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정신을 차리며 살아야 하는데, 어젯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늘 새벽에 꽤 황당한 일이 내게 일어났다. 늘 그랬듯 잠에서 깼다. 내 기억으로는 용케도 알람소리도 듣지 않은 채였다. 보통은 그 소리를 들어야 일어나곤 한다. 오늘처럼 알람이 울기 전에 일어나는 날은 특별히 일찍 가야 하는 날인 경우가 많다. 알람 설정 시각은 5시 반이지만, 잠들기 전에 몇 번이나 '5시'를 외친 덕분이었다. 아내가 늘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일어나야 할 시각을 염두에 두고 잠이 들면 언제라도 깰 수 있다는 말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오늘 새벽에도 그런 날 중의 하나인 줄 알았다. 알람이 울기도 전에 일어난 나 자신을 기특하다며 칭찬하고는 욕실로 갔다.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다. 심지어 면도까지 마쳤다. 긴 휴가를 마치고 모처럼 만에 출근하는 이 아침에 꾀죄죄한 몰골로 가고 싶진 않았다. 눈에 피곤한 기색은 역력했지만, 매번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여겼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오늘은 좀 지나칠 정도로 조용한 날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맘때면 출근을 앞둔 아내도 깨기 마련인데 그럴 기미가 안 보였다. 일이십 분이라도 더 누워있게 놔두고 조용히 집을 나설 생각이었다.
그때 창밖을 봤다. 도저히 5시가 넘은 시각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온 천지가 암흑에 휩싸여 있었다. 아침부터 얼마나 뿌려대려고 하늘이 이렇게도 어두울까 싶었다. 벌써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충분히 기온이 차갑게 느껴졌다. 설마 했다. 물기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 상태로 방으로 돌아온 나는 휴대전화를 열었다.
2:59
내 눈에 들어온 세 개의 숫자를 보자마자 맨 먼저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짧은 시간에 만감이 교차했다.
'늙으면 잠이 없다더니 내가 벌써 그렇다는 얘기인가?'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도 새벽잠이 없어진 나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다시 눕지 말고 이대로 글이라도 쓸까?'
'아냐, 그래도 두 시간 반이나 더 잘 수 있는데 지금이라도 다시 누울까?'
'또 누우면 일어나서 머리를 또 감아야 하잖아?'
결국은 본능이 이성을 압도해 버리고 말았다.
한 이삼 분 고민했던 같다. 금세 다시 눕는 데에 큰 망설임은 없었다. 사실 그 시각이면 모로 보나 잠을 청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극도로 피곤한 그때에 눈을 떠 버틴다는 건 쌓인 피로를 가중시키는 꼴이나 다름없는 일일 테니까. 결과만 놓고 보면 다시 자는 게 아니었다. 마치 그 시각까지 버티고 있다가 그제야 잠이 들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꼭 그럴 때면 달콤한 꿈을 꾸기도 한다. 물론 그 꿈의 내용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지만…….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뜨니 6시 25분이었다. 집 앞의 지하철역에서 6시 42분 열차를 타지 않으면 영락없이 지각하게 된다. 번갯불에 콩은 이렇게 구워 먹는 거란 확신이 들었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였는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다. 일어나서 모든 준비를 마치는 데에 딱 11분이 걸렸다. 휴대전화에 6시 36분이라는 숫자를 확인하며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
집 안과 밖의 풍경은 언제나 그랬듯 여전히 달랐다. 바쁘게 오고 가는 차가 보이는가 하면 그에 못지않게 정신없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얽히고설키며 요란하게 하루를 시작하게 된 꼴이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는 차분하고 조용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