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하는 운동을 마치고 조금 걸을까 싶은 마음에 몇 보쯤 걷다가 지하 주차장을 통해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려던 참이었다. 거기를 통과하면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줄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한창 그쪽으로 가던 중이었다. 뒤에서 차 문을 닫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내가 선 곳이 어딘지 깨달았다. 그곳은 차를 세우면 안 되는 곳이었다. 모든 공간에 차가 가득 들어차 있어서 주차할 만한 곳이 없다는 건 이해되지만, 주차장에서 출입문 입구로 이어지는 통로에 차를 세우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싶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봤다. 부부인 듯한 오십 대의 남녀가 막 주차한 뒤에 차 문을 닫고 있었다. 내 또래였다는 게 오히려 씁쓸했다. 적어도 요즘은 그러면 안 되는 세상인데 나도 모르게 그들을 유심히 쳐다보고 말았다.
'저기요. 여기는 차 세우시면 안 되지 않나요?'
물론 마음속으로만 한 말이었다. 괜히 기분 좋게 운동하고 들어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그것도 어쨌거나 이웃과 대거리를 한다는 게 영 마뜩지 않았다. 게다가 남자들은 대개 여자 앞에선 더 용감해지는 법이다. 당신이 뭔데 지적질하냐고 대응하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내 차, 내가 여기 세우는데 왜, 뭐 할 말이라도 있어요? 봐요, 충분히 사람이 지나갈 수 있잖아요.'
마치 그렇게 얘기라도 할 듯 그들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마터면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할 뻔했다.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였으니 분명 그곳은 차를 세우면 안 되는 곳이었다. 아파트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나 또 밖으로 나갈 때에 반드시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용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이 종종 자전거를 끌고 들어올 때도 있고, 유모차나 생필품을 사들고 오는 작은 카트가 통과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버젓이 통로를 막고 있으면 사람들이 통행하는 데에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생각을 왜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런 몰상식한 사람들 때문에 나머지 수백 명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야 하는 것이다. 잔인한지 모르겠지만, 저런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다. 차 한 번 세운 것 가지고 너무 심하게 얘기하는 것 아니냐고 해도 할 수 없다. 저 간단한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다른 행동은 볼 것도 없을 테다. 사실 조금 전과 같은 일은 별도의 법 따위로 정해져 있는 사항이 아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 없이 자기 편의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은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지금 내가 말하는 건 그저 가장 상식적인 일에 속할 뿐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일인데, 왜 저런 부류의 사람들은 저렇게 간단하고 당연한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남들이야 어찌 되든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사람들은 함께 살아갈 가치가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런 유형의 인간들이 생각보다 우리 주변 곳곳에 많다는 것이다.
그저 일개 국민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원하는 국가의 모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질서의식을 갖춘 나라,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국민이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할 뿐이다. 선진국, 내게 그런 허무맹랑한 욕심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선진국이라는 게 아무나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그릇도 아닐 테지만, 무엇보다도 이 정도의 국민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선진 시민 혹은 선진 국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는 후진국적인 의식을 가진 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지금의 우리에게 선진국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아이에게 어른의 양복을 입힌다고 해서 그 아이가 곧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