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적으로 그다지 MBTI를 믿지 않는다. 지구상에 있는 수십 억의 사람들, 각각이 저마다 다른 성격과 생각을 지녔을 텐데, 어찌 한낱 그 영어 대문자 한두 글자 따위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사람들과 생활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MBTI라는 게 의외로 적지 않은 부분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을 어렵지 않게 듣곤 한다.
거 봐. 우리 말에 공감을 못 하는 걸 보면 저 사람 T 맞잖아.
저 사람은 F라서 오지랖이 넓어. 네가 이해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MBTI는, 마이어-브릭스 유형 지표(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줄인 말을 뜻하는데,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하는 심리 검사를 일컫는다. 마이어-브릭스 성격 진단 또는 성격 유형 지표라고도 한다. (출처: 다음 백과 '엠비티아이' 항목 중에서 발췌)
일반인들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다만 개인이 쉽게 응답할 수 있는 자가 진단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성격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조금은 더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MBTI에서 말하는 성격 유형들 중에, 요즘 가장 많이 언급이 되고 있는 유형이 어쩌면 'T'와 'F' 유형에 대한 상호 비교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서 'T'는 흔히 사고형, 'F'는 감정형이라고 지칭된다. 사람을 대하거나 어떤 상황을 맞닥뜨릴 때 이성을 중시하느냐 아니면 감정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구분되는 성향을 나타낸 것이다.
'T'는 논리와 분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면 감정보다는 사실과 증거에 근거해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의 감정과 가치를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바로 'F' 유형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문제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적극 고려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일 못지않게 인간관계의 가치와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는 유형이다. 이러한 구분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효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사람 간의 공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향을 나눈다는 것이겠다.
내가 겪은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한창 차를 운전하던 때에 접촉 사고가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 친구와 아내에게 각각 이 사실을 알렸었다. 친구는 우선 어디 다친 데는 없냐고 한 반면에, 아내는 어떻게 하다가 사고가 났는지 또 차는 많이 파손되지 않았는지를 먼저 물었다. 이 간단한 사례에서 내 아내는 'T', 그리고 내 친구는 'F'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 인구에서 'T'와 'F' 유형의 사람들이 각각 몇 %나 차지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요즘 따라 'T' 성향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얼핏 보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T' 성향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지금은 자신 외에는 기본적으로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한 시대이다. 기질이나 성향이 바뀔 수는 있어도, MBTI도 그런 시대적인 추세를 거스르진 못할 거라고 믿는다.
공교롭게도 나는 전형적인 'F' 유형에 속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F' 유형이 바람직하고, 'T' 유형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또한 정작 'F'라고 얘기하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T'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생활이란 결국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부딪치게 되고, 그 속에서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조화를 이뤄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단체 생활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심리적인 동요를 일으키거나 어쩌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쪽이 'F' 유형이 아닐까 싶다는 점이겠다. 'T' 유형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F' 유형인 사람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이를 맹신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MBTI가 사람들의 다양한 차이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는 참고가 되긴 한다. 다만 집단생활을 하면 할수록 서로 간의 성향의 차이가 두드러지고, 그 차이점에 대한 이해가 결국 사람들에게 MBTI에 기대게 되는 현실이 그저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