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일 차
어제 날씨 관련 단원 학습이 끝났다. 잔반적으로 아이들의 학습 태도가 그다지 좋지 못한 건 요즘 아이들의 평균치가 아닌가 싶다. 필요 이상의 학습이 가져다준 폐해일 테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과외의 학습, 즉 많은 학원을 다닌 부작용일 것이다. 정작 학부모들은 이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습 참여도는 저조하다. 물론 내 수업이 재미없으니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달리 할 말이 없다. 가장 원론적인 말이면서도 틀리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겠다.
"많은 선생님들이, 요즘 아이들의 학습 참여 태도가 좋지 않다며 속상해하더군요. 그런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수업을 재미있게 한다면 아이들이 어련히 수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을까요? 끊임없이 수업을 고민하고 또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다른 선생님의 수업연구교사 공개수업 때 심사를 하러 온 타학교 교장선생님의 수업평에서 나온 말이었다. 어느 누가 그의 말을 두고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논리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말이었다. 으레 교사라면 많은 책무들 중의 하나가 수업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란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어째 듣는 속은 편치 않다. 단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수업을 재미없게 하니까 아이들이 딴짓을 하거나 떠드는 것'이라는 소리였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리기 전에 자신의 수업이 얼마나 흥미로운지를 되돌아보라는 뜻이었다. 만약 수업이 재미있기만 하다면 아무리 딴짓을 하고 싶거나 떠들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 자리에 창여한 심사위원으로서는 충분히 할 만한 발언이었다. 나름 저경력 교사에겐 일종의 지침이 되라는 뜻에서 한 말인 셈이었고, 동석한 여러 선생님들에게도 충분히 참고가 되는 말이었을 터였다.
문득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심사위원의 수업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언행일치라는 관점에서 그의 수업 기술이 몹시 궁금했다. 사실 이런 사례는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경험하곤 한다. 가령 내가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이 상대팀에게 지고 있을 때 '저렇게밖에 못 하나' 싶어서 속상해한다. 더군다나 터무니없이 크게 지고 있거나 해선 안 되는 실책을 유발할 때 그런 생각은 어김없이 커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한때 국가대표로 뛰었던 한 축구선수들은 그런 팬들을 향해 '그리 답답하면 니들이 뛰어보라'는 식으로 말해 공분을 산 적이 있을 정도였다.
마치 수업 당사자가 그 축구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해당 발언을 한 심사위원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비난을 퍼붓는 팬이었다. 수업자는 사력을 다해 준비했을 게 틀림없었다. 자신의 수업을 보러 멀리서 온 심사위원들과 동석한 몇몇 참관자들에게 뭔가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군데군데에 강조할 만한 장면을 넣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없는 빈 교실에서 혼자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며 가상 시뮬레이션도 해 봤을 것이다. 당장 수업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알 수 없으니, 더러는 불안한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행위에 말로 규명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선을 그어 버리면 되기 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한 것이 아니니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점에서 얘기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보고 느낀 대로 평가하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참관한 수업에 흠잡을 데가 없다면 있는 그대로의 찬사를 표현하면 된다. 그런데 실수투성이의 수업, 즉 시쳇말로 망한 수업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혹은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어떤 평을 하느냐에 따라 그렇게 잘할 수 있다면 당신이 한 번 보여달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서로 다른 입장에 서게 될 때가 생기곤 한다. 누군가는 내가 보여주려는 어떤 의도를 해석해야 하고, 적어도 그때 나는 일종의 쇼를 보여줘야 한다. 그럴 때마다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른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말할 때 말조심해야 한다는 따위의 하나 마나 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해도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