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by 다작이

전국에 있는 모든 공공도서관을 가 보진 못했으나, 그동안 다녀 본 곳들 중에서 한눈에 나를 사로잡은 곳은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국립세종도서관이다.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꽤 오래전에 딱 한 번 들른 곳이었다. 보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는 줄 알았다. 넉넉한 실내 공간이 돋보였고 무엇보다 전형적인 도서관의 개념을 탈피한 세종도서관을 보면서 그곳이 바로 신세계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게 그동안 내가 봐온 도서관들은 시대의 변화에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곳이 허다했다. 막상 가도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일지 않았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오죽했으면 한창 세종시로의 교원의 전출을 장려하던 때, 이 도서관 하나 때문에 근무지를 세종시로 옮기고 싶다는 뜻을 가족들에게 피력했다가 된통 쓴소리를 들어야 했을 정도였다.


세종도서관을 본 후유증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우리 동네에 있는 도서관이나, 이동하는 데 시간은 걸려도 마음만 먹으면 갈 만한 도서관을 다니면서 늘 언제쯤 대구에도 멋진 도서관이 들어설까, 하는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다. 물론 세종도서관은 그런 내 바람에 부채질을 했다. 그러던 차에 재작년 7월 말경 드디어 대구에도 멋진 도서관이 들어섰다는 소식이 들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마치 그 도서관이 내 소유라도 되는 양 나는 기뻤다. 일부러 볼일이 없을 때에도 들르게 되었고, 갈 때마다 명색이 도서관이라는 곳이 그 정도는 되어야 마땅한 것이 아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 말하는 도서관은 사실 역사로 보면 10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도서관이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하기 전까지는 도서관이 아니라 시골 학교의 오래된 건물 같아 보이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도서관의 이름은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이었다.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그 도서관은 깡패 소굴처럼 불량한 학생들이 자주 모이던 곳으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 왜냐하면 5분 거리에 동성로 번화가가 있어서 유흥을 즐기려는 한량들의 중간 집합지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환경적으로 얼마나 열악했으면 심지어 어른들 사이에서도 중앙도서관에 가면 불량배가 많으니까 조심하라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원래 중앙도서관의 건물 모양은 가로가 약간 더 긴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그 공간의 대부분을 복도와 화장실 등이 차지하고 있었고, 직사각형 모양을 생각했을 때 자료실과 열람실은 테두리 쪽으로 치우쳐 있는 곳이었다. 막상 도서관 건물의 크기를 고려하면 쓰임새 없는 공간이 너무 많은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가장 커야 할 열람실이나 자료실 등은 좁아터지기 이를 데 없었다. 자료실의 장서는 오래된 것들이 너무 많았고, 열람실은 이용료가 저렴한 사설독서실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당시에는 그 외의 다양한 구립도서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나로서는 굳이 차나 지하철을 타고 중앙도서관까지 이동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중앙도서관이 리모델링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이왕 새로 짓게 되었으니 시대의 변화에 맞는 도서관이 탄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2019년 9월 공사에 착공하면서 도서관은 잠시 인근의 대형 빌딩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2개인가 3개 층을 빌려 도서관을 쓴 기간이 대략 2년 정도, 사실 몇 번 다니면서 너무 불편했었다. 일단 공간이 이전보다 더 협소해졌고, 필요한 책을 찾을 때에도 꽤 애를 먹게 했다.


고진감래, 2년을 버티고 참아낸 보람이 충분했다. 2023년 7월 28일에 중앙도서관이 재개관했다.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이라는 낡은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누가 들어도 꽤 그럴싸한 이름인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이라는 멋진 이름과 함께 새로운 도서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본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은 일전에 보고 반했던 국립세종도서관 못지않은 곳이었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들라면 건물 전체 공간의 거의 대부분을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가서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쓸모없는 공간이 없어 보일 정도로 굉장히 잘 디자인된 건물이었다. 현대식의 깔끔한 건물 하나 안에 모든 시설이 다 들어가 있었다. 집으로 비유하면 일반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개조한 느낌이었다고 보면 될 듯하다. 계단, 엘리베이터는 물론 구내 카페와 각종 전시실 등이 구비되어 있었고, 다양한 강좌 등을 들을 수 있는 강의실이나 세미나실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건물 안의 모든 시설들이 효율적으로 잘 배치되어 있다는 걸 느낄 정도로 공간활용도가 뛰어났다.


사람들의 이동 동선의 폭이 넉넉하고 장서들이 꽂힌 서가도 여유 있게 배치해 놓았다. 가로 쪽의 모서리 부분에는 노트북 등을 가져와서 전원을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카공족들에게는 지상낙원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공간에 여유가 많아서 예전처럼 서로 부딪치며 다니지 않을 만큼 쾌적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옛말에 시원찮은 목수가 연장 나무란다고 했지만, 새로 들어선 도서관을 보면서 연장 탓하는 목수의 심정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사실 도서관의 시설이 열악하다고 해서 공부를 할 수 없다거나 책 읽기가 어렵다고 하면 핑계인지 모르겠지만, 리모델링한 뒤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명소가 되었다. 아마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진으로 남기지 않으면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이 얼마나 잘 지어졌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나 역시 재개관한 뒤로는 틈만 나면 그곳에 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좋은데, 너무 좋은데 그 좋은 이유를 일일이 열거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 말이다. 만약 대구에 들를 일이 생기면, 또 시간적인 여유가 허락된다면 한 번쯤은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 가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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