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고마비의 계절

by 다작이

연일 시원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이제 더는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지낼 만하고, 간간이 내리쬐는 햇빛도 비지땀을 흘릴 만큼 덥다는 생각을 들게 하진 않는다. 거의 이 정도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젠 가을이 왔다고 생각해도 될 듯하다. 게다가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기까지 하다. 심지어 밤에 잠들 때에는 반드시 창문을 닫고 이불까지 덮고 자는 날이 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도 마음 한편에선 여름이 완전히 물러났다고 믿진 않는다. 이리 호락호락하게 갈 녀석이 아니니까. 그게 이상기후이건 일시적인 선선함이건 간에 벌써 두어 주 가량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전반적인 상황이 이러니 일단은 가을이 왔다고 가정해도 되지 않을까?


가을 하면 여러 가지 것들이 생각난다. 단풍, 벤치, 낙엽, 그리고 독서 등 들으면 들을수록 여유가 느껴지는 그런 낱말들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사계절 중에서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긴 여름에서 놓여나 비로소 운신하기 딱 좋을 때가 바로 가을이기 때문일 테다. 어딜 가든 어디에 앉아 있든 더는 날씨로 인해 거추장스러울 일도 없기 때문이겠다. 물론 겨울의 기운이 느껴지기 직전까지만 좋은지도 모른다. 이 좋은 계절을 맞이하면 나는 늘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과 '천고마비'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먼저 뭐니 뭐니 해도 가을 하면 독서의 계절이다. 요즘은 좀 덜한 감이 있지만, 한때는 마치 국가적인 시책처럼 이맘때가 되면 독서를 장려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탓에 가을이 되면 공원 벤치나 커피숍에 앉아서 사람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곧잘 연출하곤 한다. 평소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독서가 생활화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도 가을만 되면 책을 펼쳐 보기도 한다. 생각만 해도 근사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다음은 천고마비라는 말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라는 기본적인 뜻은 알고 있지만, 어떤 의미인가 싶어서 여기저기 찾아봤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자성어가 그렇듯 이 역시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작 중국에선 '천고마비'보다는 '추고마비'를 더 많이 쓴다고 한다. 이 추고마비(秋高馬肥)라는 표현은 두보의 시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했다. 묘하게도 글자의 조합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추고마비가 더 잘 어울리는 표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래 추고마비라는 표현은 다분히 부정적인 표현이었다고 한다. 중국 전한 시절에, 가을이 되면 말이 피둥피둥 살찌고 남쪽에선 수확기라 물자가 풍부해지니 흉노가 내려와서 다 밟아버리고 빼앗아 갈 거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유목민족의 위협이 사라진 지금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라는 표현만 남아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로 굳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출처: 나무위키, '천고마비' 항목에서 발췌)


'천고'이건 '추고'이건 간에 이 가을이 사계절 중에서 가장 풍요롭고 정취 있는 계절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이제는 뭔가를 마음먹고 제대로 해보기에 제격인 계절이 온 것이다. 으레 그렇듯 가을이 오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떠올려 보곤 한다. 사실 그래봤자 체감상으로는 한 달 남짓일 테지만, 이 좋은 가을에 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세워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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