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마치면 어디로 새지 말고 곧장 집으로 와."
"학원 가기 전까지 1시간 반이 남아서 학교 운동장에서 애들하고 놀기로 했는데."
"안 돼. 바로 집으로 와."
"왜?"
"요즘 길에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위험해."
"혼자 노는 것도 아닌데."
"그냥 오라면 바로 와."
며칠 전 교문 앞에서 6학년 여학생과 그 부모가 나눈 대화였다. 듣는 내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예전과는 다를 정도로 발육이 남다른 요즘의 아이들, 더군다나 그 아이는 여자아이였다. 나 역시 딸을 가진 부모로서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뾰로통하게 학교로 들어가던 그 아이는 부모가 왜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최근 들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근하던 중에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듯 혼잣말을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곤 한다. 일부 몇몇은 타인에게 위협적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솔직히 일반적인 범주의 언행이라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겠나 싶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정신과적인 치료가 따라야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사람으로서 타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생각한다는 게 충분히 결례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걸 마냥 외면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옆에서 보고 듣고 있던 사람이 참지 못해 시비가 발생하기도 한다. 어쩌면 예전처럼 그들이 으레 그러려니 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용인하고 넘어가던 시대는 지난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요즘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화가 쌓여 있는 상태다. 그들의 반복적인(별 의미 없어 보이는) 말과 행동이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만 것이라고 하겠다.
일단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눈에 초점이 없다. 분명히 눈이 마주쳤는데도 나를 보는 것 같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반면에 어떤 경우에는 내 속 어딘가에 깊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나를 골똘히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눈이 마주치면 어딘지 모르게 섬뜩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물론 지금 내가 말하는 모든 것들이 죄다 편견이나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사물을 응시하고 있고 그들 나름대로는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조현병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현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마치 세상의 모든 남성들이 잠재적인 성범죄 가해자처럼 취급되는 세상이 되어가듯 조현병을 앓는 모든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서든 묻지마 칼부림이나 폭행을 저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조현병을 정신분열증으로 불렀다. 두 가지는 모두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으나, 어감에서 주는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어쨌거나 이 조현병은 흔히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연령에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뇌 기능의 약화를 가져온다고 하는 이 질환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리 희귀한 질환은 아니라는 건데, 최소한 우리나라의 인구를 5500만 명으로 추산했을 때 무려 조현병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55만 명이나 된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10만 명의 사람들이 이 질환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더 큰 문제는 등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 즉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사람들이겠다. 통계 수치로 보면 대략 45만 명 정도가 등록이 안 된 사람들이라는 뜻이겠다. 여기에서의 '등록'은 체계적으로 관리 및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것일 테다. 그렇게 보면 이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타인에게 더 위협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옛날처럼 그들을 그저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거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암적인 존재로만 인식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체계적인 관리와 지속적인 치료보다는 감금에 버금가는 집단 수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악의 근원은 미리 발본색원하자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라도 하듯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멀쩡한 사람들이 감형을 목적으로 툭하면 자신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더불어 살아가기가 너무도 힘겹고 불길한 세상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가령 기차나 버스 혹은 지하철 안에서 근처에 앉아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우리에게 흉기를 휘두른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상한 사람이라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문제겠지만, 나 역시 타인에게 같은 이유로 위협적이거나 기피하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