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휴가

by 다작이

오늘 오후부터 길고 긴 휴가기에 접어든다. 한 번도 '휴가'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어색한 감이 크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름방학을 맞이한다. 오전에 방학식을 한 뒤 1시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면 우린 네 시 반까지 업무를 보다가 제시간에 퇴근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방학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마음은 동료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싶다. 아이들 앞이라 단지 내색하지 않아 그렇지, 요즘 세대는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을 정도로 방학을 학수고대한다. 아무래도 우리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다. 방학이 되면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세대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런 열정이, 그들의 활동력이 못내 부러울 뿐이다.


교직에 나오고 나서 어느새 쉰한 번째로 맞이하는 방학이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하루하루 버티던 세월이 그만큼 흐르고 말았다. 사실 내겐 때만 되면 찾아오는 연례행사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말이다. 또 방학을 하나 보다 싶은 생각이 더 강하기 때문이겠다. 게다가 이번에도 아무 생각 없이 더위를 식히느라 허둥대다 끝날 공산도 크다.


"넌 내일부터 방학이라 참 좋겠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어젯밤에 아내는 기어이 한 마디를 보태고 나섰다. 아내의 지론은 그랬다. 웬만한 직장인이라면 일하러 가고 싶어서 출근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냐는 것이다. 안 그래도 숨이 막힐 정도로 더운데 알아서 쉬게 해 주니 그만한 복이 어디 있겠냐며 연신 투덜댔다. 논리상으로 봐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그리 어패가 있는 말은 아니니 굳이 대꾸는 하지 않았다.


솔직히 특별한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25일간의 휴가를 헛되이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몇 차례 방학을 경험한 뒤에 생긴 내 나름의 지혜(?)를 십분 발휘한다. 하고 싶은 일이, 혹은 해야 할 일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생각만큼 안 되더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 후로는 결코 욕심내지 않으려 한다. 그저 딱 한 가지만 선정해 전력투구하는데, 이번에도 그 한 가지는 정했다. 고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늘 머릿속에 잡혀 있던 생각이라 품은 덜게 된 셈이다.


글쎄, 마음이 설레거나 흥분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앞에서 말한 그 한 가지의 과제만을 생각하며 이번 휴가를 미리 엿볼 뿐이다. 크게 변하는 건 없다. 방학을 해도 여느 때처럼 아침이 되면 집을 나서는 건 마찬가지일 테다. 일주일 중의 절반은 학교에 나갈 것이고, 그 나머지는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기 때문이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어느새 누워야 직성이 풀리는 게 사람의 습성이다. 더군다나 그런 점에선 누구보다도 그 유혹을 이겨낼 자신이 없는 사람이 나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이 더위에도 집에 있지 않으려 한다.


이십오 일이 지난 뒤에 이번 방학을 얼마나 보람 있게 보냈는지 되돌아볼 때 크게 후회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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