀가 오래 생존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살겠다는 처절한 의지는 그녀나 내 아내와 두 아이들 외엔 그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끝은 정해져 있을 테지만, 그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 그 아이러니. 당연히 그녀의 집에선 반응이 시큰둥하기 짝이 없다. 딸이 오늘내일하는데도, 그녀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볼 때마다 자기 딸보다 자기가 더 아프다며 하소연하던 사람이었다. 칠순이 넘는 나이에 아픈 데가 왜 없겠는가? 고작 감기 몸살에 걸려서도 암으로 투병하는 딸을 기어이 병원까지 끌고 가는 그런 위인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가 산 점심이나 저녁을 거나하게 대접받기 위해서였다. 그런 인간 같지도 않은 부모 밑에서 그녀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엘리베이터에서 그녀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 몸은 좀 어떠시냐고 물었다. 아파서 죽겠다고 했다. 문득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서 따님은 좀 차도가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가 말했다.
"우리 딸이 지금 문제가 아냐. 걔보다 내가 더 죽을 지경이다."
지병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날도 감기 몸살 때문에 기력이 떨어져 링거를 맞고 병원에서 돌아오던 참이라면서 어지러워 죽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빠라는 사람이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딸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설령 주워 온 자식이라고 해도 그런 말을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나는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속된 말로 저 사람은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몇 달 안에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정말이지 초라한 죽음이었다. 빈소에서 장내가 떠나가라 울던 사람은 아내뿐이었다. 가스라이터였더라도 이십여 년 넘게 이어 온 인연이었다. 부모도 슬퍼하지 않았고, 심지어 친언니라는 사람도 그랬다. 평생 자신들을 위해 돈만 벌다 간 그녀인데도 그들은 조금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문상을 갔었던 나를 앉혀놓고 그가 한 말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을 만한 얘기였다.
"저것이 가기 전에 지 명의로 된 아파트를 처리하고 갔으면 돈이라도 아꼈을 텐데 생돈 날아갈 일을 생각하니 아까워 죽겠다."
마흔이라는 한창나이에, 그것도 부모인 자신들보다 먼저 가는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슬픔 같은 건 없는 사람들이었다. 겨우 33평짜리 아파트에 대한 세금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흔히 세상에 그런 몰상식하고 매정한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말을 곧잘 하곤 한다. 그런데 이미 그런 말을 했다는 건 그런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난 그런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을 직접 보고 겪었다.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식의 사이가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에 부합하는 관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해 준 일이었다. 일반화에 있어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일이긴 하지만, 그 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아픔은 너의 아픔이어야 하지만, 너의 아픔은 내 아픔이 될 수 없다.
아프다는 건, 그래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통증이라는 건 설령 가족이라고 해도 공유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말이 났으니 망정이지 죽은 그녀의 아버지라는 그 사람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나 역시 그 사람과 하등의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입버릇처럼 아내가 아프다고 말한다. 아프다고 하니까 아픈 건 알겠지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또 얼마만큼 아픈지에 대한 공감도는 제로에 가깝다. 그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픈 날에도 아내의 기본적인 태도는 비슷하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는 말이 절실히 와닿는다고나 할까? 다시 한번 저 냉정한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아픔은 너의 아픔이어야 하지만, 너의 아픔은 내 아픔이 될 수 없다.
사람이 아플 때 가장 서러운 법이라고 했는데, 함께 살아가는 식구의 처지에서 이러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아픔이 너의 아픔이 되길’ 바라듯, ‘너의 아픔도 내 아픔이 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할 때다. 모르겠다. 과연 그것이 훈련이나 연습을 한다고 해서 갖춰지는 태도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