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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by 다작이

살면서 단 한 번도 기적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건 마찬가지다. 생활 속에서 그리 자주 접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날 때 기적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동시에 이 기적이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나는 그런 일은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사전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기적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또 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불가사의한 일이라고도 했다. 그 말은 곧 일반적으로 혹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게 기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사전적인 정의로 보자면 기적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기적은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뜻한다. 그러려면 무려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다. 결코 상식적이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기이한 데다, 막상 발생했을 때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이라야 비로소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다. 이렇게 조건이 까다로우니 우리 주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다. 하긴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면 우린 그 일을 두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표현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적의 두 번째 정의는 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불가사의한 일을 말한다. 내가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겠으나, 최소한 신이 거론되는 영역은 인간이나 과학이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 이유에서 지금 내가 말하는 기적의 테두리에선 이 뜻을 배제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내게 기적이라고 할 만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을까? 내 삶을 돌이켜보건대, 나란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어쩌면 그전에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었나 싶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말이 있다. 또 내가 주기적으로 보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라는 영화의 서두에는 '사람의 마음을 선명하게 물들이는 것은 기적'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 혹은 내게 일어났으니 그건 분명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겠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연예인의 영상을 보았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도 돈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물론 내가 그의 말에서 자극을 받은 부분이 꼭 대목만은 아니었다. 정작 내 마음을 움직인 건 그다음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노력보다는 운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이 ‘운’이라는 게 내가 보기엔 바로 기적과 일맥상통하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여기에서 그는 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운이 훨씬 중요하다고 해서 노력의 가치나 의미 등을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무슨 일에서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 운조차도 자신을 피해 갈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즉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만 그 운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오직 준비된 자에게 '기적'이라는 운의 힘을 빌어 인생의 몇 안 되는 기회를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인생이라는 것에 있어서 속단하는 게 얼마나 의미 없는 건지를 모르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 있어서 더는 기적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사실 누구라도 기적이 일어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별다른 노력 없이 우연찮게 얻어지는 게 기적이라고 믿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직하게 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적을 믿거나 바라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어떤 일에서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기적을 바란다면 그건 삶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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