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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 어디에?

137일 차

by 다작이

생텍쥐페리는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말했다고 해서 그의 사랑론이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사랑은 지구상의 80억 명의 인구가 각자 내린 정의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스갯소리로 떠오르는 얘기가 있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 여기서 로맨스냐, 불륜이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로맨스가 혹은 불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랑이라는 화두는 영원히 명쾌하게 정의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언제 어디에서든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사랑이라는 것이고,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간에 다들 한 번씩은 사랑에 빠지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일 수 있다는 것이겠다.


얼마 전에 잠시 앞에 있는 커피매장에 들른 적이 있었다. 따뜻한 바닐라 라테 한 잔을 시켜놓고 글을 쓰고 있었는데, 한참 전부터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두 명의 손님이 있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커플이었다. 많이 봐주면 20대, 아무리 뜯어봐도 영락없이 고등학생인 손님들이었다. 더군다나 그 아이들은 교복까지 입고 있었다. 참으로 당돌하고 용감한 커플이 아닌가 싶었다. 마치 자석이라도 되는 양 딱 붙어서 끌어안고 있었다.


점점 스킨십의 농도가 짙어졌다. 단둘이 있던 2층 좌석에 내가 가세했으니 이치로 따지면 나는 그저 불청객에 지나지 않았다. 내쪽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남학생과는 달리 여학생은 연신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힐끔힐끔 보기 시작했다. 모처럼 만에 온 카페에서의 한적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내친김에 1층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사실 이 나이가 되어서 그런 아이들을 보면 사람 많은 데에서 뭐 하는 짓이야, 하는 생각보다는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누구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그 풋풋함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적어도 내가 어릴 때는 저렇게 할 수 없었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내가 다시 3~4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과연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 법한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애정행각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한참 전부터 생텍쥐페리의 사랑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글쎄 뭐랄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최소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게 전제되어야 한다. 서로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데 사랑은 무슨 사랑, 이게 내 지론인데, 그 모습을 줄곧 지켜본 뒤로부터 그 아이들은 그런 나의 통념을 깨고 있었다.


그 둘은 나를 보고 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편한 좌석이 준비된 벽 쪽에 기댄 채 맞은편인 바깥 전면 유리창쪽을 보고 있다. 그쪽을 보고 있으려면 오른쪽에 앉은 나를 볼 수밖에 없다. 쳐다보지 않는 척하면서 연신 그 둘을 난 관찰하고 있었다. 맞다. 아무리 봐도 정확히 생텍쥐페리의 말을 실천하고 있는 커플이었다. 거의 서로 쳐다보는 일은 없다. 하긴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도 옆에 앉은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둔갑하는 일은 없겠지만, 팔짱을 허리에 그리고 어깨에 두른 채 앞만 보고 있다. 그러면 나머지 한 손은 뭘 하고 있을까? 맞다.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씩 목이 마르면 음료를 홀짝홀짝 들이켰고, 음료를 탁자 위에 놓으면서 또 서로를 만지곤 했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라서 좀 그렇긴 하지만, 나란히 앉아서 스킨십이라도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겠는데, 고작 옆에 앉아서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어딜 도망가지 말라는 듯 한 손은 상대에게 걸쳐 놓은 채 말이다. 두 명의 어린 손님을 보면서 계속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저럴 거면 굳이 왜 같이 앉아 있지?'

그것이 아마도 이 시대의 아이들(?)이 하는 사랑 방식인가 싶기도 하고, 한창 자라고 있는 우리 집 아이들도 앞으로 저런 사랑을 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직 정식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본 적은 없다. 한 녀석은 스물셋이고, 또 한 녀석은 스무 살이니 이성 친구가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이성 친구 영역은 내가 터치할 부분이 아니니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그런 모습이 사랑의 한 전형으로 받아들여지는 세대는 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그게 진정한 사랑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을 되돌아보게 했던 요즘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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